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론은 보통 한 나라의 근본정신과 체제를 만드는 작업을 했느냐를 가지고 보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 부분을 논하기 위해 우리는 해방공간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고 보여지네요

우선 북한은 1946년 이미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위원장 김일성)에 의해 무상몰수 무상분배 형태의 토지개혁을 하게 되는데 그 근거는 2월 20개 정강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개혁을 기본으로 합니다

여기서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  누진적 소득세제, 최저 임금제(남한은 87년인가 그때 생김), 전반적 의무교육제, 대기업운수기관 은행 광산 산림의 국유제,일반 직접 평등 비밀 선거제, 일제청산, 생활필수품에 대한 국가가 시장가격지정

이런 강력한 사회주의 개혁안을 통과시킵니다.

바로 이러한 강력한 사회주의 개혁안의 통과는 그 이후 남한 사회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찬성이 70프로가 되도록 만들게 됩니다
http://orunkim.tistory.com/678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때 그 당시 여론이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이유도 박정희쿠데타가 무상분배 무상몰수는 아니더라도 저기 언급된 것들과 비슷한 그런 것인줄 알았다는 것이죠. 머 그 당시 남미등에서는 진보적인 즉 사회주의적인 군사쿠데타도 많이 일어 났구요. 물론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6.25로 인해 국민들이 반대한다고 해도 사회주의적 정책에 대한 선호는 대단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국민들이나 정치인들조차 쿠데타가 일어날 것을 알고 상당수 여론이 지지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사회주의적 혁명은 아니더라 그와 유사한 개혁을 기대하고 그런 것이 아닐까 해요. 사실 그래서 장준하나 기타 혁신계등이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때 처음에 지지하게 된 배경이 아닐까 해요.

그러나 박정희 쿠데타는 장면을 전에 쿠데타시 대빵으로 옹립하려고 했었던 적도 았었고 또 장면정부가 출범한지 몇일 안되어 바로 쿠데타를 모의를 합니다. 즉 쿠데타를 자체의 정당성을 찾을 수 없었다는 거죠. 심지어 4.19혁명 조차도 자신이 쿠데타를 할 기회를 앚아갔다고 불평을 할 정도였다고 하니깐요.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4055959&cpage=3&mbsW=search&select=swt&opt=1&keyword=이론과실천

사실 사람은 관념적인 지식과 경험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을떄 관념적인 지식으로는 일종의 환상에 빠지기 쉬어요. 쿠데타도 비슷한데 처음에는 외국의 사례등으로 인해 자칫 환상에 빠질 수 있는거죠. 그러나 실제 경험한 이후에는 그것에 대해 반기를  들게 되는데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쿠데타를 할려고 했을때 그 이후 양김의 역할도 있었지만 일단 경험적 차원에서 쿠데타가 먼지 알기 때문에 일반 국민차원의 반대정서가  그때에는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 있었다고 보니다.

그리고 우리가 1공화국 헌법을 보면 경제관련 조항에서 의외로 사화주의적인 내용이 많은 것도 앞에서 설명한 이유때문이지 않을까 하네요. 대표적인게 근로자의 이익분배균점권이나 통제경제적 내용 그리고 자연자원의 국유화조항, 사회적 기본권 조항 등이죠. 물론 유명무실한게 대부분이지만요. 일단 토지개혁이 사실 소작지의 38프로정도만 분배되고 대부분 사적으로 매각되어서 실효성이 많이 반감되기도 했으니

우리나라에서 미국에서는 그렇게 어렵다는 의료보험제도가 일찍도입된 배경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 남한은 사실상 전혀 토지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고 53년도에 가셔야 겨우 법이 통과됩니다. 물론 전쟁 전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해방공간에서 북한이 여러 정책적인 면에서 남한보다 앞서간 것은 사실이라는 거죠. 저게 남한보다 먼저 이루어지니까 남침야욕도 부린거구요. 특히나 남한에서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실시하면 농민 노동자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금방 공산화 할 수 있다고 자신한 거죠.

거기다 트루먼 대통령 당시 미국의 애치슨은 한반도가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제외된다는 애치슨 선언을 하게 되요
(다만 미국만 제외지 UN의 개입은 열어두는데 이 당시 UN은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는 점은 일단 기억할 필요)

그래서 결국 북한의 남침이 이루어지게 되구요.

