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되어 년도조차 까먹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독일 통일이 22년 전 성사되었으니 브란트가 서울에 온 해가
대략 1987~8년 쯤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수상직에서 물러나 모처럼 한가한 동방여행길에 서울을 찾았는데 아직
독일 통일이 이뤄지기 전이고 그 전망도 외부인이 보기에 매우 불투명했었다.

 진객을 맞아 방송국에서 국내 일급의 논객과 통일 전망 관련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브란트와 마주앉은 인사
는 D 일보 주필과 시사저널 초대 주필을 맡았던 B 씨로 당시에 그는 시사나 정치 관련 명 칼럼을 쓰는 제1급의 논객
으로 자타가 인정하던 인사였다. 참고삼아 덧붙이자면 그는 반도통일의 선도자인 DJ와도 가깝게 지냈고 서로 말이
통한다던 사람이었다. 제도권 언론인 중에서는 비교적 양식있는 인사였다는 얘기다.

 아나운서 사회자가 대뜸  의미심장한 질문을 두사람에게 던졌다. 나는 우연히 텔레비를 켯다가  운 좋게?
그 장면을 봤기 때문에 지금도 그 장면이 아주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사회자가 브란트와 B씨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독일과 한국, 분단이라는 공통 문제를 안고 있는데요. 귀하께서는 어느 쪽이 먼저 통일 될거라고 예측하십니까?>
 
 텔레비의 속성상 그렇겠지만 아주 당돌한 무대뽀식 질문이었다. 그렇지만 보는 사람은 두 사람 반응이 무척 궁금
하고 흥미를 돋우었다.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한국의 1급 논객 B씨였다. 그는 그거야 생각해볼 여지도 없는 간단
명료한 문제라는듯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당연히 한국이 먼저 통일되겠지요.> 라고 말하고 브란트를 빤히 쳐다봤다. 브란트는 쉽게 입을 열지 않고 그 특유
의 부드러운 미소만 흘리면서 잠시 뜸을 들였다. 사회자가 답변을 재촉하자, 그제서야 그가 느리게 대답했다.
<독일이 먼저 통일 됩니다.>
브란트는 억양에 힘을 주지도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그런 조용한 말투가 웬지 섬뜩했다. 뭔가 일을 다
만들어놓고 온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 그 조용한 말투에서 감지되었던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아마 그 방송을 보던 모든 사람들이 브란트가 지금 외국에 와서 프로정치가 다운 허풍을 치고 있
고 B씨의 예측이 훨씬 타당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역시상 최악의 전범국 독일이, 구미 4강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한국 보다 먼저 통일이 된단 말인가? 더구나 한반도는 남의 땅 침략이라곤 꿈도 못 꿔보
는 천사표 나라 아닌가.

 독일이 통일된지 금년으로 22년 째. 한반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한, 어찌 보면 현 정권 아래 상황이긴
하나 더 악화된 감도 없지 않은 상태에 놓여있다.
통독 이년째던가 통일독일 문화사절로 동 베를린 오케스트라가 서울에 와서 모짜르트의 <주피터 교향곡>과
차이꼽스끼의 <비창>을 들려주던 것도 벌써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버렸다.

 이 시점에서 이 얘길 꺼내는 것은 한국의 정치권은 물론 지식인 사회의 통일 문제에 대한 대응과 예측이 너무
나 허술하고 빈약하다는 걸 새삼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문제전문가라는 사람들 얘기는 언제나 구름 잡는
식이고 시정의 아마추어도 할 수 있는 빤한 소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그들은 통일을 바라지도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왜냐하면 통일이 어찌어찌해서 된다면 자칭 타칭 북한 문제전문가라는 사람
들은 직업을 잃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성으로는 이해불가한 극우파들의 극성 역시 같은 이치로 해석된
다. 꿈에라도 통일이 되면 그들은 입지를 잃고 말 것이다.

 한 나라의 지성이나 양식을 만약 GNP나 GDP처럼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면 독일과 한국은 어느 정도 차
이가 나는 것일까? 그것을 아주 축소해서 가령 일정 수준 직위 이상의 정치권 인사나 행정부 인사들, 그리
고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인들만으로 샘플을 만들어서 그 지적수준과 양식의 정도를 수치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요즘 난장이들의 각축장이 되고있는 정치권과 그리고 우리 모두를 포함한 지식인 사회를
보면서 떠오르는 어처구니 없ㅎ는 생각이다. 자조적인 것이지만 남의 나라 침략은 커녕 처참한 피식민지
를 경험했던 나라의 백성으로 요즘 정치권의 혼미를 보면서 역사가 되풀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생
각마져 드는 것이다.
 엇그제 경향을 보니 김두관 경남지사가 <남북화해 분위기 조성에 기여한 점이 참여정부의 공로>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정직한줄 알았는데 그 사람도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