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구가 2백년에 걸쳐서 이루어온 근대화를 70년만에 압축성장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쟁이 있었고 민중혁명과 군사 쿠테타와 독재가 있었지요
전쟁의 폐허위에서 먹는 문제가 시대정신이었고 군사독재 아래에서는 민주화가 시대정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먹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정이 무시되고 온갖 수단과 편법이 동원되고 물신주의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민주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정권의 폭력과 그에 대항하는 폭력 그리고 흑백논리가 판을 쳤고 라벨링과 감성적 선동이 필요했습니다.

며칠전 김영삼이 사망한 것처럼 민주화시대를 상징했던 3김시대가 갔으며 그것은 이제 새로운 시대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우리시대를 주도해나가는 소위 486들이 여전히 과거 87년 이전에 갇혀있고 그때의 사고에서 한발짝도 진보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반대편에 서있는 소위 기득권내지 보수역시 아직도 종북 운운하면서 한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채 적대적 의존관계로 생존하고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 기득권의 적대적 의존관계 남한내의 진보와 보수의 적대적 의존관계는 교착을 전제로하고 교착은 그 누구도 먼저 앞으로 나서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착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부분에서 정체를 가져오고 그래서 한국 사회는 역동성을 잃어버린채 젊은  인재들이 9급공무원에 목을 메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죽은 사회이고 제로섬 게임입니다.
컴퓨터나 통신 기술의 발달로 과거에 비하여 같은 일을 하는데 5분의1정도의 사람밖에 필요하지 않으며 세계를 무대로 하는 경쟁에서 경쟁력을 갖추기위해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쓰거나 적게 고용하는 상황은 청년 실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시스템을 가진 사회라면 여러가지 창의적인  방식으로 젊은이들이 각자의 미래를 가꾸어 나갈 수 있는 인프라나 사회적 분위기 조건 투자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죽은 사회 정체된 사회이기에 젊은이들이 백만명정도가 좀 넘는 대기업, 공사 교사 공무원에 목을 메고 있습니다.
위에 거론된 직군들은 대기업을 뻬고는 거의 창의성이 필요하거나 생산적인 일이 아닙니다.
모두 돈을 소비하는 직군들입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는 것입니다.

우리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합리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많은 논쟁들 가운데 합리성과 논리로 토론이 진행되거나 승복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사실 이번 김영삼 사망에서도 우리나라 지성 특히 인문학자들은 통절한 반성을 해야 합니다.
살아있는 사회라면 김영삼의 3당합당과 imf 에 대하여 평가를 하고 과연 국가장을 할 만한 인물인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마땅합니다.
국가장을 결정하는 것은 권력자들의 정치적 의도로 할 수 있지만 시민사회나 지성인들은 국가장의 합당함에 대하여 또는 김영삼의 공과에 대하여 당대인으로서 치열한 논쟁이 있어야 하는데 모두가 입을 닫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이 죽은 정체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독립선언문을 발표했던 많은 사람들 중 나중에 친일파로 변절한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독립운동가로 부르지 않고 친일파로 부릅니다.
그렇다면 김영삼이 민주화 운동을 했으나 결국 군사독재 후예들의 정당에 투항을 했다면 변절로 봐야하고 민주화의 공이 있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실명제와 하나회 척결의 공이 있다하나 국가를 누란의 위기에 빠뜨리고 수십만명의 가정을 도탄에 빠트리고 수만개의 기업을 도산하게 만든 책임하에 그 공은 구우일모에 지나지 않습니다.
허기는 어떤 네티즌은 종량제를 업적으로 내세우기도 하더군요

저는 위의 사안에 대한 제 견해에 대하여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주장도 있을 수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인문학자들이 침묵을 지키고 아무도 나서지 않고 논쟁이 없이 곡필아세하는 사이비 언론인들의 붓끝 장난으로 역사가 기록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지성인이 소신대로 말 할 수 없는 용기가 없슴에도 문제가 있지만 학연 지연 기타 서로 얽인 여러가지 전근대적인 인연이 작용하여 침묵을 강요한다는데 있으며 이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우리사회 모든 분야에서 합리성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여야의 대치 기업과 노동자의 문제, 세대간의 문제 여러부문에서 문제해결이 합리성에 의하여 해결이 되고 있지 않고 전근대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거나 정치논리나 상황에 의하여 흐름이 바뀝니다.

오늘의 사회는 나노단위의 정밀함을 필요로하는 최첨단 기계공학 소재, 화학 바이오및 초당 수백킬로를 전송하며 언제 어디에서나 심지어 전기조차도 무선으로 전달하는 최첨단 사회입니다.
이러한 초정밀성을 요구하는 산업을 돌아가게 하려면 합리성이 고도로 작용을 해야 합니다.
합리성이 없으면 기술 흉내는 낼 수있고 카피는 할 수 있지만 오리지널리티나 혁신은 할 수 없습니다.

우리사회가 소득 3만불 언저리에서 정체되고 건국이래 가장 저성장을 헤메이면서도 앞으로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전망은 중국 때문도 일본때문도 아닌 우리 자신의 합리성과 냉철한 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사회 정치 경제 관료 교육 기업등이 합리성과 이성으로 작동한다고 믿으십니까?
아직도 라인을 잘 타야하고 실력대로 대우받고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나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이런 현상은 위로 올라갈 수록 더합니다.
신입이나 대리정도에서 과장까지도 모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장이상 올라간다면 서기관이상 관료라면 더 이상 자신의 실력으로 판가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정치를 보더라도 여당과 야당이 합리성으로 따지자면 지금 그자리에 뱃지를 달고 있는 것이 정당한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가요?

내가 항상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파업을 많이 할 때 회사에서는 손실액이 몇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노조에서 요구하는 임금인상은 몇천억원대입니다.
나는 왜 몇천억을 아끼려고 수조원의 손실을 감수할까라는 의문이 항상들었습니다.
물론 회사가 뻥튀거나 생산 손실액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좌우간 그걸 감안해도 회사가 노조와 협상을 결렬하는 결과가 더 손해라는 것입니다.
회사 주장대로라면
그러면 회사가 멍청하든지 거짓말 하든지 둘중 하나이겠지요

이제 정치도 죽은 비운의 대통령 친구라는 이름 하나로 입문한지 두해만에 대선후보가 되고 당대표가 되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은 없어야하고 운동권이 60명 변호사가 25명이  다되는 이런 이상한 집단의 야당은 지양해야 합니다.

기업도 노동자도 서로를 불신하는 가운데 불합리한 관행이나 규정을 고집하면 같이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지금의 시대정신을 합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의 합리성 노동의 합리성 정부의 합리성 정치의 합리성
모든 갈등과 문제해결의 방식이 합리적인가라는 잣대로 재단이 되어야하고 합리성아래 모두가 동의하고 승복해야 할 것입니다.
누가 더 합리적인 주장을 하는가?
이것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되어야만 한국의 미래가 있고 앞으로 나갈 것입니다.
이제 상대방은 나쁜넘이다라는 악마화 타자화 시대는 갔습니다.
이제 기준은 네가 그르고 나는 옳다가 아니라 너는 비합리적이고 나는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람이 이기는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