나아가 보통 이승만의 업적으로 미군이 정전협정 이후에도 계속 한반도에 주둔하고 한반도에 일이 발생할 시 국회의 절차에 따라 개입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게 되는게 그게 한미상호방위조약입니다

그리고 아주 졸속이었고 이승만이 조봉암을 시켜 만들게 한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토지개혁은 6.25전쟁 당시 북한의 김일성의 토지개혁을 통한 자신들의 체제선전에 대한 반대논거로써 구실하기도 해요. 물론 원안보다 많이 퇴색되도록 자유당에서 압력을 가하는데 정작 이승만 본인은 조봉암보다는 덜 적극적이었죠

물론 이승만의 개갞끼 같은 일은 무지 많습니다. 여기서 제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대부분은 아실 거에요.

아무튼 허접하긴 하지만 몇가지 업적 자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런 점은 평가 할 수 있을거라고 봐요

다만 이게 이승만만 유일하게 가능하다거나 이승만의 선견지명이나 탁월한 능력 머 이런 우상화논리로 가면 완전 개소리가 되는 것이죠

한상진 교수이의 발언이 상당히 예매모호한게 단순 공이 있다는 측면과 이승만 찬양논리의 중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라고 하면 보통 드는 것들은 형식적 민주주의 요소라고 해서 기본권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하는 경제질서, 사법권의 독립이거든요(헌재 판결참조)\

이승만 때 저기위에서 언급한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가 헌법안에 대부분 들어가요.

문제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헌법에 넣기 했는데 자기는 하나도 안지켰다는 게 문제일 겁니다. 안지켰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무력화 한 것도 많구요. 머 이건 박정희때는 3공때는 비슷했고 4공때는 더 심했으니까.

그리고 북한의 김일성이 공산화를 목적으로 남침을 했을때 이승만 집권기 막긴 막았으나 기실 그 내용은 매우 허접했던 것도 사실이구요. 거의 뭐 선조급이었으니깐요

다만 저기서 위에 언급한 토지개혁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후일 도움은 되었다고 할 수 있고 또 우짜든 형식적 민주주의를 위한 여러 제도를 미국과 독일 일본 헌법을 참조해 만들어 도압했다는 점에서는 자유 민주주의와 관련은 있긴 해요

아무튼 해방공간당시 70프로 가까이 사회주의적 가치에 대해 국민들이 목말라 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북한 식의 사회주의 헌법이 아닌 미국식 자유주의에 더 무게를 두면서 그 당시 여론을 가만해 사회주의적 내용도 구색을 집어 넣은 자유 민주주의적 헌법을 만들었고 토지개혁과 한미상호방위조약등으로 남한 내 공산화 방지에 대해 어느정도 공은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찬찬히 뜯어보면 좀 그렇더라구요.

일단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 제도는 위에서 설명을 했구요.

토지개혁인데 이것은 53년도에 6.25전에 법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 뒤로 완전 시행이 완료되는건 8년이후에요. 다만 우리도 법이 있었다 이런 걸로 심리적 효과는 있었다고 보지만.

혹자는 토지개혁의 경우 베트남의 예를 들곤 하는데 이것도 좀 구려요., 일단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은 성격부터가 달라요.  우리는 내전이지만 후자는 외세에 대한 저항적인 성격이 더 강했거든요. 프랑스가 먹으려고 했던것을 미국이 또 먹으려 하면서 문제가 생긴거라.
http://cafe.daum.net/hanryulove/KTsc/27508?q=%BA%A3%C6%AE%B3%B2%20%C5%E4%C1%F6%B0%B3%C7%F5&re=1

그리고 베트남에서 베트남의 경우 토지개혁에 대한 반응이 많이 달랐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겠네요. http://hyukjunseo.egloos.com/2742022

다만 그 당시 이루어진 토지개혁이 매우 부실했음에도 나중에 경제개발 과정에는 어느정도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인것으로 압니다

마지막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인데요. 이걸 가지고 일베에서 이승만 찬양하던 것도 봤는데

우선 애치슨 라인이 그어진 것으로 봐서 미국은 원래 남한을 버릴려고 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승만이 공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사실 미국이 처음에 남한을 군사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게 본 것은 사실이에여. 자칫 제3차대전으로 갈 수 있으니깐요. 더구나 이승만은 49년부터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는데 이건 미국을 볼때 매우 뜨아한거죠. 자칫 소련과 대결해야 하고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으니깐요

