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 민주화 이후 4반세기를 거치면서 한국 자본주의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했다. 그럼에도 민주화 이후의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연구가 그에 앞선 권위주의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소하다는 것은 커다란 아이러니가 아닌가 생각해 왔다. 그러던 차에 장하성 교수의 신간 『한국 자본주의』가 출간되었는데, 그간의 연구 공백을 메워주는 데 부족함이 없는 대작이자 또한 역작이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방대한 경험적 통계자료를 축적하고 분석한 점이 인상적이다. 또한 경제성장과 부의 집중, 불평등의 진화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동력을 분석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토마 피케티에 관한 논의를 포함시킨 것도 관심을 끈다. 그 핵심은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지른다(r]g)는 피케티의 주장이 한국에는 왜 적용되지 않는지를 밝히는 데 있다.


그런데 서평자가 보기에 장 교수의 책이 갖는 최대의 강점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분석하고 설명하는 저자의 이론 틀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국가의 경제개입을 가능케 하는 ‘국가주의’(statism)와 ‘비자유주의’(illiberalism)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확실히 한다. 달리말해 자유주의에 확고한 이론적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한국사회의 진보적 공론장에서 소수 의견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이 문제는 민주화 이후 한국경제의 지배적 운영원리를 비판하는 진영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하는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비판자들은 신자유주의를 시장근본주의와 동일시하면서 경제민주화와 불평등·양극화의 해소 등과 경제정의에 적대하는 경제 이데올로기로 이해한다. 자본주의 생산체제가 만들어내는 모든 나쁜 것을 총괄하는 말로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의도하든 안 하든 자율적 시장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로 이어지기 쉽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국가주의와 비자유주의적 이념이나 가치와 친화성을 갖는 경향도 강하다. 그러나 경제에 대한 이러한 단순한 이해방식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실현가능한 최선을 추구하는 일을 어렵게 한다. 장 교수의 저서는 그 어떤 한국 경제학자의 책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왜 잘못되었는가를 가장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저자는 한국경제의 문제는 시장근본주의에 의한 시장만능 내지 시장과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이고 효율적인 시장질서가 만들어질 수 없도록 한 국가의 잘못된 경제정책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로 인해 대기업이 시장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기보다 오히려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 교수의 관점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는 시장근본주의가 아니라 국가와 대기업 및 다국적기업의 유착을 본질로 하는 것으로, 이는 신자유주의를 경쟁적 시장경제의 파괴자라고 정의했던 영국 정치경제학자 코린 크라우치(Colin Crouch)의 관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장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말하되, 이를 그 어떤 이상주의적 경제체제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대안을 찾지 않는다. 저자가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우리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시장경제의 가치와 원리를 통해 한국경제를 개혁할 수 있다는 강력한 사실이다.


『한국 자본주의』를 특별하게 평가하게 되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그것은 저자가 한국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현실에 기초하여 존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을 윤리적 평가 내지 경제정책 대안의 중심 기준에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본 서평자는 한국의 경제학자가 한국자본주의에 관한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의식을 그 중심에 포함시킨 사례를 거의 본 적이 없다. 혹자는 불평등의 완화와 재분배 및 복지를 포함하는 경제정의가 어떻게 자율적 시장경제와 양립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장교수는 존 롤스의 공정성의 원리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정의론을 한국자본주의 분석에 매우 인상적으로 결합해내는 데 성공했다. 경제정의를 민주주의와 양립 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크다.


중요한 책은 수많은 질문을 동반하면서 토론과 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장 교수의 책은 한국경제를 체계적이고 깊이 있게 분석한 중요한 책으로 평가될 수 있는데,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그동안 충분히 제기되지 못했던 한국자본주의와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 토론되고 비판적으로 검토되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