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TV에서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난다. 로버트 레드포트가 주연한 마이클 리치 감독의 1974년작 "The Candidade(번안제목: 후보자)"라는 영화인데, 아마 화창한 토요일 낮이었을 것이다. 어린 아이가 보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였을텐데도 나는 친구들과 노는 것도 마다한 채 거실에 앉아 이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화려한 영상이 빠르게 전개되는 것이 나를 매료시켰던 모양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유능하고 소신있는 변호사가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고 당선되기까지의 선거운동을 보여주면서 그 과정 속에서 출마자의 초심이 어떻게 굴절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결말이 특히 인상적인데, 우여곡절 끝에 당선이 확정되자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가운데 정작 주인공은 패닉상태에 빠진다. 백스테이지로 물러나 초조함에 서성이는 그에게 선거참모가 다가오자 주인공은 그를 붙잡고 이렇게 묻는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지?" 참으로 묘한 여운을 주는 대사였다. 이 후에도 이따금씩 이 영화가 생각나는 때가 있었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면서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정확하게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당선전략은 있었지만 당선 후의 비전은 없는 상황을 깨달은 자의 공포..그러나 이 후로는 더 이상 이 영화를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고전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던지 영상대여점에서는 물론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도 이 영화를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으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대선에 출마할 당시 캐치프레이즈는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김대중이 대통령병 환자 따위가 아니라 당선 이후에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오랜기간 이를 준비해 온 인물임을 부각시키는 선거전략이었는데, 나는 이 때에도 영화 '후보자'를 떠올리면서 새삼 이 멋진 문구에 탄복하곤 했다. 로그송 또한 걸작이었다. "김대중과 함께라면 든든해요~" 신중하고 주도면밀했던 김대중은 최소한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했던 것이다. 아마 김대중은 본능적으로 이러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으리라.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질은 이러한 두려움을 느꼈을지라도 이를 인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은 그의 장점이자 약점이었다.  

 

여담이지만 사실 나는 정치에 큰 관심이 없다. 물론 큰 줄기는 대강이라도 파악하려고 애쓰고 개별 사안에 대해선 나름의 입장과 의견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나는 대체로 예나 지금이나 냉소적 방관자의 입장에서 크게 나아가질 못한다. 세상은 이런 나를 흔히 무당층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중도층, 회의론자, 양비론자, 회색주의자, 기회주의자, 리버럴리스트, 아나키스트, 심지어 프락치 등등 다양한 이름표가 붙곤 한다. 가끔씩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예컨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는 식의 비판을 듣는다 치면  내 입장에서는 나는 그대로인데 저들이 간이 되었다 쓸개가 되었다 하는 메타모르포시스의 향연으로 느껴질 때도 있는 것이다. 이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면 매우 피곤해진다. 나는 저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재미를 찾고자 한다.


예전부터 나는 격양가의 '帝力干我何有哉' 이 귀절을 매우 좋아했다.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상황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성찰에 기본적으로 동감한다. 물론 현실세계에서 이런 낭만적 사고는 퇴행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일갈이 내 내부에서도 여전히 기각되지 않는 이유이다. 무엇이 더 나에게 유익한가? 잘 모르겠다. 그러니 둘 다 가져가는 수 밖에. 핵심은 지금 현재 상황을 어떤 관점에서 규정할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투박하게 말해보자면 이런 의문에 대하여 어떤 답이 나오느냐가 나의 선택을 좌우한다. 새누리당은 과연 거악(巨惡)이라고 할 수 있는가?


스스로도 무당층으로 분류되는데 큰 거부감이 없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선거권을 가진 이 후로 꾸준히 민주당계열을 지지해왔다. 아무런 고민 없이 김대중을 찍었고, 별 거부감 없이 노무현을 찍었으며 최근에는 고민 끝에 문재인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그러니까 내가 무당층처럼 된 것은 꽤 최근의 일인 것이다. 당시 안철수를 지지했던 내 표가 문재인에게 간 것은 안철수나 문재인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박근혜 덕분이었다. 말하자면 새누리당 후보가 조금만 더 매력적이었다면 나는 어쩌면 그 쪽에 투표했을 가능성도 꽤 높았다는 얘기다. 정책은 비록 외피에 불과할지언정 새누리당의 공약이 훨씬 좋아보였으니까. 여하튼 대통령은 박근혜의 차지였고 나는 다시 정치에 관심을 끊었다. 임금의 덕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문맥은 한참 다르지만 누구 말마따나 새누리당이 집권해도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지금의 새누리당은 거악이 되기에는 한참 역부족이다. 말하자면 부당하나 위법은 아닌 것이다. 물론 과거 군사독재 시절이라면 그 세력을 지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안철수 의원이 새민련을 탈당하면서 "I'm back"을 외치자 정계가 요동치고 있다. 나는 안철수를 지지하지만 그에 대해 일말의 우려 또한 없지 않다. 그는 과연 준비된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최근 행보를 보면 상당히 일신했다는 증후들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도 준비를 더 많이 해야할 것이다. 중도층의 일원으로서 제발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