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사람들은 4.3영령을 모독한 원희룡을 왜 찍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원희룡이 제주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주도 사람은 일단 제주도 사람을 찍는게 맞지 않을까? 그렇다. 제주도는 제주도에 투표한다."


위에 예시한 텍스트는 노빠였던(지금도 노빠인가? 모르겠다) 김동렬이 계급배반투표를 설명한 글에서 따온 것이다. '하필이면', 내가 혐오하는 김동렬이, '하필이면' 내 고향인 제주를 예시로 들어 불쾌했기 때문에 기억이 난다. 전문은 다 읽지는 않아서 그 이후에 어떤 개소리를 늘어놓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계급배반투표에 대하여 중요한 화두를 던진건 사실이다.



이 예시는 (예상하건데 그 이후로 이어질)계급배반투표에 대한 설명의 반만 충족한다. 이런 예를 들어보자.


"왜 호남은 친노와 문재인에게 투표할까?"


그 이유는 계급배반투표가 이루어지는 이유 중 하나인 '정보 부족' 그리고 또 하나는 계급배반투표가 이루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인 유권자의 심리인 '더 미운 놈을 떨어뜨리기 위하여'이다. 흔히 '선거는 미운 놈을 낙선시키기 위하여 떨어뜨린다투표한다'라는 주장이 이 맥락에 닿아있다. 


호남에게 더 미운 놈은 바로 새누리당이다. 친노가 독재 vs. 반독재를 주구장창 울거먹는 이유다. 덜 미운 놈인 우리에게 투표하여 더 미운 새누리당의 후보를 떨어뜨리라는 메세지다. 그리고 안철수 등장에 노심초사하는 이유이다. 안철수는 아직은 미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운 이유라면 더 미운 놈인 새누리당 후보를 떨어뜨려야 하는데 언철수가 방해되는 정도?



그런데 호남사람들의 안철수에 대한 반응은 과거 노무현만큼 열광적이지 않다. 지금까지만 봐도 노무현이 대선 후보로 나설 때에 비하여 안철수가 보여준 것이 훨씬 더 많은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아마,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라는 심정'인 호남 유권자들이 노무현에 이은 안철수에 조심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안철수가 보장해 줄 호남 이익의 가능성 무산보다는 미운놈 새누리당의 대선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더 낭패스럽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안철수의 정치적 향방은 안철수 하기 나름이고 단지 '미운 놈과 덜 미운 놈 고르기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친노 진영'이 안철수에 대하여 노심초사하는 이유이다.



계급배반투표의 한국 버전의 오리지날 버젼은 강준만의 '거악 차악론'이며 또한 '비판적 지지'가 원조이다. 그 강준만의 논리가 정권교체라는 대한민국이 반드시 달성해야 할 역사적 대업을 이루는데 성공하는데 일등공신이었지만 노무현을 밀었던 것은 강준만의 부인할 수 없는 과이기도 하다. 어쨌든, 계급배반투표는 사실 미국과 유럽에서, 민주주의의 실험을 오래한 나라에서 심도있게 연구되는 과제이다. 강준만이 계급배반투표를 어떻게 응용해서 '거악 차악론'을 만들었고 또한 '비판적 지지'를 만들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흔히 이야기되는 '백인 빈민층은 공화당에 투표한다'라는 예시는 계급배반투표 연구의 좋은 사례이다.


"왜 백인 빈민층은 공화당에 투표할까?"


바로 백인 빈민층, 그러니까 피부빛이 하얗다는 것 이외에는 내세울게 없는 백인빈민층은 그들의 일자리를 뺴앗아가는 흑인, 이주자들을 미워할 수 밖에 없다. 미드 추리극에서 가끔 흑인이나 이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백인들이 연쇄살인을 하거나 테러를 하는 설정을 극화해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런 백인 빈곤층의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니 그 빈민 백인층은 자신들이 빈곤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의 구조에 대한 항의보다는 당장 눈 앞의 자신의 생존권을 다투는 적들에게 증오를 표출한다. 이는 철학적으로는 니체의 '노예의 도덕'과 관련되어 있어 보인다. 노예는 자기 밥상이 허술한 것에 대하여 주인에게 결코 불평을 표출하지 않는다. 단지, 다른 노예의 밥이 더 많다는 불평만 표출할 뿐이다.