다만 애치슨라인은 미국이 영원히 발을 빼겠다는 것은 아니고  UN군이 담당이라는 것인데 상임이사국 비토권이 있으니 우리에게는 매우 불리한 거죠. 아무튼 이런 애치슨 라인으로 남한이 배제된 것은 사실이나  그 뒤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으로 인해 한미동맹이 이승만 덕분이다는 것은 조금 막 나간게

우선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가 배제된 것은 이승만이 앞에서 보듯이 한미동맹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거든요 즉 북진통일론 등으로 이승만 전대통령이 막나가면서 미국으로 하여금 소련과의 관계에서 제3차 핵전쟁의 위험떄문이라도 이승만을 멀리 하게끔 만들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미국으로 하여금 남한을 방어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된 이유일 수 있는 거죠.

해방 후 남북분단--->북진을 주장하는 이승만 전대통령에 대해, '북진은 소련과의 전면전을 불러온다'는 미국의 인식과 대립. 미국은 남한을 방어선(애치슨 라인)에서 제외함--->6.25 전쟁 발발, 낙동강까지 밀림-->미국 철수 준비-->월튼 워커 장군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음을 불사하고 남한을 지키겠다'선언-->실제로 낙동강 방어선 지켜짐-->맥아더 장군의 낙동강 전선 시찰 후 인천 상륙 작전 성공 이후 이렇게 된 상황이고 일단 낙동강 전선에서 함꼐 피를 쏟으므로써 한미동맹의 기본 인식은 싹텃다고 봐야 할 듯 싶어요

월튼 워커 장군에 대해서는 여기
http://rigvedawiki.net/w/%ec%9b%94%ed%8a%bc%20%ec%9b%8c%ec%bb%a4

이승만은 분명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들었다고 보는데 다만 그것은 어쩌면 친일+반공+친미+기회주의라는 정체성이 더 타당한 내용이 아닐까 하는군요.

여기서 저런 잘못된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선 대단한 국부라고 보기는 힘들겠죠. 다만 임정때 초대대통령이었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미국과 나름 대화가 되었고(비록 북진통일같은 헛소리도 해서 미국의 골치를 아프게 하긴 했지만) 해방이후 또 초대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즉 연속 대통령만 해먹으셨다는 점에서 일단은 국부로 해드리는게 좋을 듯 싶어요.








여기서 박정희 관련해서 기타 몇가지 추가해 보면요.

전 이순신과 같은 경우가 아닌 한 사실 어떤 인물이 아니면 무엇이 불가능했다는 논의는  잘 성립하기 어렵다고 보는데요 특히 한국 근현대사의 대통령중에 반드시 그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그 공은 불가능했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한국의 경우는 냉전질서 속에서 어느정도 운명이 정해졌다고 보기 때문이죠. 자유 민주주의 도입, 경제발전, 자유 민주주의의 현실화(형식적 민주주의의 현실화), 사회 민주주의의 도입과 현실화(실질적 민주주의의 도입과 현실화)는 사실 순서가 대충 정해 졌거든요.

다만 뒤에서 언급하지만 자유민주주의 도입과 경제발전은 냉전때문에 어느정도 미국이 그 도입에서 강제되지만 뒤의 자유 민주주의의 현실화 즉 민주화 부분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이 특이하죠. 독재자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냉전체제는 유지될 수 있으니깐요. 반면 독재자라 하더라도 자유 민주주의의 도입자체는 필요하고(반공의 명문을 위해 이념조작상이라도) 나아가 어느정도의 경제발전은 체제대결상 불가피한거죠.

형식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여기안의 댓글 참조
http://theacro.com/zbxe/free/385125

그래서 구체적으로 해당 업적에 대해 논해야지 전체적인 틀로 뭉뚱거려서는 매우 불합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봐요.

