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맛으로 먹는게 아니라 향으로 먹는 것이다"



한 CF 광고의 카피이다. 뭐, '커피를 향으로 마시는 것'인지는 난 잘 모르겠고, 내가 사는 아파트 후문에서 20여분 쯤 걸어가면 '고급진 커피숍'이 있는데 그 '고급진 커피숍' 사장은 좋은 커피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고급진'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 커피숍의 커피맛이나 인테리어 때문이 아니다. 커피향을 음미하면서 마실 '고급진 취향'은 내게 없으니까. 인테리어는 척보기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그 것 때문에 '고급진'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커피숍이 '고급진 커피숍'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커피숍 한쪽에 놓여진 서재에 여러 쟝르의 책들이 500여권 정도 꽂혀 있는데 그 책들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들의 태반은 페이지를 넘기는 귀퉁이에 때가 묻어 있었다.



"이 책들.... 전부 사장님이 읽으신 책인가요?"


"허허허. 내가 그 책을 다 읽었으면 교수되었게요? 절반도 채 읽지 못했고.... 나머지는 사다가 꽂아놓았어요"



절반을 넘게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사다놓은 책들이 고급져 보이는 것들 일색이고 이따끔 눈에 띄는 '천박한(?) 실용서'가 오히려 생명력 있게 다가오는 서재를 보면서 커피숍 사장의 전직이 무엇이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일기는 했고, 궁금증이 생기면 몸에 두드러기가 일어날 장도의 희한한 버릇이 있는 나에게, '예외없는 법칙이 없다'는 금언처럼, 남의 호적 관련 궁금증은 몸에 전혀 두드러기가 일어나지 않기에 그냥.... 궁금증으로 묻어놓았다.



이따금, 휴일에 운동을 마치고 텅텅 빈 집으로 돌아오기가 그래서 혼자가 아니었을 때보다 더 자주 그 커피숍으로 발길을 향하고, 그래봐야 한달에 한번 꼴이지만, 커피숍에 들어서자 마자 서재로 가서는 내가 지난번 채 다 읽지 못한 책을 꺼내들고는 올 때마다 앉았던 똑같은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의 책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실례라 책갈피꽂이를 하나 사다가 내가 읽은 페이지에 꽂아놓고는 오는데 딱 한번, 내가 꽂은 책갈피꽂이 페이지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4인용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커피 한잔 시켜놓고 오후 네시경부터 저녁 열시까지 죽치고 앉아 책을 읽으니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겠지만 이런 나의 행동은 '커피숍 사장과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처음에 내가 그 커피숍에 갔을 때 우연히 책을 꺼내 읽었고 그 책을 채 읽지도 못했는데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 되어서 커피숍 사장에게 '이 책을 며칠 빌려줄 수 없겠느냐?'라고 했는데 커피숍 사장이 정색을 하면서 한마디로 No!라고 대답했고 그래서 무안해진 내 표정을 보고 미안했는지 책을 읽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셔서 얼마든지 계시다 가도 된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뭐, 아무리 고급진 책이라고 해도, 그 커피숍에서 십여분만 더 걸어가면 구민회관이 있고, 그 구민회관 옆에 도서관이 있으니 책 대출이야 얼마든지 하면 되고 또한 꽤 자주 책들을 대출하여 읽기도 했으니 책 읽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만 '그 커피숍에 있는 책들은 그 커피숍에서만 읽어야 한다'라는 정말 비논리적인 생각에 속박이 되면서 이제는 벗어날 수 없는 버릇이 되어 버렸다.




고급진 책들 중에서 내 취향에 맞는 책들이 50권 정도라고 치면 한권을 읽는데, 한달에 한번 꼴로 커피숍에 가니까, 3개월 정도.... 일년이면 네권..... 그러니까 내 취향에 맞는 책들을 읽는데 12년은 걸린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나는 그 커피숍에 커피를 마시러 가는게 아니라 책을 읽으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망외의 소득이라면 커피 볶는 냄새가 참 좋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커피 만드는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천만원이 넘는 바리스타 기계'를 사는 이유를 피상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손님,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만들어본건데 품평 좀...."


"아참, 사장님 소용없다니까요? 커피 맛이라뇨?"



