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다 보니 도시처럼 IT나 기술 문명이 발달하지 않아서 간혹 아는 이들 컴퓨터나 정보처리를 도와줄 때가 있다. 컴퓨터 좀 다뤄본 사람이라면 회로기판을 땜납해야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래도 어지간한 것은 손봐주게 되는데 최근에 한번은 어릴 적 동무 컴퓨터를 손봐주었다. SATA 커넥터 접점 파손->하드디스크 배드섹터로 이어져 컴퓨터가 무척 버벅거린 것이었는데 그간 몇 차례 AS를 받았지만 대개 램이나 기타 주변기기를 교체였단다. 좀 꼼꼼히 살폈다면 충분히 찾아낼 문제였는데 여튼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들여 교체해주고 운영체제부터 업무용 프로그램까지 설치하고 복구 시스템을 갖추어주느라 이래저래 2-3일 정도 품을 들였다.

 

그런데 또 그 녀석과 친하고 나도 아는 동네 형 컴퓨터를 봐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한 대는 원래 있던 삼성 제품인데 그게 고장이 났다고 해서 누군가 또 쓰던 컴퓨터 한 세트를 가져다줬는데 두 대 모두 봐 달란다.

 

그 형(?)이나 형수(?)의 성품을 어지간히 알고 있는 터이고 어떤 풍경으로 이어질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두 대 모두 먹통이었고 모니터 두 대 역시 문제가 있었다. 컴퓨터는 전원공급장치와 기판에 문제가 있었고 모니터 역시 전원공급부의 접점에 이상이 있었다. 그네들 말로는 원래 별 이상 없이 쓰던 거였댄다. 하지만 모두 거짓말. 그 날 갑자기 그런 고장이 날 리는 없고 무척 오래된 제품들.

 

컴맹들이지만 두 대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나를 속인 것이다. 나는 속아 주었고. 돈을 적게 들이자면 컴퓨터 두 대와 모니터 한 대 모두 전원 공급부를 손 보는 정도 서비스를 받으면 어쩌면 될 수도 있으니 함 삼성센터에 AS를 받아보라 했고. 섬이라 인근 해남으로 가야 AS 센터가 있다.

 

그네들 속내는 그거였다. 혹 내가 손 볼 수 있는 거면 날로 먹으려는 심사였다. 왔다갔다 이저것저것 테스트 해주느라 두어 시간 들였는데 그건 뭐 별 거 아니고. 담배를 하나 사주고 막걸리에 오리 구이 조금을 내어오더니 생색을 낸다. “이 새끼 고치지도 못했는데 이런 대접을 해주니 고마운 줄이나 알아”. 부창부수라고 형수가 옆에서 거든다. 이제 컴퓨터 이야기는 그만 하라고. 저런 사람들을 가까운 친인척으로 두지 않은 나는 행복하다.

 

실내 인테리어 목수일을 하는 형인데 말하잠 날라먹은 사람이다. 간을 보는 것이다. 자기 이익에 얼마나 극악스럽게 달려드는 사람인지 형수라는 사람도 그 못지 않은 사람인지 내 익히 겪어본 터이다. 그런데 시골에 저런 사람들은 널렸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픈 풍경이지만 아직도 나는 연민을 버리지 못한다. 그냥 한 마디 던지면 고개를 처박아버리는 사람들. 불쌍해서.

 

그 자리에 있던 친구 녀석은 형한테 어쩌구저쩌구 좋은 사람이란 공치사를 한다. 하지만 얼마 후 밖에 나와 술자리를 같이 하면서 하는 이야기. 꼴에 나이 들어 형이라고...니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봐야 아냐”(이 놈아 그럼 애초에 이 상황에 나를 끌어들이지 말았어야지^^). 그 형(형수)은 내 친구와 술자리/식사 자리를 같이 할 때 돈을 내는 법이 없다. 친구는 샤시 사업을 하는데 악착같이 돈을 모아 어느 정도 목돈을 모아놓기는 했다비공식적으로 결혼에 한번 실패했고. 그 외로움,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는 낭패감(열등의식 같은 게 있드라) 같은 것이 모여 몇 사람 원래 알던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돈은 대부분 지가 낸다. 나도 어울리다 보니 그런 패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옆에서 그런 이야기 해주는 사람들도 있고. “항상 친구가 냅디다”. 물론 친구도 그런 모습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외로워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일 도와주면 그 비용 대신 소주나 맥주에 안주 하나 얻어먹는 정도. 하하 물론 헐값에.