이런 계급배반투표를 아주 잘 우려먹는 것이 새누리당이다. 레드컴플렉스가 시장의 총아로 아직도 맹위를-DJ의 햇볕정책 때문에 많이 누그러졌지만- 떨치고 있는 이유이다. 새누리당이 나쁜건 국민들이 다 안다. 하다 못해 영남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그들은 새누리당이 잘한다고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투표에서 몰표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더 나쁜 놈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빨갱이'로 낙인 찍힌 호남이 있기 때문이다. 미운 놈 호남에서 대통령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덜 미운 새누리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가 '소비자는 소비에 있어서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라는 가정을 한 것이 경제학에서 중대한 실수를 한 것이라면 '정치소비자는 자신의 결정에 있어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바탕으로 한다'는 오류라는,  그동안 미국과 유럽에서 민주주의 실험을 하면서 얻은 결론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계급배반투표(Class Betrayal Voting)이다.


정치학적으로 진보진영에서 호남에 '계급에 맞는 투표를 하라'고 닥달하는 것은 이런 계급배반투표를 모르거나 무시하는 무식함과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 미운놈인 새누리당이 없어져도 유권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바탕으로 투표하지는 않는데 계급에 맞는 투표를 하라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 계급배반투표의 한국 버젼이 국개론이다. 국개론의 기원은 홍세화의 주장으로 알고 있다. 내가 담벼락에 그 기원을 쓴 적이 있는데 많은 기록들에서는 고 김근태 의원의 '노망투표론'이 국개론의 원조로 기록되어 있다.



기원이 어찌되었건 계급배반투표는 정치발전을 위하여 학문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지만 국개론은 한마디로 개소리이다.


왜 국개론이 개소리인가? 계급배반투표의 연구 목적은 정치소비자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과정에 주목하지 그 결과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새누리당의 이명박이 집권하고 박근혜가 집권하고 만일 다음 대선에서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연구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개론은 당장 '노인네에게는 투표권을 박탈하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중대하게 어기는 발언도 서슴치 않기 때문이다.


이 졸렬하고 유치하지도 않은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것이 바로 국개론이고 그 원조는 계급배반투표이다. 하긴,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그리고 단재 신재호 선생이 갈파했듯 '사상이 한국을 건너오면 한국의 사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한국이 된다'라고 했으니 심도있게 연구되어야 할 계급배반투표라는 과제가 국개론이라는 개소리로 바뀌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겠지.


그리고 2002년, 전혀 업적이 없었던 그리고 지금도 '노무현 업적이 뭔지 두어개만 대달라고 하면 침묵하는 노빠들에게' 충고하자면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열풍은 그 상대방에게 본다면 '계급배반투표' 즉 국개론에 해당하는 투표였다는 점, 이 점은 명백히 하고 싶다. 내가 예전에 '노무현에게 투표한 국민도 멍청하지 않고 박근혜에게 투표한 국민도 멍청하지 않다'라고 주장한 이유이다.


빌어먹을 국개론은 선민론을 바탕으로 차별한국의 천국인 한국이 내놓은 슬픈 주장이다. 하긴, 백인 빈민층이 내세울 것이라고는 뽀얀 피부빛이듯 내세울 것 없어 자존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리들이 국개론을 신봉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 아니 인간이 지구에 나타나기 훨씬 오래 전의 원시시대부터 지구 상에 존재했던 생물들의 '생존본능을 위한 차별화'의 발로인, 반문명의 유전자가 좀더 극명하게 두뇌에서 활동하는 탓이겠지. 암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