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욱 교수의 '아주 낯선 상식'은 광주를 중심으로 '호남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비극을 기술한 책을 선풍적인 인기라고 표현하는 것도 어색하다만, 어쨌든-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 소식을 인터넷에서 보고 조선일보 사이트에 들어가서 '영남패권'이라는 키워드로 조선일보의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검색결과는 '야권(더불어당+국민의 당)에서 친노 영남패권과 관련된 비노/반노 정치인들 주장의 기사들 뿐이었다.


뭐, 당연히 조선일보에서 '영남패권을 심도있게 다룰 일은 결코 없겠지만' 이 검색 결과는 영남패권이 인구에 회자되자 궁금해서 조선일보 사이트에서 영남패권을 키워드로 검색해 본 독자에게 아마 이런 이미지를 심어줄 것이다.


"흐음... 영남패권이란 호남정치인들이 영남정치인들을 향한 몽니이구만"


2. '영남정치'와 '호남정치'라는 용어는 유권자들에게 하다 못해 각종 정치 게시판에 들락거리는 나름 파워유저들에게도 어색한 용어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공통점인 어색함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그 것은 영남정치가 이 땅의 메저리티들에게는 굴욕감이라는 정서로 다가온다면 호남정치는 이 땅의 메저리티들에게 '감히 마이너리티가?'라는 불쾌감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새누리당을 지지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정치의사를 표출하는 표준 쯤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런 지지 행위의 대상인 새누리당을 '영남정당' 즉 영남정치로 격하하니 말이다. 반면에 더불어당 또는 국민의 당을 지지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표준인 메이저리티를 거부하는, 결국 자신들을 부정하는 불쾌함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영남정치'라는 표현이 매스컴에 쓰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메저리티가 영남정치를 대한민국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이며 '호남정치'라는 표현에서 매스컴에서 극도의 거부감을 표출한 이유는 바로 마이너리티의 준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라는 의사의 표출이다.


이는 마치, 내가 휴대폰을 바꾸려고 '새로운 휴대폰 있수?'하면 '어느 회사 제품을 원하시는데요?'라고 묻지도 않고 바로 삼성사 핸드폰을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손에 아이폰을 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것은 마케팅적으로 최소한 한국에서는 삼성 휴대폰이 표준이라는 이야기이다.


반면에 통신사에 대하여는 SK, KT 및 LG텔레컴 세 회사를 언급하면서 선택권을 매장을 방문한 방문객에게 준다.


결국, 호남정치가 주는 어색함을 없애려면 영남정치를 표출시켜 소비자들에게 선택케 하는 동등한 위치로 올라서던지, 아니면 죽을 각오로 호남정치를 한국 정치의 표준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누누히 민주당은 죽으나 사나 보수 아이콘을 가지고 새누리당과 사생결단을 내려야 했다'라고 한 이유이다.


3. 결국, 영남패권으로 대비되는 호남정치는 영남패권 타파의 방식이 정치적인 논제이지만 마케팅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케팅을 성공한 정치인은 DJ와 노무현이다. DJ는 비젼으로 그리고 노무현은 감성으로.


아담 스미스와 칼맑스의 실수인 '경제소비는 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라는 것처럼 정치 소비자는 결코 합리적으로 정치 행위를 하지 않는다. 물론, 역사를 기술함에 있어서는 가장 합리적인, 그러니까 준엄한 팩트에 의하여 기술하는 것이 맞지만 시대들의 정치는 결코 합리적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핸드폰 가게에서 소비자는 핸드폰 간의 장단점 그리고 통신사 간 가격의 차이를 매장 직원에게 장황하게 듣는 것보다는 마땅한 주차장이 없어서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그래서 딱지를 뗄 가능성에 더 신경이 쓰일 것이다. 물론, 매장의 직원이 '딱지를 떼면 벌금은 우리가 부담하겠다'라는 약속을 하면 또 달라지겠지만.



즉, 영남패권타파는 마케팅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소비자들은 대게 일상이 피곤한데 그들에게 '정의감'을 아무리 부르짖는들 그들에게는 또다른 일상의 피곤거리 하나 추가 이외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