풍요는 빈곤이다.


도인의 심오한 말을 쫓아 필사하는 문구가 아니다. 필자가 의도하는 바는 그리 깊지 않다.

주식이 상한가를 쳤을 때, 우리는 기쁨과 동시에 어두운 구석에서 근심과 걱정이 싹튼다.

모든 것은 생명과 같이 올라가는 일이 있으면, 내려오는 법. 부富에 있어서도 다를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지도 않은 돈이 들어오면 이를 술값으로 쓰거나 하여, 빨리 없애버리려는 마음이 있다.

정당한 돈이 아닌 것은 반드시 무언가의 댓가가 지불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본능이다.

그래서, 풍요는 (사실이든 아니든) 무언가가 지불되었고, 그렇게 생각되고, 내심 빈곤하다.


어쩌면, 돈은 최고로 벌 때가 아니라, 그것을 향해 가는 시점이 정말로 풍요로운 것이다.

실제적인 돈과, 앞으로의 기대감이 내외를 모두 풍요롭게 한다.



 

버블경제라는 황금기를 보냈던 일본인들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80년대는 환락의 시대였다. 엔화 약세라는 훈풍을 타고, 그들의 제품은 세계 곳곳에 팔려나갔다. 그들의 금융은 점차 살을 찌우면서 부동산 투기의 열을 올렸다. 프리타가 최고의 직업이고, 일을 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였다.

그러나 그들 마음 속에는 불안감이 싹트고 있었다. 풍요, 아니 행운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어쩌면 그들 마음의 빈곤을 지우기 위해, 더욱더 마구마구 엔을 뿌려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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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마츠바라松原みき의 '자정의 도어真夜中のドア - Stay with me'는 황금기 80년대를 앞둔, 79년의 노래이다.

앞서 언급한 이야기에 맞추어 보면, 부와 마음이 모두 풍요로운 정말로 '좋았던 시절'이다.


재즈에 빠졌던 20세의 아가씨는, 오사카 출신다운 괄괄함으로 용케 떨지 않고 첫 싱글곡을 무사하게 불렀다.

이 새로운 재녀의 등장에, 일본 열도는 열광했다. 그녀에게 돌아간 것은 무수한 상이었다.

2004년 난소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미키 마츠바라는 일본 가요계의 신화로서 수많은 곡을 작곡하였다.



노래는 사랑하던 애인과 헤어지던 때를 회고한다. 그녀는 겨울에 애인과 헤어졌다.

애인과의 마지막 잔정의 싸움을 끝마친 후, 자정의 도어(문)을 사이에 두고, '가지 말라고' 울며 애원했던 바로 그 때이다.


그녀는 당당하다. 그것은 지난 일이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옴에 따라, 생각이 난다. '마음에 구멍이 뚫린 그 계절이 지금 눈앞'이다. 그러나 멜로디와 그녀의 독백에 슬픔은 없다. 다만 쓸쓸함 뿐이다.


그녀는 이제 그의 커피자국과 따뜻함을 기억한다.

하지만 얽매이지 않는다. 노래의 첫 마디처럼 '와따시와 와따시(나는 나), 아나타와 아나타(당신은 당신)'이다.



치정 노래일지언정, 그 멜로디와 작사는 '좋았던 시절'을 품고 있다. 필자는 이 노래를 즐겨 듣는다.


ps. 79년, 이 노래가 나오기 보름 쯤에, 한국에서는 한 독재자가 사망하였다.

한국인은 이 노래처럼, 그의 커피자국과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을까?

한국인은 '그'를 '와따시와 와따시, 아나타와 아나타'라고 생각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