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가 한걸레에 이런 글을 실었다. 


1. 우선, 이 글 중 홍세화의 오류 및 비겁함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외면해온 시민에게 김욱 서남대 교수가 쓴 <아주 낯선 상식>(2015·개마고원)의 일독을 권한다. 나는 이 지면에 쓴 칼럼 내용으로 이 책의 저자에게서 준열하게 비판을 받았는데, 좀 더 섬세한 글쓰기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게 그 때문은 아니다. 책을 통해 “영남 출신 후보자가 나와야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이길 수 있다”는 주장에 부지불식간에 동조했던 나 자신이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속한다는 점을 알아야 했다. 그렇다면, 사죄도 하지 않은 전두환 무리를 먼저 용서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만큼 영남패권주의는 강력하다. 30%대의 콘크리트 지지층에, 종합편성채널 등 언론의 융단공세로 부동층에서 10% 정도를 보태 40%대의 지지율을 확보하면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에 힘입어 국회의원 과반 차지가 떼놓은 당상이다. (하략)


여전히 홍세화는 왜 DJ가 전두환을 용서했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이 부분만 따서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DJ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었던 내가 이 부분에 대하여는 비판적 입장이었던 DJ주의자들에게 DJ를 변호하느라(?) 충돌했던 지점이다. 물론, 그 덕분에 나는 오히려 '전두환주이자'라는 오명까지 뒤짚어 쓰기는 했지만 말이다.


최소한 3년 전까지는 전두환의 발포 명령은 법리적으로 증명된 것이 없다. '518 재단'에서조차 '미국의 극비 문서가 공개되지 않는 한'은 '전두환의 법적 유죄는 판단할 수 없다'라고 명시되어 있으니 말이다. (내가 아크로에 이 부분 관련하여 쓴 글이 있다)


그리고 DJ와 전두환의 518 학살에 관련되어 텍스트는 다음과 같다.(지금 생각해보면 극우언론들의 창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만)


"호남 사람들에게 사죄를 하라"
"내가 사죄할 일은 없다"


내가 해석하기에, DJ는 '정치적으로 사죄를 하라는 것'이고 전두환은 '법적으로 사죄할 일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DJ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적으로 증거도 없는 사안'을 가지고 '대통령이라는 권한'으로 사법처리를 해야하는 것일까? 한국 진보들의 사고방식은 이데올로기가 가득차 있을 뿐 도무지 법적, 합법적인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다. 물론, 전두환이 518학살의 원흉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것이 '발포 명령자'로서 사법처리 해야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런데 자신의 '영남 출신 후보론' 주장의 오류를 순순히 인정하기는 싫었던 모양이다. 전두환을 용서한 DJ를 언급하면서 스스로의 오류에 대한 알리바이를 대니 말이다. 나같으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영남패권주의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외면해온 시민에게 김욱 서남대 교수가 쓴 <아주 낯선 상식>(2015·개마고원)의 일독을 권한다. 나는 이 지면에 쓴 칼럼 내용으로 이 책의 저자에게서 준열하게 비판을 받았는데, 좀 더 섬세한 글쓰기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게 그 때문은 아니다. 책을 통해 “영남 출신 후보자가 나와야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이길 수 있다”는 주장에 부지불식간에 동조했던 나 자신이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속한다는 점을 알아야 했다. 그렇다면, 사죄도 하지 않은 전두환 무리를 먼저 용서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만큼 영남패권주의는 강력하다. 나조차도 혼돈할 정도로 그만큼 영남패권주의는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내가 진보인사들의 글쓰기에 질리는 이유는 이렇게 비겁한 글쓰기가 만연하고 있고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반성하지 않고 무언가 반드시 알리바이를 대면서 자신의 과오에 대한 합당성을 찾기 때문이다. 도덕성이 의식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 도덕성을 표출하는 것은 '비도덕성'이니 환장할 노릇이 아니겠는가?



2. 그리고 홍세화는 이런 말을 한다.

"진보적 담론들을 주로 외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


이 부분에 있어서도 홍세화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다.


