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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상 추억 등은 년륜이 쌓인 이후에 한층 어울린다. 그래서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들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이후 잘 흡수되고 감흥을 느낀다고 하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이십대나 삼십대 초반이었다면, 불확실한 미래지만 역경 속에서도 이런 
저런 야망에 한창 불타고 있을 때 이 소나타들을 들었다면 지금처럼 감흥이 크게 올까? 
당시에도 소나타 전곡을 들었지만 후기에는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회상의 애환을
들려주는 다른 음악은 있었다. 멘델스존의 <무언가>에는 <즐거웠던, 혹은 달콤한 회
상>이란 소제목이 나온다. 약간 달콤씁쓸한 이 곡에 유난히 집착했다. <무언가> 전곡
을 선호한 이유도 사실은 이 곡 하나에서 비롯되었다. 그 회상이란 유년기 회상이다.
거기서 그친다. 두 작곡가의 전혀 다른 성격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역시 무제(無題)의 곡-이 이토록 아름답고 유려하고 깊
은 위안을 안겨주는 곡인걸 최근에야 알았다. 좋은 귀를 가졌다고 자부해왔는데 의외
에도 깨우침이 늦다. 사실은 이 곡이 지닌 깊은 맛을 제대로 전해주는 연주와 만나지
못했다는 변명을 하고 싶다. 사무엘 페인베르크(Samuel Feinberg,1890~1962)를 만났
기 때문이다. 15분에 걸친 그의 연주를 들으며 담뱃불 끝이 손가락에 닿는 것도 잊을
만큼 거기 몰두했다. 곡이 끝났을 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멍하니 한참 앉아 있었다.
옆에 누가 있어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고 싶었다.
 
 즐겁고 밝은 회상, 암울하고 고통스런 회상이 있다. 그런데 고통스런 회상이라 해서
반드시 어둡고 누추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하라는 법은 없다. 가능하면 그 반대가 
좋을 것이다. 유년기 이후 내 기억들은 대체로 고통스런 것들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점이 이 30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점은 있다. 고통스런 회상도 얼마든
지 아름답고 유려하게 펼쳐낼 수 있다는 것을 30번의 3악장이 잘 보여준다. 이 곡 작
곡 당시 베토벤은 유일하게 마음을 쏟았던 조카 자살 미수 문제로 최악의 고통 속에
있었다 한다. 그런 고통 속에서 이처럼 호흡이 긴, 아름다운 소나타를 만들어 낸 것
이다.
 
 러시아 현대 피아니즘을 꽃피우게 한 네사람 중 1인이란 페인페르크의 명성은 들은
바 있으나 연주에 귀기울일 기회는 없었다. 그는 자기만의 연주미학을 갖고있는 8색
조의 연주가이다. 시작부터 베토벤 곡과는 어울리지 않게 경쾌한 터치로 움직이
는 게 심상치 않은 예감을 준다. 극도의 루바토, 잦은 미세음의 출몰, 감정의 굴곡을
세밀하게 그려내는 색채의 변화 등으로 자칫 단조롭고 무거운 고뇌의 곡으로 인식될
음악을 화려하게 변신시켜 놓았다. 교향곡처럼 입체감을 주는 그의 수법이 놀랍다. 
바흐 곡과 모차르트 곡에서도 이런 특징은 두드러지고 그 음악에 새로운 활력을 불
어넣는다.
 
 페인베르크는 악보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곡에 맞는 수법을 창안해 내는 것 같다. 거
기에 탁월한 기교가 필수이고 자기 철학이나 관점이 있어야 한다. 바흐와 모차르트,
베토벤 곡에 대한 대응이 각각 다르다. 그의 일관된 철학이 무엇일까? 그는 노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닐까? 노래가 되도록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주를 끌어나가면
서 극단의 루바토로 이 흐름의 신명을 돋운다. 그가 쓴 <예술로서의 피아니즘>이 지
금도 러시아에서 주요 지침서로 활용된다는데 아마 이런 내용이 있을 걸로 추정된다.
바흐 피아노곡 <Partita no.1>과 오르간 곡을 직접 피아노 용으로 편곡한 <코랄 전주
곡.BWV 663>, <Largo from Sonata for Organ.BWV529> 등을 들어보면 이런 점이 더 강
하게 느껴진다. 이 연주에서 그는 오르간의 맛을 살려 피아노 독주로는 전례없이 장
엄하고 유려한 음악을 들려주는데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대단한 기교라고 생각된다.
페인베르크의 바흐 <평균율> 전곡 연주는 일급의 녹음으로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는
데 그가 바흐 오르간 곡이나 파르티타 연주에서 보여준 기교와 혼이 결합된 것 같은
탁월한 세계를 감안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베토벤 소나타 30번의 경우 리히터의 스케일이 큰 연주도 좋고 길렐스의 엄숙감을
자아내는 연주도 좋지만 어딘지 평면적인 밋밋한 구석이 엿보이고 굴드의 연주는 너
무 초라하다. 그는 베토벤 곡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전부터 느껴왔다. 페인베르크의 
바흐 연주에서 글랜 굴드의 원형을 감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연인지 혹은 어느
시기 영향을 받은 것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한 세기의 스타였던 굴드를 생각하면 흥
미있는 소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진상이 어느쪽이건 바흐 음악에 바친 굴드의 헌
신과 업적을 낮게 평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템포와 아티큘레이션의 응축, 노래로
감흥을 끌어내는 수법 등 두 사람의 일치가 내겐 도리어 반갑게 느껴진다. 

  페인베르크가 알레그로에서 벼락치듯 빠른 진행으로 벌어놓은 시간은 아주 유용하게 
이용된다. 아다지오에서 느긋한 음미의 공간을 마련하기도 하고 가수가 노래할 때 숨고를
시간을 갖듯 연주중에도 짧은 멈춤을 자주 반복한다. 이 순간적 정지가 듣는 이에게
도 숨돌릴 시간을 주어 참 편하고 좋다. 그것보다 사실은 음악 자체가 한층 너그럽게
다가오는 효과를 낸다. 그는 피아노 연주 외에 3편의 피아노협주곡을 비롯, 적지 않
은 피아노 작품들을 작곡한 작곡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건반의 세계가 참으로 넓
고도 깊은 것을 페인베르크를 통해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