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스파이 브릿지라는 영화가 개봉했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오랫만에 냉전의 차가움이 느껴지는 정통 첩보물이었다고나 할까요.


여기에 영감을 받아, 아크로에 킴 필비라는 인물에 대해서 글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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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필비(풀네임 : 해롤드 아드리안 러셀 '킴' 필비)는 1912년 대영제국 하 인도 펀자브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유망한 아랍학자인 존 필비로, 가풍은 상당히 학구적인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 정부 소속인 ICS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별명인 '킴'은 키플링의 소설인 '킴Kim'에서 따온 것입니다. MI6에서 일했던 스파이들 면면은 상당히 문학가 혹은 문학 매니아 출신이 많은데, 필비도 이런 전통에 절대 위반되지 않습니다 :)


전형적인 영국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던 그는 캠브리지 대학에 진학한뒤, 거기에서 경제학 학사를 얻습니다. 대학 시절에 그는 많은 책을 읽으면서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어갔습니다. 후에 캠브릿지 5인조라 불리우는 친구들과 함께 마르크스주의자인 빌리 뮈젠버그를 소개받고, 이후 오스트리아 등 유럽 본토를 여행하면서, 소련 NKVD(KGB의 전신)의 지시를 받는 첩보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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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킴 필비


그는 영국으로 귀국하여, 리뷰 오브 리뷰스 잡지의 편집장이 되어 극단적인 우익 논조로 소련을 비판합니다.

당시, 공산주의는 상당히 혁신적인 이론으로 각광받던터라 - 조지 버나드 쇼 같은 인물은 공산주의를 최고의 시스템으로 극찬하기도 했었지요 - 이른바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소련에 대한 호의가 많았을 때였습니다. 킴 필비는 여기에, 자신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을 많이 만났고, 심지어 자신의 마누라인 앨리스 프리드먼이 공산주의였다는 사실까지 공개하면서, '실제로 공산주의를 겪어보니 그렇지 않더라'식의 논조로 대표적인 우익 작가로 변모합니다.

허나, 이는 철저히 소련의 지령에 따른 결과로, 소련은 MI6의 인재발굴 시스템이 주로 캠브리지 출신의 다중 언어 가능자이자 문학 애호적인 성향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에 킴 필비에게 우익인사적인 면모를 보이라고 주문하였습니다.


더욱이, 킴 필비는 '소련군에 대항할 영국군 전력 분석, 이대론 안된다!' 식의 기사를 써, 사실상 영국군의 전력을 소련에게 공개하는 수법을 자행합니다. 이 실로 대담한 정보 공개는 그가 우익인사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별 다른 문제도 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대한민국의 우익 언론인 몇 명이 떠오릅니다.)   


이후, 스페인 내전때에는 타임즈의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프랑코 정부의 정보를 소련에게 넘겼습니다. 그가 공화파의 공격으로 총상을 얻어 스페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참고로, 이때에 그는 프랑코와 히틀러를 찬양하는 기사를 다수 영국에 송고합니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그는 타임즈에 적을 두면서 소련의 폴란드 분할 등을 가열차게 비판하는 기사를 씁니다. 전쟁이 시작되자, 그를 눈여겨 본 영국 정부의 SOE(Special Operations Executive)에서 그를 프로파간다 담당 업무로 채용합니다.

이때 그는, 독일 무선통신 비밀 시스템인 애니그마의 해독 방법(그 유명한 앨런 튜링의 해석기법)을 소련에게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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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보부 시절 킴 필비



이후, MI6 섹션 5에 배속받은 필비는 본격적으로 이중첩자 노릇을 제대로 해냅니다.

그는 공공연히 자신의 공산주의 인맥을 자랑하며, 이들로부터 받은 정보를 영국정보부에 전달하고, 영국으로부터 얻은 정보는 소련정보부에 넘깁니다. 물론, 영국에게 전달하는 정보는 기만에 가득찬, 알아봤자 의미없는 정보였고 소련에게 전달하는 정보는 현재 서구권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공작에 대한 정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이자, 같은 이중첩자였던 캠브릿지 5인조(도널드 매클린, 가이 버지스, 앤서니 블런트 그외 불명의 한명)와 유기적으로 연계하면서 서로서로 협조하며 영국 정보부의 상층부로 서서히 진급합니다.


전시 중에, 필비는 미 정보부와 MI6가 독일에 대해 얻는 정보 일체를 소련에게 퍼나릅니다. 와중에, 미 정보부와 영국 정보부를 연결하는 핵심 고리가 되기도 하지요. 이것이 냉전 중에 정보 누수를 효과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전쟁이 끝나고 냉전이 되자 그는 지금까지 형성된 그의 정보 루트를 통하여 소련에게 정보를 쏟아냅니다.

