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독일은 다르다. 그냥 다른 게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상황과 조건이 다르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화면에 뜨는 이상가족상봉 장면을 보라. 동서독 갈등이 한창이던 
초기에도 내왕은 비교적 자유롭던 독일 같으면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90년대 독일통일이 현실화 되기 이전만 해도 한국이 먼저 통일된다는 아주
순진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독일은 전법국이고 한국은 전범국의 피해국이니까.
 
 잠깐 샛길로 들어가보겠다. 얼마전 고향 출신 월북 시조작가 기념사업 하겠다는 사람 몇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 누구라면 알만한 시조시인으로 그는 여운형의 건준-건국준비위원회
에서 활약하다 자진 월북해서 거기서 문부성 고위직을 지내고 지금 아마 <열사릉>에 잠들어 있다.
해금은 되었으나 그 사업을 하는데 고향에서 반발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6.25 전후에 고향 군민 숫자가 13만 이어서 우린 어릴적에 '군민십삼만'이란 노래도 부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보니 4만7~8천명이 희생되었다. 좌와 우익으로 서로 해친 것이다.
지금은 6만도 채 안된다. 내 형도 한사람 희생되었다.17세에. 지금도 음악가를 꿈꾸던 그 잘 생긴
형을 매일 한번씩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독일과는 너무도 다르다.

 젤리거 교수도 한국과 독일이 다른 점을 조목조목 열거하고 있다. 중요한 몇가지만 인용한다.
동독의 통일요구로 발생한 돌발통일진행에서 ,경제적 국제적 효과를 관리
하는 서독의 능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서독은 민주정부의 정치
체제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필자는 이게 한국과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공산주의 계획경제에 비
해 민주주의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헬무트 콜이
1989년 "동독에 민주적으로 당선된 정부가 들어선 후에야 통일논의가 가
능하다"고 말한 것만 봐도 서독의 좀 오만할 정도의 자신감을 알 수 있다.
 
 위 기록은 요약하기 위해 내가 조금 표현을 고치고 줄였다. 두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
은 그럼 민주국가로 체제의 우월성에 확고한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인가. 젤러거는 한
국정부가 북에 대해 "좋은 가정을 갖고 재산도 아우에 비하면 엄청 많은데" 아량을 갖고
형님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 말을 쓴 것 같다. 여기에는 이의 제기하는 사
람도 있고 맞는 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통일 할거면 하고 말거면
말어라." 하는 투의 콜의 일견 오만하고 배짱 두둑한 태도이다. 너희가 민주정부나 의결기
구를 만들면 그때 비로소 합치논의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우리로는 상상조차 안된다. 
결국 서독에 합치는 것만 살길이라 생각하는 동독은 이 오만한 강권?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우리가 듣기에는 달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고사기관총으로 고모부를 살해하는 독재자, 엇그제까지 군부총아로 공화국에 충성 바치던
핵심 장성을 고사총으로 가루로 만드는 독재자가 지배하는 사회를 향해 만약 납측 어느
정객이나 지식인이 이런말을 하면 몽유병자로 취급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다시 젤리거
교수 글을 살펴본다.
 독일에서는 국가적 프로파간다나 군대 보다는, 경제적, 정치체제 우월성
의 싸움이었기에 적대감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내전도 없었다. 서독
만의 국가보안법도 없고 원한다면 누구나 동독 신문, 방송을 접할 수도 있
었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동독여행을 위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고 동독에 편지나 작은 소포를 보
내는 건 도리어 권장되었다. 서독의 크고 작은 도시나 마을은 그나름으로
동방정책을 시행했던 것이다. 이런 문제로 처벌받은 사람이 없다.

 서독의 대단한 자신감과 체제확신을 알 수 있다. 물론 병기로 다투는 전쟁이 없었다는 것
도 큰 이유일 것이다. 결국 1990년 3월에 선출한 동독 인민의회의 결의로, 그에 이은 12월
전 독일 선거로 통일독일은 이미 합법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서독정부의 외교적 경제적 노
력이 막강하게 작용한 건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결과가 줄기차게 통독을 외치던 동독
시민의 승리라는 것이다. 통일된 독일이 NATO의 회원에 머무는 걸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러시아도 아마 아무와도 동맹을 맺지 않는 독일 보다 나토에 묶인 독일이 더 안
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렇다면 동독주민들은 왜 그렇게 줄기차게 ,공산주의 상부 관리
자들조차 어쩌지 못하고 결국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통일을 외쳤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