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안철수가 새민련을 탈당하고 독자세력화에 착수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 그는 죽으나 사나 자신만의 길을 가야한다. 본인 스스로도 후퇴는 없다고 했지만 어차피 새민련을 탈당한 것 자체가 잔도를 불사르는 행위임은 누구나 다 안다. 


안철수의 화두는 예나 지금이나 새정치이다. 이 레토릭이 안철수의 정체성이자 정치인으로서의 존립근거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새정치가 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의문은 계속 된다. 도대체 새정치가 뭘까?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야만 안도감을 느끼고 낯선 개념은 유사한 낯익은 개념으로 환치시켜야 비로소 판단이 작동하는 것이 인간이고 보면 이러한 의문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솔직히 안철수를 지지하는 나 자신도 새정치가 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몇가지 정리된 생각은 가지고 있다. 물론 개인적인 판단이고 이것은 안철수 본인의 것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각자가 자기 자신만의 새정치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것을 스스로 현실 정치에서 찾아보면 되는 것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새정치를 누군가가 행하고 있다면 그를 선택해서 지지하면 될 일이다. 단 한명의 정치가가 새정치를 화두로 삼았다고 해서 그가 세상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새정치 모델을 내놓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순진한 생각은 아닐까?


내가 생각하기에 새정치는 그 본질상 모호한 것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이것은 새정치가 그 실체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실체를 가지고 있는, 그 외연이 아주 거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얼굴이 없어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 그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경우인 것이다. 예컨대 보통사람들의 시대도 새정치요, 저녁이 있는 삶도 새정치다. 


남의 것을 가져다 쓰는게 새정치냐고? 뭐 어떤가? 정치인이 무슨 사상가도 아니고 보통사람들의 시대, 저녁이 있는 삶이 지금 구현된 것도 아닌데 설령 정치인 안철수가 저것을 목표로 삼아 새정치를 하겠다고 나선들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될 것인가?


더군다나 새정치가 뭐냐는 물음이 우문인 이유는 내가 보기엔 다른데에 있다. 내가 생각하는 새정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과정. 절차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최근 낡은 진보 청산과 패권주의의 소멸을 본인의 사명으로 내세우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물론 안철수 본인이 이것을 잘 실현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다.그것은 안철수의 성패에 달린 문제이지 새정치의 모호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안철수가 실패한다면 이것은 안철수의 실패이지 새정치의 실패는 될 수 없다. 그것이 정말 정당한 문제제기였다면 다른 누군가가 이를 이어받아 해내면 되는 것 아닌가? 낡은 진보 청산과 패권주의 소멸. 이것이 문재인 측이나 새누리당이 부정할 수 있는 명제인가? 본인이 안철수에 의해 패권주의로 지목된 것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가 먼저 이것을 청산하려고 노력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새정치는 승리하고 문재인도 승리하며 안철수는 패배할 것이다.


제목을 다소 자극적으로 뽑았는데 사실은 예전부터 안철수 의원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소위 86세대를 야인에서 권력층으로 유입시킨 인물은 다 알다시피 김대중이다. 김대중은 한국사회에서 소수파와 비주류의 상징적인 인물이었고 대권도 마지막 기회에 DJP연합을 통해서야 간신히 획득했다. 그러나 정권을 쟁취했다고 해서 김대중이 강고한 한국사회의 주류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에 김대중은 새천년민주당을 재창당하고 86세대를 전진배치하면서 주류세력의 교체를 시도했다. 그 시도가 성공적인지는 나로선 판단불가이나, 이 후 노무현을 통한 정권재창출을 이루고 노무현이 86세대를 자신의 핵심 인재 풀로 삼으면서 86세대는 지속적으로 주류세력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그것이 열린 우리당의 창당으로 나타난 것이다. 쉽게 말하면 노무현이 새정치를 해보겠다고 나선게 열린 우리당의 창당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휘하의 두 세력은 완전히 분열된다. 오랜기간 김대중을 보좌했던 이른바 동교동계는 신진 86세대에 의해 구태라는 이름표를 달게 된다. 나는 이 때의 김대중의 선택에 주목하는데 김대중은 동교동계 인사들의 볼멘 소리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지켰다. 노무현에 의한 정계개편을 묵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그 쪽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만약 당시 김대중이 막후에서 자신의 세력을 규합하여 노무현과 겨뤘다면 어떻게 됐을까? 김대중에게 그만한 힘이 없었을까? 하지만 김대중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물러날 시기를 알았던 것이다. 억울하고 분한 점이 있지만 자신의 시대가 황혼을 고한다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인 것이다. 이렇게 김대중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정치실험은 실패였다. 김종필의 회고록에 따르면 처음에 노무현은 야당대표들을 자주 청와대에 초청하여 국사를 논하고 협조를 구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지만 열린 우리당이 다수당의 위치에 올라선 이후에는 이것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국운영을 독자적으로 해나겠다는 의사표시였을 것이다. 그 후의 상황은 다들 알다시피 참담한 수준이다. 노무현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노무현의 말로는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일국의 대통령으로서는 부적절한 선택이다. 그는 그런 방식을 택하여 자신을 보존하는 길을 택했고 이 후 그 노무현의 이름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이 여전히 야권을 중심이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노무현은 죽었지만 여전히 건재한 것이다.


안철수는 이러한 현재 상황의 문제점을 직시한 인물이다. 김대중은 정신을 남기고 자신의 세력을 죽였지만 노무현은 본인이 의도했던 안했던 정신과 함께 세력을 남겼다. 이것이 노무현의 건재이고 동시에 패착이다. 노무현은 아직도 현실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며 다른 세력의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안철수를 지지하지만 안철수가 반드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안철수는 자신의 가치를 v3처럼 공유해야 할 것이다.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만약 자신의 길을 자신보다 더 잘 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인물이 있다면 그에게 기꺼이 길을 터주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태까지는 안철수가 이런 인물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안철수를 지지한다. 적어도 양보를 입에 달고 살지만 무슨 양보를 했는지 알 수 없는 인물보다는 2번의 큰 양보를 통해 안철수는 자신이 야권의 적자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새정치이다. 안철수의 민주당과의 합당, 그리고 그 이후의 탈당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민주당을 먹어 자신의 몸집만을 불리려고 합당했다가 실패한건지, 아니면 민주당과 힘을 합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했다가 독자노선을 걷는 것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지만, 12년도의 대선 양보가 양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정한 판단이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