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을 투자해서 100을 회수하려하니 회수된 80 곧, 80% 회수율의 가치를 몰라보고 미회수된 20 곧, 20% 미회수율의 기회비용에만 존나게 집착한다. 100을 투자해서 100을 회수하려는 양반들은 미회수된 20 때문에 100의 투자가 실패란다.

그 양반들은 미회수된 20을 회수할때까지 회수된 80을 제품안에 꽁꽁 싸매고만 있는다. 그리고 미회수된 20은 쌍놈들이 양심이 없어서 그렇다느니, 부끄러운줄 알아야지라며 회수된 80을 제품안에서 푹푹 썩히고만 있는다.

그렇게 그 양반들은 평생, 미회수된 20이 회수되기만을 기다린다. 회수된 80이 제품안에서 푹푹 썩는줄도 모르고.



사람으로부터 '상처' 란 것도 마찬가지인데 100명을 만나서 100명과 동지가 되려하니 동지된 80명의 가치를 몰라보고 동지되지 못한 20명에만 존나게 집착한다. 100명을 만나서 100명과 동지가 되려하는 징징이들은 동지되지 못한 20명 때문에 자신이 '상처' 받았다며 징징댄다.

징징이들은 동지되지 못한 20명과 동지될때까지 동지된 80명을 외면하고만 있는다. 그리고 동지되지 못한 20명은 나쁜놈들이라 그렇다느니, 이땅에 정의가 무너져서 그렇다라며 동지된 80명을 외면하고만 있는다.

그렇게 징징이들은 평생, 동지되지 못한 20명이 동지되기만을 기다린다. 동지된 80명이 하나둘 떠나가는줄도 모르고.



실패라느니 상처라느니 가만히 그 실체를 들여보다면 정말 찌질한 신념의 산물이다. 그런 신념은 반드시, 수동적이고 피상적인 삶에대한 예찬의 근거로 기능하는데 그 신념을 4글자로 우리는, '완벽주의' 라 한다. 찌질함의 근본은 아이러니하게도 찌질리스일것같은 '완벽주의' 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