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 왕조시대에 대역죄인에 대한 형벌 또는 정치적으로 모욕을 주기위해서 이미 죽은 자들의 무덤을 파헤쳐서 목을 자르는 행위를 부관참시라고 하였다.
이것은 죽어서 편히 잠자던 고인을 모욕함과 동시에 살아있는 자손들에게 무한한 수치감 그리고 관전자들에게는 소름끼치는 경고였다.
아울러 죽어서도 무덤에서 끄집어내어 현실정치에 나와 두번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말조심 글조심하고 자신의 주장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이렇게 조선은 서서히 퇴행의 길로 들어섰고 5백년 역사는 아주 평화로운 듯 하였지만 발전은 없는 사회였고 억압은 오히려 깊어지는 사회가 되었다.

왜 2016년의 부관참시라고 제목을 달았는가?
부관참시의 뜻을 제대로 알고서 하는 이야기일까?
부관참시는 그것을 주도하는 자 당하는 자 그리고 목격하는 자들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중 가장 수동적인 자는 부관참시를 당하는자이다.
자신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무덤에서 불려나와서 목이 잘리는 황당함!
이거 안당해본 사람은 모를거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이 이렇게 지체가 되는 이유는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박정희가 적대적 의존관계로 권력을 유지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북한은 3대를 이어 남한은 2대를 이어 여전히 적대적 의존관계의 세습 통치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엉터리없는 현실을 깨야 할 야당과 진보라는 사람들조차도 죽은 사람들을 무덤에서 불러내어 알량한 야당의 권력을 차지하려고 혈안이다.
노무현 관장사로 10년을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이 약발이 떨어지자 이제 김대중의 무덤을 파헤쳐서 장사밑천을 삼고자 한다.
이것은 현대판 부관참시이다.
김대중의 입장에서 이것은 부관참시이고 피눈물 흘릴 일이다.

김대중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헌신짝 처럼 버리고 대북 송금특검을 주장하고 구속까지 운운하던 인간과 일당들이 그의 아내와 아들을 볼모로 김대중의 무덤을 파헤치고 자신들의 방패로 사용하려고 한다.

김대중의 필생의 사업은 민주주의와 통일이다.
민주주의는 이루었지만 통일은 진행형에서 임기를 마쳤고 자신이 쌓아놓은 통일의 초석이 노무현에 의하여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도 그는
이를 깨물고 참았다.
현명한 국민과 자신이 키운 인재들이 다시 통일의 물꼬를 틀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통일의 초석을 박살낸 인간이 뻔뻔스럽게도 김대중의 통일을 위한 노력과 정책을 폄하하던 사람들을 불러내고 중용하면서
대한민국의 김대중이된 김대중을 다시 호남의 김대중으로 유폐시키기 위하여 김홍걸을 이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분단 고착세력에 맞서 통일에 대한 담대한 대장정에 나서야 할 야권을 철밥통 싸움이나 하는 초라한 집단으로 전락시키는 짓을 하고 있다.

이것은 김대중에 대한 부관참시이다.
왜 대한민국의 정치인은 특히 야당은 죽은 사람이 없으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들은 김대중의 위대한 민족통일의 꿈을 계승하고 더 발전시키고 노력하지 않고 호남의 맹주로 가두어두고 표를 얻는 도구로만  이용하는가?
그것도 살아 생전에 반 김대중을 견지하고  반 호남을 바탕에 깔고 살며 능멸했던 인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