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개체가 단수의 집단으로 한데묶어진 그 품사를 가리켜 '명사(noun)' 라 한다. 논리의 모든 헛점들은 본질적으로 저 '명사' 의 본질에 기인하는데 예들어, '한국사람은 김치를 좋아한다' 에서 한국사람이 한국국적의 사람인지, 한국사람 다됐네의 한국사람인지. 김치가 절인배추에 갖은양념을가한 배추요린지, 일본 기무치도 김치인지.

즉, 논리를 구성하는 명사들에 대한 통일된 정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세상에 헛점없는 논리가 없다. 한국사람 다됐지만 김치만큼은 좋아하질 않는 미스터 스미스는 아직, 한국국적 아닌 한국사람이라는 술은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않았다류의 쉴드치기와, 기무치도 절인배추에 갖은양념을 가한 배추요리이지만 일본 기무치만큼은 김치로 인정할수없다는 김치요리 연구가 장선생님의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류의 원조이즘.



통일된 정의가 선행되지 않음으로써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을 논리의 헛점을 목전에 두고 상호간의 정의를 통일하려하지 않는다면 서로가 서로의 헛점만을 주구장창 떠들어대며 소위, '정신승리' 에 온갖정력을 낭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호간의 정의를 통일하려할만큼 현실의 사람들은 그리 관대하지 않다. 그러니 상대방의 논리를 검증하려할때 제1의 우선순위는 상대논리를 구성하는 명사에 대한 상대의 정의를 파악하는 일이다. 상대의 정의가 제 정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정신승리' 에 온갖정력을 낭비하는 일만큼은 피할지어다. 그러나 상대의 정의가 제 정의와 크게 다르다면 '정신승리' 에 온갖정력을 낭비할일만 남은것이다.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묘하게도 불편한얘기를해도 이야기보따리가 술술풀려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이상하게도 간편한얘기를해도 쌍욕과 비아냥이 역동적으로 오고가게되는 사람도 있다. 그 명사에 대한 상호간의 정의가 동일하거나 거의 비슷할수록 전자요, 이질적일수록 후자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