주로 알려진 것만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서구를 희망하는 동독 그리고 소련 망명 희망자 탈출에 관한 제반정보

(교묘하게도 망명 희망자의 정보를 서구 정보부에 넘기고, 탈출 방법에 대한 정보는 소련에 넘겨서 서구 정보부를 만족시키는 한편, 결정적으로 망명탈출 작전이 실패하게 만듭니다.)


2) 동유럽에 대한 서구 정보부의 공작 활동

(냉전 기간 동안, 동유럽은 서구 정보부의 각고의 노력에도 죄다 공산화 되어버리는데, 알고보니 킴 필비가 모든 정보를 소련에게 넘겼던 것이 치명적이었다는 사실이 후에 밝혀집니다.)


3) 영국의 수에즈 운하 침공 작전


4) 중동 정세와 이스라엘 건국에 관한 제반 정보


5) 한국전쟁 중의 미국의 동향

(맥아더는 중공군이 참전할 때, 만주에 핵탄을 투하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소련은 이 사실을 중국과 공유하면서 핵투하 사태가 벌어질까봐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 정부는 맥아더의 이러한 주장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였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맥아더를 축출할 생각을 합니다. 킴 필비는 이러한 미 행정부의 의향을 소련에게 전달하였고, 소련과 중국은 이에 안도하고 중공군은 계속 한반도로 진주하게 됩니다.)



꼬리가 길면 밟히게 되는 걸까요. 50년대 중후반이 되자, 미국과 영국정보부는 무언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정보부 내의 모든 인물에 대하여 전화 감청을 시도합니다. 여기에 킴 필비의 소련 연락책 클라우스 푸쉬가 걸리게 되고, 필비는 문책을 받게 됩니다.

사실 필비는 2차세계 대전중에도 정보를 누설시키는 인물로 계속해서 의심을 받아왔습니다만, 공산주의 인맥이 있는 자라면 이정도 '원죄'는 당연하다는 식의 자조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의심이 강화되면 정보를 넘기는 행위를 중단했기 때문에 네 다섯번의 위기를 그럭저럭 넘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청 건은 너무도 확실했던 증거인지라, 필비는 이적행위로 법정에 서게 됩니다. 여기에서 그는 영민하게도 당시 서구 세계를 몰아치고 있던 '매카시 선풍'을 거론하며 자신은 공산주의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나는 공산주의의 적이다'라고 언론에서 당당하게 공개한 그는 이윽고 무죄를 선고받게됩니다.


그러나 MI6에서도 해고되고, 입지가 좁아진 그는 언론사 특파원을 전전하면서 중동 정세에 관한 정보와 자신의 무죄를 항변하는 기사를 쓰다가 1963년 1월 23일 저녁, 돌연 베이루트에서 유유히 사라집니다.

약 1년 뒤, 그는 소련 프로파간다에 의하여 자랑스러운 소련망명인사로 세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그간의 이중 첩자 사실도 비로소 확실하게 밝혀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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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의 소련 기념 우표


소련에서 그는 대령 자격으로 KGB에서 일하면서, 유유자적 소련 생활을 하다가 1988년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소련은 영웅훈장을 그에게 수여했고, 장례식도 거하게 치뤄주는 한편 그를 기념하는 우표까지 발행합니다.


CIA와 MI6에게 이 사건은 최대의 실책으로, 필비에 의해서 파괴한 정보 루트를 복구하고자 무려 20여년의 시간이 소요되게 됩니다. 냉전 기간 동안, CIA는 KGB에게 맥을 못 추게 되는데에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요.


개인적으로, 필비는 이러한 이중 첩자 노릇을 꽤나 즐긴 것을 보입니다. 그는 늘 의뭉스러운 태도와 포커 페이스, 자조적인 자세 심지어 말더듬이 모습을 보이면서 의심을 최소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가 의심받아 법정에 서는 순간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그가 무고하다고 생각할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는 치밀하고도 조심스럽게, 42년부터 약 10여년에 걸쳐 정보를 넘깁니다.(언론사 편집장 했던 시기부터 따지면 20여년이나 되지요)


말년에 그가 행복했었나, 하면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소련 망명으로 인하여 지인들이 상처 받은 것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고립적인 소련 생활도 답답했겠지요. 그는 말년에 영국의 신문을 즐겨보며 고국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으며, 다행히도 소련이 붕괴되기 전에 사망함으로써 나름 만족하는 삶을 살다 가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