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죽으면서 찾아온 1980년 서울의 봄은 오랜 세월 독재의 압제 속에서 살아온 국민들을 환호케 했다. 안철수의 등장은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국민의 환호를 열망으로 대치했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서울역 광장 앞 회군에서 그늘을 드리기 시작했다. 안철수의 통큰 양보들은 그 대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안철수의 봄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내정했다.


서울역 앞 광장 시위를 주도했던 학생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으나 결코 조직화 되지 못한 집단이었다. 안철수의 봄에의 열망에 가득찬 사람들은 더 나은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할지 아젠다조차 정의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서울의 봄은 12.12 쿠테타와 518 학살이라는 군화로 짓밟힌 역사의 상처만 남긴 채 너무도 짧게 끝났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안철수의 봄은 이 땅 기득권들의 강고함에 밀려 짧게 끝날 위기에 처해 있다.


여기까지가 발생된 역사의 데쟈부이다.


군화로 짓밟힌 역사의 상처를 부등켜 앉고 민주주의 세력은 조직화 되기 시작했고 체계적으로 투쟁해 나갔다. 그리고 오랜 투쟁 속에 629항복을 이끌어 냈다. 이 역사적 사실은 우리가 한걸을 더 나간 대한민국을 원한다면 무엇을 해야할지를 알려준다.


안철수의 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또는 이미 안철수의 봄이 끝났다면 다음에 언젠가는 찾아올 그 봄을 위하여, 우리는 막연한 희망을 가슴 속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군화발에 짓이겨진 상처를 안고 투쟁했던 당시의 선배들처럼 좀더 조직화되고 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칼 맑스가 어느 책에선가 그랬다. "역사는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되풀이된다"라고.


서울의 봄은 비극으로 끝났고 안철수의 봄은 희극처럼 끝날 위기에 처해 있지만 만일 우리에게 세번째의 기회가 찾아온다면?


칼 맑스는 그 책에서 세번째의 되풀이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세번째의 기회마저 놓친다면 영영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해두었는지도 모른다. 변증법 정.반.합에 의하여.



어느 소설에선가 그랬다.


"두려운 것은 분노가 풍화되어 없어지는 것"


만일, 우리가 이런 실패의 역사를 또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약탈 국가에서 노예처럼 사는 수 밖에. 노예처럼 살지 않으려면 우선 나부터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짧지만 화려했던 안철수의 봄은 이제 그 결과를 역사 앞에 보여줄 시점에 다다렀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