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영남패권주의가 존재한다'엔 이쪽이든 저쪽이든 얼추 동의하는 것 같은데,
한다하는 논객들 간에도 논쟁은 평행선이고 그러다보면 감정다툼...
어디까지가 영패인가 또 영패가 얼마만큼 악성이냐에서 갈리는 걸까요?
보면 접점이 영 없는 것도 아닐진대 말이죠...


원문: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2990

[반론] "호남에 민주주의가 부족하다"는 장은주에게 답한다


 [김욱, 헌법학자 서남대학교 교수]

 호남의 '민주주의'가 부족하다고?

이 글은 내 책 <아주 낯선 상식>(개마고원 펴냄)에 대한 논박을 담은 장은주 교수의 시평(<프레시안> 2016년 1월 27일)에 대한 반론이다. (☞관련 기사 : 호남이 '세속화'되어야 한다고?)

나 는 이 반론을 쓰기까지 상당히 주저했다. 내가 보기에 장 교수의 시평은 논리를 담고 있다기보다는 감성적 호소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논리는 반박할 수 있지만 감성은 반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반론하려는 것은 이런 글이 많은 이들에게 마치 어떤 논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선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선 나는 장 교수의 글에서 "'지역 모순'이라 지칭되기도 하고 '반(反) 영남 패권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는 둥, 도무지 통상적인 사회과학적 인식 틀로는 포착하기도 힘들어 보인다"는 문구를 읽고 내 두 눈을 의심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지역 문제가 "통상적인 사회과학적 인식 틀"과 전혀 관계없단 말인가 아니면 지역 문제와 우리나라 현 정치 상황이 관계없단 말인가? 어느 쪽이라고 대답하든 가히 충격적이다.

말이 나온 김에 나도 확인해둔다. 내 책에 담긴 호남의 복수 정당제 쟁취 주장을 분열이라는 이름으로 공격하는 친노 세력은 노무현의 '지역주의 양비론'을 떠받들고 있다. 그런데 패권 지역과 피패권 지역 모두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이 양비론이야말로 나로선 듣도 보도 못한 지구상에 족보도 없는 이데올로기다. 아, 어쩌면 '일베'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

장 교수는 "도대체 지금과 같은 시대에 민주공화국의 서로 다른 지역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도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대립과 갈등을 빚어낼 수 있다는 것인지"라고 한탄한다. '대립과 갈등을 빚어낼 수 있는 것인지'가 아니라 "대립과 갈등을 빚어낼 수 있다는 것인지"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는데 그렇게 보는 사람이 뭔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째서 그 엉뚱한 지역 모순이라는 걸 계속해서 정치적 인식의 토대로 삼겠다는 것인지"라고 거듭 한탄한다.

그렇다면 이제 영남 패권주의가 '있다'는 나와, '없다'는 장 교수의 입장 차이가 분명해졌다. 내 입장을 문제 삼았으니 당연한 얘길 정리하겠다. 만약 영남 패권주의가 없는데 내가 지금 이러고 있다면 그건 내 죄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돼 있다면, 그걸 "정치적 인식의 토대로 삼"는 건 결코 내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지상을 외면하는 천상의 신선들이 사죄할 문제다.

장 교수는 위와 같은 내 주장이 "5.18은 북한에 조종된 호남인들의 반란을 영남 사람들이 나서 막는 과정에서 생긴 사건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영남 패권주의 세력의 그 말도 안 되는 마타도어에 포섭될 때에야 나올 법하지 않은가?"라고 묻고 있다. 놀랍게도 장 교수는 지금 막 온 천하에 천기누설을 했다. '영남 패권주의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 위에서 내 "정치적 인식의 토대"가 잘못됐다고 공격한 건 어찌되는가?

아마도 장 교수는 영남 패권주의 세력을 영남 패권주의 세력이라고 말하면 그들의 프레임에 걸리는 것이니 상대하지 말라고 충언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영남 패권주의 세력이 무슨 홍길동 아버지라도 되는가? 어떻게 영남 패권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영남 패권주의 세력의 주장에 "포섭"되는 것으로 돌변하는가? 단언컨대 내겐 장 교수 같은 착한 영남인이 아니라 그들 "영남 패권주의 세력"에 저항하는 게 더 중요하다. 장 교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유사 이데올로기가 지금도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고, 과거엔 광주 양민까지 학살했기 때문이다.

장 교수의 이상한 논리는 바로 그 뒤에 이어져 나오는 "주위 사람들의 온갖 질시와 배척을 견디면서도 '전라도당'이라고 낙인찍힌 당에 투표해 온 많은 영남 사람들은 이제 어찌해야 한다는 것일까?"라는 말에서 극에 달한다. 심지어 호남이 이제 세속화되어야 한다는 내 주장과 관련지어 "영남의 소수파 민주 진보 세력은 (…) 호남 사람들에게 큰 배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난 그것이 알고 싶다. "영남의 소수파 민주 진보 세력"은 대한민국의 민주 진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라도당"을 위해서 투표했는가? 그래서 호남 사람들에게 "배반감"을 느낀다는 말인가?

장 교수는 그들 영남 사람들이 어찌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내게 물은 것 같으므로 내가 대답하겠다. 그냥 투표하고 싶은 대로 알아서 하시라. 이 세상의 모든 유권자는 성인이다. 설령 "영남의 소수파 민주 진보 세력"이라 할지라도 모두 성인이다. 새누리당에든, 더불어민주당에든, 국민의당에든, 정의당에든, 녹색당에든, 그 어떤 당에든 각자 자신의 양심껏 투표하면 된다. 정통성이나 정당성 없는 당만 아니라면 유권자의 투표 행위는 누구에게 욕먹을 일도 아니고, 누구에게 과시할 일도 아니다. 그건 호남인도 마찬가지다.

