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 교수'의 '아주 낯선 상식'을 곧 읽을 것이다. 처음 책을 소개 받았을 때 내 머리 속에 떠올려진 생각은 이랬다.

"어떤 관점에서 이 책을 대할 것인가?"


내 생각을 '친일파 논쟁'에 대입해 풀어쓰자면, 친일파 논쟁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함몰한 나머지, 물론 친일파 명단 작성 등 역사 바로 세우기 등은 당연히 해야하지만, 친일파 인물을 색출하는데만 골몰했을 뿐 식민지 시대를 있게 한 이유와 원인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고찰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 결과는 어떠했을까? '신친일파'라고 이름 붙여도 무방한 새로운 부류가 탄생한 것이다. 


이런 신친일파가 생기게 된 역사적 청산의 실패는 아이러니하게도 강준만의 노무현에의 낭패와 맞닿아 있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영남패권주의를 타파하겠다는 강준만의 의도는 영남패권주의의 유일한 대항마인 호남을 철저히 영남패권주의에 종속케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그루식으로 표현하자면 '노무현 바이러스'. 변종영남패권주의가 지금 호남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생각을 '아주 낯선 상식을 어떤 관점에서 읽을 것인가?'라는 내 생각에 다시 대입한다면, 만일 이 책이 호남을 영남패권주의에 종속케 만든 주범인 노무현과 친노를 비판하는 범주에 머물렀다면, 내가 장하준의 '쾌도난마'라는 책을 읽다가 중간에 쓰레기통에 집어던진 것처럼 주저 않고 이 책도 쓰레기통에 집어 던질 것이라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친일파 논쟁에서 친일파가 있게 한 이유를 간과한 실수'를 '노무현이 있게 한 영남패권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고 노무현과 친노를 비판하는데에 그쳤다면' 굳이 시간 들여가면서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관객으로서 무대 위에 올라온 배우들의 NG 장면을 쳐다보는 것은 한번이면 족하지 않는가?



이런 나의 생각은 서평들을 읽으면서 정리되어 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자는 내가 염려했던 부분을 제대로 짚었다는 것이다.

“영남패권주의라는 개념 없이 세상을 보는 것과 그것을 인식하며 세상을 보는 것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식민지라는 인식 없이 일제강점기를 이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의 차이에 버금갈 것”
(서평에서 발췌)


이 저자의 시각을 고종석이 경향신문에서 해고된 계기가 된 칼럼에 대입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A : 그런데 묘하게도 선생님의 글에 반발한 것은 전통적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문재인 의원 지지자들이었지요. 선생님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의원을 영남패권주의자라 지적하지 않았는데도 소위 친노 세력이 ‘영남패권주의’라는 말 자체에 심하게 반발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B : 그들은 호남에 기생하는 영남파시스트입니다. 한국은 아직 민주주의 이전에 있습니다!
(고종석 칼럼에서 발췌)

고종석의 문장 A와 B 중 어느 부분이 고종석을 해고하는데 더 영향을 미쳤을까? 

만일, B라고 대답하는 분이 계신다면 '영남패권주의의 실체를 모르는 참 순진한 분'이라고 말해두겠다. 내가 믿기에 '그들은' B는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는 정치적 발언이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왜? 호남차별이 은폐되어 있는 것 이상으로 영남패권은 훨씬 더 은폐되어 있으니 'B'를 용인하는 것은 영남패권의 아량을 보여주는 것으로 말콤 X가 마르틴 루터 킹을 비판했던 '백인의 아량'과 같다. 반면에 A는 그 백인의 아량의 실체를 온전히 꺼집어 냈다는 것이다.



독자의 책을 읽을 관점과 저자가 책을 쓴 관점이 일치하므로 나는 이 책을 즐겁게 읽을 것이다. 물론, 서평들에 의하면 디테일한 부분에서 내 생각과 다른 부분들이 꽤 보인다. 장담은 못하지만, 영남패권주의의 실상을 밝히는데 아주 미약하나마 도움이 된다면, 디테일에서 갈리는 부분을 진지하게 비판할 예정이다.


그리고 내 생각과 저자의 주장 중 한 부분에서 크게 엇갈린다.


왜 저자가 그런 주장을 했는지 그 디테일을 읽어봐야 하겠지만, 영남패권주의를 타파하는데 정치적 해법을 내각제에서 찾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아쉬운 부분이다. 호남을 진보로 강제 포지셔닝하면서부터 영남패권주의는 더욱 공고해졌다는 것이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호남은 보수 진영에서 보수 아이콘을 가지고 영남과 사생결단을 냈어야 했다'라는 내 지속적인 주장은 뭘 모르는 주장일까?



영남패권은 대한민국의 물적, 인적 자원을 독점하고 생태계의 역사가 증명해주듯 한 개체집단을 필망의 길로 인도하는, 그래서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동종교배를 수시로 하기 때문에라도 깨져야 한다. 이런 동종교배를 가속화시키는 알리바이 소재로 호남차별이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깨져야할 것은 알리바이. 


이렇게 호남차별을 영남패권을 공고히 하는데 알리바이로 활용하는 구도에서 내각제가 그 알리바이를 깨고 영남패권을 타파하는데 도움이 될까? 


말콤 X는 일찌감치 마르틴 루터 킹에게 '당신의 온건한 발언이 매스컴에 보도되니 만족하는가? 백인들이 아량을 베푸니 기분이 좋은가?'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철폐되었던 것처럼 보여진 유색인종 차별, 특히 흑인에의 차별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려지고 있다. 그 것은 바로 백인과 유색인종, 특히 흑인과의 인구수 역전 현상에의 염려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는 것이고(전 교황 베네딕트는 아에 노골적으로 백인인구증산정책을 독려하기도 했다) 인종주의 발언을 수시로 하는 트럼프가 유력한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말콤 X처럼 폭력적 방법을 동원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의 내각제 주장을 아주 폄훼하여 표현하자면, '영남패권주의가 나누어주는 권력의 떡에 호남이 감사해야 하는 구도가 정착'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것은 '흑인이 아닌 흑인이었던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과 흡사하다. 오바마가 만일, 진정한 흑인(?)이었다면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을까?


내각제가 해법이 된다면 두손두발 들고 환영하겠다. 그러나 내가 믿기에 문제는 정면돌파할 때만이 그 문제는 온전히 해소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1987년에 독일명부식 비례대표 제도가 도입이 되었다면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흘렀고 문제의 직접적인 두 당사자 중 한쪽은 더욱 강해졌으면 다른 한쪽은 그들의 다른 쪽이 퍼뜨린 바이러스에 한참 허약해져 있다.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아~ 옛날이여'는 추억을 반추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의 문제를 타파하는데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