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인가 인구센서스 통계중 종교항목에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적이 있었습니다.

천주교의 비약적인 성장 개신교의 감소였습니다.

그 원인을 사회학적 차원에서 찾고 특히 개신교에서는 여러가지 논의가 분분하였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원인을 짚어내는 소리는 하나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모두 사회 정치 제도측면에서 접근을 하였습니다.

천주교가 현실참여로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라는 주장이 대세였지만 천주교모두가 적극 현실참여한 것도 아니었고 설령 그러했다하더라도 현실참여를 한다고 국민들이 종교를 바꾸거나 무신론자가 천주교에 입문을 할까요?

그렇다면 개신교에서 보수적인 대형교회나 교단들이 성장하고 진보적인 교단들이 더욱빠르게 쇠퇴하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미국역시 우리나라 천주교 뺨치게 진보적이며 사회참여적인 교단들이 많지만 그 교단들은 하나같이 신자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성서 번역의 문제로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골신부조차 라틴어성경을 읽지 못하던 당시 상황에서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성경이 나온 것은 사람들의 신심과 함께 중세 천주교회가 얼마나 기만적이고 성경에서 떠나있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지요


한국에서 개신교보다 100년이나 앞서 전파된 천주교가 개신교보다 교세에서 뒤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성서를 가졌느냐 못가졌느냐의 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천주교는1784년에 복음서의 부분을 발췌하여 번역한 성경직해광익이 처음이었지만 개신교는 1877년 이미 복음서를 모두 번역하였고 1911년에는 성경전체를 번역하여 일상적으로 사용을 하였습니다.

천주교는 개신교와 공동으로 1971년 신약 1977년 구약을 번역하기전까지는 완전한 성경번역본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공동번역은 개신교의 구역에 비하여 직역이 아니라 의역이었기에 보수적인 개신교의 반발로 공식사용이 안되었고 천주교와 성공회등에서만 사용되었는데 이 공동번역은 아주 훌륭한 번역이었고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번역이 되었습니다.


개신교는 지금까지도 구역번역의 틀을 사용하여 맞춤법과 일부만 개정을 하였기에 문맥이 이상하거나 이해가 어려운 내용이 많이 있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어법과 괴리가 되어있습니다.

몇년전 현대적으로 개정을 대대적으로 하여 표준 새번역 성경을 수년간의 노력으로 완성하였지만 보수적인 대형교단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자구만 수정한 개역성경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천주교의 부흥기는 이 성경이 보급되고 본격적으로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고 공부한 시기와 맞아 떨어집니다.

신앙은 자발성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자발성은 성직자들이 시킨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신앙체험과 깨달음 또 경전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해하기 쉽고 잘 번역된 성경을 읽게 된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에 열심을 내고 적극 참여한 결과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반하여 웬만한 대학교육을 받았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은 청소년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친근해지기 어렵고 신앙적 각성과 실천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천주교인들의 신앙스타일 그리고 모습들 개신교인의 신앙스타일과 모습은 제도나 교리에서 기인한 모습도 있지만 어떤 성경을 읽었느냐에따라 달리 형성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교파의 성경을 읽어보면 확실한 차이를 체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교가 현대화를 통하고 템플 스테이와 문화행사를 통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통계를 보면 정체내지는 가장 고령화가 심한 종교로 나옵니다.

불교는 나름대로 많은 장점과 자산이 있습니다.

천오백년이 넘는 역사 그리고 수 많은 문화재와 아름다운 사찰 또 많은 신도수를 자랑하고 있으며 정부의 지원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정체되고 있을까요?


저는 그것을 불교 경전의 보급에서 찾고 싶습니다.

시장이나 가게를 가보면 주인이 성경을 읽는 사람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 경전을 읽는 사람은 거의 보기 어렵습니다.

일반인들 중에서도 성경은 읽어보거나 적어도 한번쯤 읽으려고 시도한 사람이 많지만 불경은 거의 없습니다.

찾기도 어렵고 읽어도 무슨 뜻인지 해석이 없으면 쉽지가 않습니다.

무엇보다 불경의 한글화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문체부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지만 대중적으로 전달이 되지도 않았고 선사들의 책등 번역이나 영문번역사업등을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기독교처럼 불경하면 중요한 몇십권의 경전은 단행본으로 나와서 서점이나 어디에서 누구나 구입할 수 있고 읽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아직도 안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위키를 찾아도 성경번역의 역사는 나오지만 불경한글화의 역사는 전혀 내용이 없을 정도이니 그 많은 스님들과 불교 신자들은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불교는 사찰이나 문화로서 존재가치를 입증하는 현실에서 경전을 신자들에게 읽히게하고 가르치는 것이 쇠퇴를 막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