읽 고 보니 위 말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말이 바로 밑에 있었다. 장 교수는 "영남의 개혁 및 진보 세력은 선거 때마다 사실상 그저 무의미한 사표만 행사"했고, "지역에 자신을 대변해 줄 국회의원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초 의회부터 광역 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온통 새누리당 차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호남은 늘 자신들의 정치적 대변자들을 가져왔"으며, "적어도 지역 정치는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논박을 계속해야 하는지가 의심된다. 그럼 호남의 일당 독재에 진저리를 치는 호남의 개혁 및 진보 세력은 없다고 보는가? 호남에선 그나마 찍고 싶은 당에 찍는 사표보다 더한 인질들의 사표를 낳는다. 호남의 사표가 되는 새누리당 유권자들의 불만이야 마치 없는 것처럼 시침 뚝 떼겠다.

내 주장은 간단하다. 호남에서도 헌법이 보장하는 '복수 정당제'를 쟁취하자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호남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는 주장이다. 호남의 일당 독재를 고수하자면 개혁의 표현이고, 복수 정당제를 주장하면 "호남의 일부 엘리트 출세주의자들의 은폐된 욕망의 표현"인가? 호남도 당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설령 결과적으로 몰표가 나오더라도 선택적 몰표여야 한다는 주장이 그렇게 반동적인가?!

장 교수는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스웨덴은 사회민주당의 오랜 장기 집권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호남은 왜 그런 모범을 따르지 못했나"라고 추궁한다. 즉 "왜 그동안 호남은 그 유리한 정치적 조건을 이용하여 호남 지역을 더 민주적이고 더 복지 친화적이며 더 인간적인 삶의 공간으로 만들지 못했는가?"라는 것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호남의 경우 진짜 문제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고까지 극언한다.

지금 장 교수는 영남이 나쁜 새누리당의 일당 독재 지방 자치를 통해 지상낙원을 만들지 못한 것은 당연하지만, 호남은 착한 더불어민주당의 일당 독재 지방 자치를 통해 왜 지상낙원을 만들지 못했냐고 추궁한 것이다. 장 교수가 볼 때 국가 차원의 경쟁 속에서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장기 집권한 것이 호남 지방 자치 차원의 강요된 지역 저항 체제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장기 집권한 상황과 똑같아 보이는가? 그래서 '호남'의 "민주주의의 부족"을 개탄하는가?

장 교수는 결론적으로 "지금 새누리당은 한국의 국민전선이다. 특히 호남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아니, 이런 최종적 자기부정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니!? 영남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새누리당을 프랑스 국민전선에 비유하면 새누리당이 영남 극우 패권주의의 본산이란 말 아닌가? "호남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니? 이는 지역 투쟁을 하자는 말 아닌가? 그럼 위에서 "어째서 그 엉뚱한 지역 모순이라는 걸 계속해서 정치적 인식의 토대로 삼겠다는 것인지"라고 한탄한 사람은 장 교수가 아니라 도플갱어였는가?!

장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역 엘리트들의 출세가 아니라 이런 위기의 민주주의를 구원하는 것이 호남의 긍지가 되면 왜 안 되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난 호남이라는 지역 단위에 호소하는 이 대목에서 장 교수가 급기야 지역주의자로 커밍아웃 했다고 본다. 장 교수가 굳이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호남은 충분히 긍지를 갖고 살았고, 충분히 조롱받았다. 그러니 "호남은 더 신성화되어도 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너무 들이대지 않았으면 좋겠다.

▲ <아주 낯선 상식>(김욱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진 심으로 묻는다. 장 교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대한민국의 책임이 아니라 호남의 책임이라고 믿는가? 대한민국의 개혁 진보 세력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어떤 한 지역의 신성한 의무감에 의해서만 구원돼야 한다고 믿는 지역주의자들인가? '호남 없는 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 개혁 진보 세력의 로망이 아니었던가? 아, 선거 전엔 '호남 몰표'가 로망이고, 선거가 끝난 후에만 '호남 없는 개혁'이 로망인가?

내 관심은 특정 정당의 집권이 아닌 위선 없는 정치 논리다. 단언컨대 친노 세력의 '지역주의 양비론'과 호남의 '반영남 패권주의 호남 몰표+개혁 진보 세력론(반새누리당 연대론)'은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상극이다. 너무나 슬프게도, 지금 내가 호남의 복수 정당제를 주장하는 것이나 호남이 이러는 건, 지난 13년 동안의 세월 속에서 친노 세력의 '지역주의 양비론'에 (내가 과거 열린우리당 사태 때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호남의 '반영남 패권주의 호남 몰표론'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패배한 결과다.

정치공학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앞으로 친노 세력이 떠받드는 노무현의 '지역주의 양비론'이 득세할수록 호남의 '반영남 패권주의 호남 몰표론'은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른바 개혁 진보 세력은 이념적으로 노무현의 '지역주의 양비론'을 택하든지 아니면 호남의 '반영남 패권주의 호남 몰표론'을 택하든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노무현의 '지역주의 양비론'을 숭상하면서 '반영남 패권주의 호남 몰표'를 원하는 건 부끄러움도 모르고 '나쁜 천사'를 갈망하는 것이다.

양식이 있고, 논리를 안다면, 제발 이러지들 마시라!
김욱 서남대학교 교수 (tyio@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