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나를 줄곧 보아 온 사람이라면 내가 안철수의 성공을 열망까지는 아니라 해도 상당히 바래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그의 정치세력은 아주 좋게 표현해서 심하게 위축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그가 수세에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는 이런 이유를 대고 누구는 저런 이유를 댄다. 우리나라에 그 수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마츄어 정치평론가들은 제각기 자기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그가 궁지에 몰렸다고 백이면 백소리, 천이면 천소리를 쏟아붇고 있다. 누구는 때묻은 호남 정치인들과 손을 잡았기 때문에 망했다, 누구는 그들과 손을 잡지 않고 고고한 척 했기 때문에 망했다... 하기야 이솝 우화에서 당나귀와 장에 가는 부자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는 행위를 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 경우처럼 자칭 지지자들 사이에서 정확하게 반대되는 조언이 나오는 경우도 참 드물지 싶다.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 그가 가장 경계할 것은 게타빔님도 말했듯이 조급해져서 자충수를 두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사람이 헤어나려고 할수록 악수를 연발해서 더욱 심한 곤경에 빠져드는 모습은 어디서나 보아온 광경이니까. 그에게 최선의 충고는 다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계속하여 지금의 스탠스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아직 그가 그리 심한 잘못을 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그의 세가 위축된 원인은? 글쎄... 내 개인적 판단을 말하자면 어차피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김영삼 김대중이 아닌 한 누구라도 멀쩡한 정당을 깨고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데 있어 지금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내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의원들 입장에서 "내가 종을 치고 싶으면 옆에 있는 종을 치지, 새로 종을 만들어서 칠 이유가 뭐람 ^^") 탈당을 하면서 "찬바람 부는 광야로 나간다"거나 "앞으로 가시밭길이 펼져져 있음을 안다"는 소리는 다름아닌 안철수 자신이 한 소리로 기억하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인가?

그와는 별도로... 나는 아직도 안철수에게 상당한 정치적 자산이 남아있다고 보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최소 두 번의 양보를 한 것이고 제정신인 사람들은 이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명분이다. 정치인에게 있어 상대방에게 양보를 하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며 정치적 거인이었던 김대중조차 이것은 하지 못한 일이다. 노무현이 아직까지 신화로 남아있는 이유 중에 하나로 상대방에게 경선 방법에 있어서 상당히 중대한 양보를 했던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경선에서 이기고 단일후보가 됐다) 세계사적으로 보더라도 이에 버금가는 행위는 이탈리아 통일전쟁 때 가리발디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모습이다. 뭐... 안철수나 가리발디가 천사라서 그랬겠는가? 정치인과 당시에는 정치인으로 부르기 어려운 사람 간 입장이 달랐을 뿐이겠지.

물론 명분이 있다고 다 된다는 것은 아니다. 3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터무니 없는 트집을 잡아 순전히 상대국을 멸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카르타고에 쳐들어왔을 때 그들에게 무슨 명분이 있었는가? 그렇다고 그때 하늘이 카르타고를 편들어 줬던가? 정치적 싸움은 힘의 논리에 따라 전개된다. 도덕의 논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러나 적어도 1인 1표의 보통선거를 실시하고 있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면 결국 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는 옳고 옳지 않는 행위의 구분에 대해선 사이코패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서 20대 정치신인 여성과 대결, 간신히 당선되고는 바로 주소지 옮겨 서울로 달아나고 두번 다시 부산을 얼씬거리지도 않으면서 엉뚱하게도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에게 "너 지금 있는 지역구 버리고 당선가능성 없는 부산에 내려가 나 대신 전사해라"라고 지시하는 해괴한 행위가 도덕적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데 있어 정의에 대한 대단한 철학이나 복잡한 이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