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공양은 불가에서 최고의 이타행으로 손꼽힌다
김동리의 등신불에서 우리는 그 의미의 일단을 살펴볼 수 있다
자신의 몸을 태워서 중생들의 고통을 해결하고 소망을 이루기를 원하는 거룩한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것이 올바른 공양인지 아니면 생명을 도구로 사용하는 분신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수스님이 4대강 반대와 생명들을 위하여 소신을 하였고
월남이나 티베트에서도 스님들의 분신이 있었다.

사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소신은 정치적인 문제나 항의의 의미가 아닌 그저 중생들의 업을 대신하기 위한 소신 공양
자기 자신을 온전히 중생들에게 주는 의미에서 공양 ( 그래소 분신을 소신공양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는 중생들의 비원을 대신하여 또는 자신을 불태울만큼 간절함을 표현하는 것등이 소신공양의 애초에 의미였고 이것은 타자나 상대방과는 무관하게 소신공양자의 자의적인 보시인 것이다.

이런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소신공양을 / 따지자면 문수스님이나 티베트 스님의 분신은 소신공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하지 않나 싶다
본래 불가의 삼법인에 의하면 외부적인 조건이나 타인의 행동보다는 자신의 내적인 마음의 상태를 더 중히 여기는바 아무리 4대강이 이타행이고 티베트의 독립이 비원이라 할 지라도 거기에는 타인에 대한 저항과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의미가 있다고 할 때 본래의 소신공양의 의미는 아니라 할 것이다.
그런점에서 칼도님의 생명을 존중하는 승려로서 분신은 그다지 평가하기가 어렵다 할 것이다

다음으로 티베트 독립과 관련한 이해관계와 역사에 대한 간략한 정리를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