 

친구가 나에게 연거푸 하는 말. “니는 직접 맛을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냐?”(니가 그런 말을 할 계제는 아니잖아^^)

그 형의 모습을 두고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형이랑 친구가 '앞서' 술자리에 나를 두고 한 마디. “니는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고 험한 꼴을 당해 보지 않아서 좋게 말하면 순수하다...좋게 말하면^^”.

 

친구 역시 돈 욕심이 많지만 변변한 취미생활은 하나도 없고 일하든가 저녁 되면 저런 형들 몇몇이랑 술 자리. 친구 역시도 내가 보기에는 어울리는 형들보다 조금 나을 뿐 내가 그려낸 풍경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은 모습이다. 그래도 더한 사람을 보면 조금 덜한 사람이 뒤에서 욕을 해댄단 말이지-.-. 근데 그게 또 세상 살다보면 내게는 일상다반사더란 말씀. 친구는 내게 양가감정을 지니고 있다. 좀 배웠고 믿을 수 있고 가끔 먹물들과 일할 때 자신을 커버해 줄 친구란 생각 + 정작 타인이 나를 간혹 어쩌다 그런 사람으로 칭찬할 때 나를 기피하려는 심리. 친구는 여튼 겉보기에 멀쩡하다. 나랑 소통하려는 욕구는 있다. 무언가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때 보면.

 

어떤 친구들은 나를 불편해 하면서도 내가 지닌 잡다한 지식이나 사소한 문제 해결 능력 때문에 나를 저런 식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심 내가 불편한 존재이다. 나는 그들을 이해 관계로 대하지 않으나 그들은 그러한 탓. 또 어떤 친구들은 어쩌다 한번 보아도 반갑고 별 말 없어도 이심전심 말이 통한다. 그런 친구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친하다는 모습을 보이며 자기 위안을 일삼는 친구나 이웃들과 같이 대할 수는 없는 일.

 

주변을 가만히 보면 그렇다. 내 눈에는 빤히 보이는데 거짓말을 한다. 지들은 세상 살아봤고 나는 세상 물정을 모른댄다. 시간이 흐르면 그들을 알게 된다. 내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걸, 연민 때문에 차마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어떤 일들을 처리해 주었다는 걸.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불편한 존재일까. 그들을 보면 임이네와 평산이가, 영화 혈의 누가 생각난다. 그들의 한과 그들의 르상티망. 그들에게 유일한 잣대는 '물질과 소유와 출세'이다.

 

나는 그들을 일러 생명이라고 한다. 생명들은 서로에게 '동고同苦'나 '동락同樂'은 되나 '동고동락'은 그들에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지개이다.


물론 그 생명들은 세상 도처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나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지만 도시에 살면서 수많은 내 친구와 그 형들을 만났다.

그들은 항상 내게 내 친구와 형들처럼 나를 대하고 그들처럼 말했다.


그런 그들에게 들려주고픈 한 구절:


"이 거 왜 이래? 나 백화는 이래봬도 인천 노랑집에다, 대구 자갈마당, 포항 중앙대학, 진해 칠구, 모두 겪은 년이라구. 조용히 시골 읍에서 수양하던 참인데...... 야아, 내 배 위로 남자들 사단 병력이 지나갔어. 국으로 가만있다가 조용한 데 가서 한 코 달라면 몰라두 치사하게 뚱보 돈 먹자구 나한테 공갈 때리면 너 죽구 나 죽는 거야."


-황석영 작 삼포 가는 길, 백화의 한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