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경사기도권] 왜 <송곳>은 <미생>이 되지 못했나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2290


"이제 와 <미생>은 기존의 룰이나 관습, 시스템을 옹호하는 데 우리 시대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한 콘텐츠가 되었다. 원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달리 <미생>이 정략적인 이유로 이쪽 저쪽 진영의 정책에서 엉뚱하게 인용되고 이용되었던 사례를 우리는 한동안 지켜봐왔다. 오 과장으로 대변되는 정직한 정규직 어른들의 세계에 소속되기 위해 장그래처럼 더 열심히, 치열하게 노력하라는 자기계발 콘텐츠로 호출되었다. <미생>이라는 이야기에서 판타지는 장그래가 아니다. <미생>이 창조해낸 가장 강력한 판타지는 오 과장이다. 오 과장이 대변하는 정직하고 합리적이며 안정적이고 다음 세대를 위해 양보할 줄 아는 어른의 세계. 그러나 그런 건 현실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오 과장이라는 판타지가 현실에서 확대 재생산되어 기존의 질서에 면죄부를 제공한다. <미생>이 폭넓은 팬덤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판타지가 거의 전 세대를 아우르며 제공하는 안정감과 저런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소속에의 열망 덕분이었다."

‘좋지만 불편하다’로 귀결되는 이유



 
반면 <송곳>은 앞서 말한 종류의 안정감이나 소속감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다. <송곳>은 성공하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송곳>은 단 한번의 성공의 경험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실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실패할 걸 알면서도 기댈 곳이 없어 소속되고 싶지 않은 곳에 소속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렇게 되고 싶다는 열망보다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공포를 먼저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다. 사실 이 공포는 자기부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 시청자의 대부분이 이미 <송곳>이 다루고 있는 현실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공포를 느끼는 건, 저렇게까지 절박해지지 않길 바라는 자기보호본능 탓일 것이다. 알코올중독 아버지를 치료받게 만드는 것보다는, 그저 오늘은 밥상을 엎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profile

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