예전에 홍세화가 툭하면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울거먹으면서 '우주는 똘레랑스를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라는 식의 논조를 펼친 적이 있다. 그런데 내 판단은 '오블리주 노블리제에 반감을 가지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똘레랑스'는 프랑스의 오만에 의한 야만적 서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똘레랑스'를 울거먹는 홍세화의 칼럼에 '도대체 프랑스에 얼마나 있었길래 툭하면 똘레랑스를 언급하느냐?'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 홍세화의 컬럼에는 이런 표현이 써있었다.

"내가 프랑스에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글쓴이 주 : 안티조선 우리모두의 3대 수장이었던 '햇귀'님의 조언에 의하면 홍세화가 당시 내가 글을 쓰던 사이트에 눈팅을 자주했으며 그래서 내 글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자신이 프랑스에 오래 있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할 정도이면서 '똘레랑스'를 울궈먹던 스스로의 행위는 저버린 채 '진보적 담론들을 주로 외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비겁한 자기변명에 불과한 것 아닐까?


홍세화는 정말 빌어처먹을 '국개론'을 있게 만든 '20대 개새끼론'의 창시자로서 반성을 먼저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홍세화의 20대 개새끼론의 전문은 여기를 참조)


3. 영남패권은 결국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귀착된다. 

솔직히 말해보자. 호남차별 발언을 하는 영남출신 상사에게 멱살을 잡고 싸워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다행히도 호남차별 발언을 하는 상사를 만난 적은 없지만 툭하면 한국사람을 멸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프랑스 상사,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그 프랑스 상사의 멱살을 잡고 싸운 적이 있다.


물론. 이런 용기를 발휘할 수는 없다. 호남차별 발언을 하는 상사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할 용기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왜 그럴까? 그 것은 보수의 가치가 진보의 가치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가장으로서의 체면이 호남차별 발언을 하는 상사를 비판하여 어쩌면 짤릴지도 모르는 위기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런 호남차별이 (최소한 인터넷에서는) 노무현 정권 이후로 '확실히' 극성을 부리게 된 이유는 바로 진보들이 사회적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범은 바로 노무현 도당과 문재인 그리고 친노들이다. 만일, 노무현이 유능했더라면 문재인이 유능했더라면 그리고 친노와 친노 논객들이 유능했더라면 지금처럼 호남차별 발언이 횡행했을까? 호남차별 발언이 극심하다는 것은 한국 진보의 퇴행을 의미하는 것이고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호남차별 발언이 없어진다는 것은 영남패권주의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홍세화는 구 민주노동당 시절 비례대표에서 영남에서도 10% 이상의 득표를 했던 것을 모르는가? 그리고 그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의원들이 제일 먼저 선언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선거 전 : 직계는 물론 방계까지 재산공개를 하겠다.
선거 후 : 직계까지만 재산공개르 하겠다.


홍세화의 글을 보면서 여전히 영남패권주의를 타파하기 위하여 진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여전히 모르는 것 같다 답답하다.


독일의 역사가 린트니(Theodor Lindner)는 보수와 진보를 지속(Beharrung)과 변화(Veranderung)의 두 경향으로 나누고 이 두 모순된 경향이 사람마다 내부적인 심리적 상호 견제에 의하여 원활히 영위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보수가 특별한 이론이 없는 이유가 '전통과 관행 그리고 편견'을 답습하면서 그 전통이나 관행 그리고 편견을 깨려는 진보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남차별 그리고 영남패권은 이런 보수의 경향의 극단적인 행태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진보가 해야할 일은 분명하지 않는가? 바로 '보수에서 진보로의 전향' 또는 보수에서의 나쁜 것들을 타파하려는 움직임을 주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 한국사람들은 진보의 가치를 더 우선으로 하는 비율이 60%를 넘었다. 그걸 노무현과 친노 도당이 영남패권이나 호남차별 타파를 위한 동력으로 활용하기는 커녕 망쳐버린 것이다.


30%의 철밥통 운운하는 홍세화는 '20대 개새끼론'의 영남 버젼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역량을 키우지 않고 맨날 남의 탓만 해서는 So what? 뭘 어쩌자는 것인가?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