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가 고장이 났다. 애를 먹이더니 끝내 고장이 났다. 컴퓨터 두대에 각각 두 개씩 모니터를 달고 쓰다가 모니터 세 개만 쓰니까 불편하다. 아니, 불편하다기 보다 익숙치 않았다. 그래서 아예 모니터 한 대도 꺼버렸다. 회사에서처럼 모니터 두 대를 놓고 쓰려고. 그렇게 한달여를 보내다가 꺼놓았던 컴퓨터를 쓸 일이 생겨서 모니터 A/S를 받으려고 전화를 했다. 아 그런데 이런. 모니터를 가지고 오란다.

그 때서야 알았다. 중소기업의 제품은 A/S기사가 집에 오는 것이 아니라 수리센터로 모니터를 가지고 가야한다는 것을. 모니터 A/S를 받으려면 하루가 소비된다. 그리고 보증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추가로 돈을 더 지불해야할지도 모른다.


"내 하루 인건비가 얼마더라?"


잠깐 생각을 한 끝에 컴퓨터 모니터 A/S 받는 것을 포기하고 새로 모니터 하나를 구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구입한 새로운 모니터는 똑같은 중소기업의 똑같은 모델의 모니터.



이 것을 한그루 나는 '한그루식 착한 소비'라고 부른다. 



요즘 '착한 기부 마케팅'이 열풍이다. 미국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이 '착한 소비 마케팅'은 제품 하나를 사면 그 제품값에 해당하는 일정분의 금액을 기업이 기부를 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신자유주의에 동조한다면 이 '착한 소비 마케팅'에 적극 참여하라. 


그러나 만일, 당신이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며 미국의 샌더스 열풍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고 동조한다면 불편하더라도 중소기업 제품을 사라고 내가 권유한다. 이 것은 내가 몇 번 말한 '빵을 살 일 있으면 프랜차이즈 빵집이 아닌 동네 빵집에 가서 사라'고 주문했던 것과 같다.


당신이 대형마트에서 냉동된 고기를 사는 대신 동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산다면, 그리고 당신이 대형마트에서 냉장된 야채를 사는 대신 재래시장에서 야채를 산다면, 그리고 모든 소비자들이 이런 소비패턴을 보인다면, 단순한 이 행위만으로도 지구 상에서 소비되는 전력의 20%는 줄일 수 있으며 결국 지구 상의 모든 핵발전소를 없앨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일, 당신이 이런 나의 권유에 '동의는 하는데 그거 불편해서 참'이라고 한다면 인정하겠다. 단지, 샌더슨의 열풍에 동조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샌더스 여론에 동조하면서 나의 권유가 불편하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겠다.


"당신과 같아서는 세상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2. 성당에서 이런저런 기부를 한 영수증이 늦게야 도착했다. 연말정산용이란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이미 연말정산용 서류가 마감된 후이다. 짜증이 났다. 늦게 도착한 영수증을 제출하면 귀찮음 때문에 입을 내밀 경리담당자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아직도 이런 기부 문화에 의존한다는 생각이 다시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샌더스의 열풍은 '기부문화의 천국'으로 알려진 미국이 기부를 하지 않는 유럽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 것은, 가증스러운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미국 버젼'을 폐기하는 것이며 또한 가증스러운 '똘래랑스의 미국 버젼'을 포기하는 것이다.


기부란 사회가 공정치 못한 것에 대한 사회의 강자가 약자들을 달래는 용도에 불과하다. 복지로 인하여 사회가 상당히 공정한 유럽은 그러니 기부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기 소르망은 이렇게 말한다.

“시혜는 사회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고, 나눔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기부가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불공정과 강자 독식과 독과점 등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부의 불균형이 가져오는 ‘시혜’라는 개념의 분배가 기부인 것이다. 결국 기부는 부자들의 선한 의지에만 의존해야 하는 시혜적 행위의 하나일 뿐이다.

유럽은 기부가 적지만 미국은 기부가 많은 나라이다. 유럽은 기부라는 의존적 선행 대신 국가가 복지의 이름으로 이를 실천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위해 보장하는 것이 많은 나라는 기부가 적고, 개인의 능력과 행복에 국가의 개입이 적은 나라는 기부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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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기부문화라는 불공정한 사회에서 사회복지를 실현하겠다는 샌더슨의 공약과 그 열풍은 미국 국민들의 다수가 유럽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격려해주고 박수쳐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미국의 샌더스 열풍에 왜 화가 날까? 이런 '감정의 불일치'는 마치 미국의 '흑인 아닌 흑인'이었던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었을때 느꼈던 감정과 같다. 물론, 오바마가 대단한 업적을 남기기는 했지만 만일 그가 '흑인 아닌 흑인'이 아니라 '진짜 흑인'이었다면 그런 업적을 남겼을까?


이런 의문은 미국의 샌더스 열풍을 마주하면 더욱 짙어진다. 그 것은 지구 상에서 복지국가로 불리우는 나라들이 예외없이 그들의 부를 해외에서 거두었기 때문이다. 유럽제국들은 식민지 시대에 그리고 미국은 현대에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켜 그들의 부를 축적했다.


사실, 영국에서 대처리즘이 등장하게 된 것은 영국이 식민지에서 거두어들인 부가 탕진되어 더 이상 그들의 복지를 감당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식민지 시대가 더 오래 유지되었다면 대처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북해유전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대처리즘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면 '기부문화의 불공정 사회'에서 '복지의 공정 사회로의 전환'이 되겠고 그렇게 바라겠지만 내가 화가 나는 이유이다. 유럽이 식민지에서 부를 착취하여 축적할 때 거꾸로 우리는 식민지가 되어 부를 착취 당했으며 미국이 전쟁으로 부를 축적할 때 거꾸로 우리는 온 국토가 황폐화되어 다른 나라들의 부를 쌓는 제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의 요지는 미국에서 샌더스 열풍이 일어나도 우리는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가 미국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도 말이다. 우리가 지금 겨우 할 수 있는 것이라는게 기부 운동에 기부를 큰 마음 먹고 하거나 '착한 기부'라는 허울에 사로잡혀 '착한 소비 열풍'에 동참하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 내가 미국의 샌더스 열풍에 화가 나는 진짜 이유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