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에 대한 '위선의 정치공학' 비판

김욱 교수 <아주 낯선 상식>
영남후보를 호남몰표로 뒷받침하고 당선 뒤엔 호남의 지역주의를 공격하는 친노의 집권전략은 ‘영남패권주의’와 상통

호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중국공산당’/복수의 정당들이 경쟁하도록 만들어야/독일식 비례대표-내각제 개헌 필요

아주 낯선 상식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 / 김욱 지음/개마고원·1만5000원





서남대에서 헌법학을 가르치는 김욱 교수는 <아주 낯선 상식>에서 이런 논리를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입각한 위선적 정치공학”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노무현 이데올로기”의 핵심이라고 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주류를 이루는 ‘친노’ 세력의 철학이자 집권전략의 근간이라 할 이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그러나 현실화되기(성공하기) 어렵고, 설사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국정치의 주요 모순인 영남패권주의 대 반영남패권주의 구도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기에 편승해서 ‘호남의 질곡’을 더 연장하고 심화하는 ‘은폐된 투항적 영남패권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김 교수는 비판한다.


김 교수는 이 ‘위선적 정치공학’은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을 ‘지역주의 부패정당’이라 규정했을 때 시작됐다며 당시의 상황과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인상적이고 압축적으로 기술했다.


“거의 모든 호남인들은 그때까지 기나긴 세월을 ‘떳떳하고 용감하게’ 김대중당을 지지하며 반영남패권주의 투쟁을 해왔다. 그런데 어느날 함께 살던 노무현이 대통령이 돼 나타나더니 훈계하며 말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지역주의 부패정당을 지지하면 안 된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출발할 좋은 기회니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라!’ 얼마나 도덕적인 부자의 마음인가? 노무현은 호남의 반영남패권주의 투쟁을 훔쳐가버린 것이다. 이렇게 ‘호남 선도 개혁’을 믿고 영남패권주의에 당당히 맞섰던 호남은 ‘호남’을 도둑맞고 ‘호남 없는 개혁’이 돼야 한다는 도덕적 훈계나 듣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간 온 힘을 다해 호남을 지켰던 호남인들의 삶이 ‘무의미하고 추’하게 돼버린 것이다.”


이로써 영남패권주의와 호남의 저항적 지역단결이 동일한 지역주의 문제로 호도되고, 문제의 핵인 영남패권주의 프레임 자체가 ‘호남문제’로 뒤집혀 버렸다.


<아주 낯선 상식>은 호남인들에게 이제 노무현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라고 얘기한다. 지난 4·29 재보궐선거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광주서구을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한 천정배 의원의 낙승을, 김 교수는 마침내 그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는 지각변동의 조짐으로 읽는다.


김 교수는 한국에선 계급(계층)적 이익도 패권주의적 지역체제에 흡수돼 있으며, 진보정당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본다. 이에 눈감고 계급(계층) 문제, 계급당 문제에 치중하는 ‘주입식 진보’의 한계를 그는 거듭 지적한다. “영남패권주의 문제 해결 없이 대한민국의 정상적인 진보운동은 불가능하다.”


“호남지역과의 연대가 아니라 호남이라는 지역관념을 공격·해체하는 것으로 진보를 실현하려는” 노무현 이데올로기는 5·18 희생자들을 순교자로 격상시키고 ‘세속 광주’를 ‘성지 광주’로 만들어 거세하려는 영남패권주의자들의 전략과 결과적으로 별 다를 바 없다고 김 교수는 비판한다.


그는 노무현 이데올로기 이후의 대안적 전략으로 이런 제안을 했다. 먼저 “영남패권주의적 탐욕과 싸우자면서 어떻게 그런 지역적 욕망을 의제로 만들 수 있느냐. 그럼 둘 다 똑같지 않느냐”는 도덕적 비난을 거부하고 거기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호남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요구하라. 광주 정신의 역사적 의미는 반영남패권주의 정신이며 그것은 지역적 평등 정신이고 민주주의 정신이다.


그런 바탕 위에 호남 복수정당제를 도입해야 한다. 호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중국에서 중국공산당과 같은 위상을 지닌 사실상의 독재정당이며, 전국 차원에서는 일본 자민당의 일당 장기집권체제와 유사한 존재가 새누리당이다. 이 틀을 깨고 복수의 정당들이 호남지역에서 새누리당과 경쟁하게 만들어 호남의 세속적 욕망을 담아내고 반영남패권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최대한 받아내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게 중요한데, 투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통령제하에서는 인구분포상 호남이 아무리 일치단결해도 영남패권주의를 이길 수 없다고 보았다. 애초에 정상적인 경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깨려면 정당지지율(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아울러 내각제를 패키지로 도입해야 한다. 그리하여 ‘정당국가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만이 인구 차이에 의한 지역적 불균형과 계층(계급)적 불균형을 원천적으로 시정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줄기차게 개헌 투쟁을 벌여야 한다.


영남패권주의를 이대로 두고는 우리가 절대 더 큰 세상을 맞이할 수 없다고 김 교수는 얘기한다. 그것이 바로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에게 ‘아주 낯선 상식’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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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