사실 구체적인 경제문제로 들어가게 되면 박정희 경제에 대해 깔것도 산더미잖아요.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3751&l=2755

http://www.kea.ne.kr/upload/catalogue_file/60a21aec9785858701f944f24f46446b.pdf

거기다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 탄압과 부정,  친일경력 남로당경력 기타 기회주의적인 모습과 엄청난 부패 등등을 보면 박정희에 대해서 폐부 깊숙히서 어떤 존경이 나오기는 좀 그렇더라구요. 그냥 경제성장기 어느정도 경제성장에 공이 있다 정도뿐의 느낌이고 지역화합차원에서 공을 언급해 줄 수는 있다고 보네요

사실 이 부분은 경제학의 경제성장모형에서 자본+노동+기술진보+정부역할만 있으면 경제는 성장한다는 건데 저 안의 논문은 박정희 시기 정부역할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입니다. 사실 자본은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많이 원조나 빌려왔구요. 노동은 최장시간노동이 있고 기술진보는 높은 교육열로 설명이 가능하죠.

얼마전에 경제학의 경제발전모형에 대해서는 제가 경부고속도로 부분을 말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4048507&cpage=3&mbsW=search&select=swt&opt=1&keyword=이론과실천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4042664&cpage=3&mbsW=search&select=swt&opt=1&keyword=이론과실천

박정희 개인의 역할 이런건 사실 행정학의 리더쉽 이런 부분에서 약간 언급되긴 한데 사실 그렇게 따지면 김일성이 초반 높은 경제성장률의 리더쉽과 박정희 리더쉽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거든요.  사실 박정희시기 고환율에 의한 수출주도성장이것도 프레이저 보고서등에 의해 잘 반박이 되었죠. 원래 화폐개혁을 박정희가 독단으로 한 결과 경제가 거덜났다가 케네디 정부의 조언에 의해 고환율에 의한 수출정책으로 전환.

저 경제성장모형에 한국 대만 일본 이런 나라는 사실 지정학적 요소가 추가되면 설명이 깔끔히 끝나고 오컴의 면도날 논리에 따라 구차한 박정희 개인의 어쩌고 저쩌고는 낄 건덕지가 없어줘요. 사실 현재 박정희 모델이 전혀 한국경제에 의미가 없음에도 박정희가 소환되는 것은 사실 아이엠에프로 인한 심적 박탈감이 가장 컸다고 보네요.

마지막으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있는데 산업화와 민주화는 관계가 없다는 걸로 결론이 났죠.  다만 경제가 어느정도(7천달러이던기) 발전한 국가에서는 민주화가 잘 후퇴하지 않는다는 아담 쉐보르스키의 논문이 있긴 한데 산업화가 민주화로 귀결되는 거랑은 아무런 상관없는 것인데 조갑제옹이 잘 모르면서 저 논문가지고 구라를 쳐놓은 관계로 한때 많이 낚이기도 했죠.

사실 중국이나 러시아 파키스탄 그리고 중동의 여러나라 싱가포르를 보면 잘 알 수 있잖아요. 소득이 일정수준 되더라도 전혀 민주화가 도입이 안되거나 도입이 되었다라고 거의 진전이 안되고 오히려 독재가 강화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니깐요. 단 아담 쉡르스키의 논문에 따르면 일단 민주화가 정착되고 진전이 된 나라의 경우는 일정 소득수준 이상인 경우 독재로 회귀하지 않는 경향성이 있다는 건 있지만요.

사실 정확히는 많은 나라가 독재로 인해 경제성장도 안되는 게 현실이죠. 다만 한국은 지정학적 측면이 좀 더 중요해서 미국이 냉전질서속에서 의도적으로 경제를 어느정도는 발전시킬 필요성을 느낀 부분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 당시 남한에 사회주의적를 찬성하는 여론이 70프로 가까이 되었으니 우짜든 남한을 친미국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남한의 경제발전이 필요했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 해요. 거기다 그 당시 북한의 경제성장이 장난 아닐때라 비교까지 되던 시기였어요.

사실 박정희는 이승만에 비해서는 그래도 공이 있다고는 보지만 경제부분에서는 공4 과6정도(장하준 교수의 글을 보면 공에 대한 설명위주로 해놓았더라구요), 나머지 부분은 거의 대부분 과라고 보는데요.

그런데 의외로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박정희에 대해 평가가 너무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고 일부 일베등에서는 박정희 우상화 역시 과하게 되는 면도 없지 않을 것 같더라구요.

다만 박정희에 대해서도 지역하합 차원에서 정치인이 공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