나는 미식가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밥은 허겁지겁 먹는 스타일이고 술도 벌컥벌컥 마시는 스타일이며 커피도 거의 쓰리샷에 빈잔으로 만드는 스타일이다. 



한번은 친구들과 저녁 식사 겸 술을 마시고 음식점을 나오면서 '여기 돼지고기 맛 무지 좋네?'라고 했다가 '야, 임마 그거 소고기야!'라고 친구들이 포복절도를 하고 꽤 오랫동안 놀림감이 된 적도 있었고 와인 먹는 법을 배운답시고 '한모금을 입에 넣고 혀로 어쩌구 저쩌구... 조금씩 삼키며'라는, 편미분보다 수십배는 더 어려운 와인 마시는 법을 따라했다가 와인에 사래가 들려 그 고급진 레스토랑을 기침 소리로 뒤덮은 쓰라린 기억이 있는데 커피 맛이라니?



내가 커피 맛, 그러니까 '내가 커피 향기를 품평하는데 얼마나 부적격한 인간'인지를 피력했지만 커피숍 사장은 새로운 커피를 만들 때마다 나에게 폼평해달라고 한다.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다. 커피 품평을 부탁 받았으니 뭔가 품평을 해줘야 하고 하다 못해 입에 발린 소리라도 하려면 커피 맛에 대하여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커피 맛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 못하니 말이다.




딱 한번 있기는 했다. 커피숍 사장이 내 자리에 놓고 간 새로 만들었다는 커피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커피 한잔 마셨으면' 하는, 그러니까 내가 커피를 타러 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커피를 들고 내 침대에 오는, 내가 브루조아도 아니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집사나 와이프가 커피를 들고 내 침대에 올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겠지만, 느긋하게 게으름을 피우면서 마시고 싶은 그런 커피였다. 예전에 어머님이 살아계시고 또한 건강하셨을 때 몇 번 발생했던 사건 아닌 사건에서 느꼈던 그런 느낌 말이다.



내가 그런  느낌을 전하자 희미한 미소가 커피숍 사장의 입가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잘못 보았는지 아니면 제대로 보았다면 어떤 의미의 미소인지는 물어보지 않을 정도로 굼금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나는 책을 읽으러 한 달에 한번 정도 커피숍에 가고 커피숍에 가면 떄때로 커피숍 사장이 새로 만들었다는 커피를 마셔야 하는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한다.



그런데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커피맛을 보라는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다 보니 내 스스로 커피 맛이 조금 다른 것을 느껴진다는 것이다. 커피숍 사장이 만드는 커피에 비하기도 초라한 인스탄트 커피와 인스턴트 믹스 커피이기는 하지만 이 두 커피를 커피잔 또는 머그컵에 담아 마실 때와 종이컵에 담아 마실 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차이이다.



좀더 상세하자면, 인스탄트 커피로 블랙 커피를 만들어 커피잔에 담아 마실 때보다 종이컵에 담아 마실 때 더욱 쓰다는 것이다. 반대로, 인스탄트 믹스 커피는 커피맛에 담아 마실 때보다 종이컵에 담아 마실 때 감미로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확인해 보았는데 내 느낌은 항상 같다.



'이 차이를 커피숍 사장은 설명해줄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두드러기가 나는 희한한 체질의 소유지자만 나는 아직도 그 질문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왠지 그런 질문은 커피숍 사장을 희롱하는 것으로 인식될지도 모른다는 느낌과 커피숍에 출입금지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나만의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커피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커피숍 사장에게 내 궁금증을 질문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안하는게 맞다'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나만의 생각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중에 내 스스로 답을 발견하거나 누구에게 듣던지 그렇지 않다면 세월이 훨씬 더 지나서 커피숍 사장과 좀더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면, 아니 내가 그의 세계에 대하여 꽤 이해할 수준에 도달한다면 이 질문을 해도 될 날이 올 것이다.




"아, 왜 나에게 커피 품평은 자꾸 하게 해서"



만일, 내가 커피 품평을 강요(?) 당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커피와 종이컵의 미세한 차이를 알지 못하고 쓰리샷!을 하고 있을텐데 말이다. 지금은 이 비밀을 알아내느라고 커피를 최소한 파이브샷!은 하고 있다. 뭐, 이 정도만 되도 커피를 마시는게 좀 '엘레강스'하게 보이겠지?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