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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고 단아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연주자가 들려주는 음악, 그의 자세,
착용한 검은색과 은빛의 상하 의상, 그리고 배음을 엮어내는 왼 손의 율동 등이
서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 감상자의 눈과 귀를 한 순간도 놓아주지 않는다.
하프라는 악기는 기원 전 그리스나 슈메르 문명의 벽화에나 등장하는 역사 속
유물 정도로 인식했는데 페테르부르그 마린스키 극장 소속의 젊은 하피스트 올
가 세베르비치(Olga Shevelevich.1969~)는 내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가
들려준 글링카의 <모차르트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통해 이 고색창연한 악기가
현대에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다른 어떤 악기와도 비견할 수 없는, 조금은 신비
감마저 느끼게 해주는 품질 높은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걸 실감했다. 연주도 좋
지만 이 여성 하피스트는 무대연출 능력이 탁월하다. 그는 벽화에서 방금 튀어
나와 음악을 들려주는 여신이 아닐까. 단아한 연주자 모습을 보면서 엉뚱한 상
상도 했다.
 
 글링카의 이 곡은 본시 그의 많은 피아노 소품 가운데 하나인데 하프 곡이 워
낙 드물다 보니 피아노 곡이 자주 전용된다. 이 곡을 피아노로 듣는 것도 좋지
만 하프로 듣는 편이 훨씬 감칠맛이 있다. 이 악기 특유의 잔잔한 공명, 사람
손이 직접 닿아 생기는 마찰음의 온기로 음악이 가슴 속에 저절로 스며드는 것
만 같다. 올가의 탄탄한 기량, 무희의 절제된 동작을 연상시키는 연주 동작 등
으로 아름다운 곡의 매력이 배가된다.
 
 미하일 글링카는 두 번째 오페라인 <루스란과 루드밀라>로 많이 알려져 있지
만 그에게 쇼팽과도 견줄만한 다양한 피아노 곡들, 특히 소품들이 있다는 것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그 피아노 곡들을 새로 다시 찾아 듣고 나는 두
번 크게 놀랐다. 먼저 그 곡들이 하나같이 너무나 아름답고 세련미 가득한 곡
들이란 점이다. 다음은 년대가 비슷한 쇼팽과 작품 형식이나 내용, 화법까지
믿어지지 않을만큼 서로 유사하다는 점이다. 글링카의 <Mazurka>는 이름만 가
리면 쇼팽으로 오해할만큼 선율의 가락과 색채가 유사하다. <Valse>도 
<Nocturne>도 그렇다. <Fugue>는 바흐 곡과 유사하다는 점이 색다른 점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색채와 가락이 조금씩 다르고 비교 대상 보다 훨씬
밝고 활력에 넘치는 곡들이다. 유사하다는 점 만으로 폄하할 수 없을만큼 글
링카의 모든 곡들이 아름답고 깊은 서정을 담은 매력적인 음악이다. 쇼팽과의
유사성은 그가 오랜 서구 체재기간 중 녹턴의 창안자인 존 필드에게 작곡법을
배운 것으로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발라키레프가 피아노곡으로 만들어 유명해진 글링카의 노래 <종달새>에서 보
듯 글링카는 러시아 민족정서를 누구보다 잘 그려내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는
데 그의 피아노 소품들은 그런 지역정서와는 관련이 없다. 그가 서구 체재기
간에 주로 이 작품들이 작곡된 이유도 있겠지만 글링카는 지역정서에 머물지
않고 음악 보편의 감각을 지닌, 시야가 넓은 큰 작곡가임을 이 피아노곡들은
보여준다. 
 
 변주곡에는 명편이 많다. 그 가운데 베토벤의 <Eroica Variation>, 모차르트
의 <Duport Variation>이 먼저 떠오른다. 사실 이 두 작품이 변주곡을 독자영
역으로 각인시키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Eroica>는 마리아 유디나 연주가 특
별하며 거기 버금갈만한 연주로 리히터의 거장의 이름값을 하는 웅휘한 연주가
있을 정도. <Duport>는 역시 마리아 유디나 연주를 뛰어넘는 것을 찾기 어렵다.
여기에 올가가 하프로 들려주는 글링카의 <모차르트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나
란히 세워놓고 싶다. 올가 세베르비치의 하프 연주로 서정성 짙은 이 아름다운
곡을 듣는 것은 사치스런 행운일 것이다.
 
 하프 연주자로 웨일스 출신 캐트린 핀치(Catrin Pinch.1980~)의 활발한 연주
활동이 눈에 띤다. 다소 요란한 그의 무대 제스쳐가 맘에 들지 않지만 바흐의
<이탈리안 협주곡>, 파가니니의 <베니스 카니발>, 가브리엘 포레의 <하프를 위
한 즉흥곡>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연주기량은 하프의 기대주로 손색이 없다. 이
악기가 피아노와 다른 현악기의 영역을 넘나드는 것도 이채롭다. 핀치는 포레
의 <즉흥곡> 연주로 다른 악기가 미치지 못하는 하프의 섬세한 세밀화적 묘사
력을 뽐낸다. 마치 짙은 안개 속 환영을 그려보는 것 같은 포레의 <즉흥곡>을
듣고 드뷔시가 대표작 <바다>와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에서 왜 시종 하프로
하여금 배경 악기 역할을 하게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드뷔시는 하프를 위한
곡으로 협주곡 <신성한 무곡과 세속의 무곡>, 실내악곡 <풀루트,비올라와 하프
를 위한 소나타> 등을 별도로 작곡한 바도 있다.
 
 올가 세베르비치가 보여주는 또 한편의 변주곡 명연이 있다. 1995년, 그가 갓
음악원을 나온 26세 신예이던 시기, 미국의 하프 경연무대에서 그는 독일 작곡
가 슈포르(L.Sphor,1784~1859)의 <변주곡>을 연주하는데 아직 첫 걸음을 떼는
신예지만 무대연출은 여전히 완벽하다. 로맨틱한 곡을 통해 올가는 그의 탄탄
한 기량과 함께 하프가 지닌 여러 가지 매력을 골고루 보여주고 있다. 아름답
고 단아하다. 그의 연주를 듣고 보는 동안 다른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