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머리와 돈봉투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

YS의 이 말은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건강을 중요시하는 말처럼 들린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아침 조깅으로 단련된 건강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건강은 빌릴 수 없지만, 머리는 빌릴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의 순서를 앞뒤로 바꿔 놓으면, YS의 사람 관리능력과 용병술에 대한 자신감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YS의 사람 챙기기, 그리고 인맥 관리 능력은 정말 출중하다고들 한다. 내 스스로도 YS를 ‘뛰어난 보스’로 평가하는 데는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이 그에게 그러한 능력을 가지게 했을까? 그가 가진 비결은 무엇일까? 타고난 인품, 오랜 경험과 경륜, 그를 떠나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열렬한 지지자들...... 아마도 그런 것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 말고도 별로 마땅치 않은 무기도 사용했던 것 같다.

청문회가 끝난 다음 수유리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통일민주당의 국회의원 연수가 열린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현대 중공업 사건과 관련된 파문과 잡음 때문에 입장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여러가지로 흔들리고 있던 때였다.

나로서는 2박3일간이나 여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함께 지낸다는 게 두렵고도 귀찮은 일이었다. 결국 나는 개소식에조차 참석하지 않고는 자리를 빠져나와 설악산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의 연수 이탈은 곧바로 문제를 야기했고, YS는 즉시 사람을 보내어 나를 데리고 오도록 지시했다. 당시 신문 방송에서는, 내가 언젠가는 진보 정당을 하고 싶다고 한 말을 앞질러서 당장 민중당에 갈 것처럼 보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분위기가 그랬던 만큼, 나의 행동은 나 한사람의 잠적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YS의 지도력에도 적지 않은 흠집을 내는 일이었다.

최형우 의원과 이인제 의원이 직접 강원도의 호텔과 콘도를 하나하나 전화로 체크한 끝에 나를 찾아내었다. 나는 더이상 어쩔 수도 없어서 두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순순히 서울로 따라 올라와 YS를 만나게 되었다. YS의 말은 간단했다.

“지금 여러 가지로 상황이 복잡한데, 당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니 심란하더라도 연수를 계속 받게.”

그리고는 “요즘 어렵지? 마음도 심란할 텐데 연수 마치거든 휴가나 다녀오게.” 하면서 나를 향해 불쑥 무언가를 내밀었다. 바로 돈 봉투였다.

내가 YS로부터 받은 돈 봉투는 수도 없이 많다. 이삼 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받는 것 이외에도 이런저런 일이 있을 때면 가끔씩 돈을 얻어 썼다. 그런데 YS는 돈 봉투를 주면서 이런저런 주문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도 상당한 힘을 발휘하였을 것이다. 3당합당 당시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펄찍 뛰었다. 한참 후까지 오락가락한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일단 YS를 만났다는 소문이 들리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연락이 끊어졌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변하여 YS 스스로 정치자금에 철퇴를 내리겠다고 공헌하고 나섰다. 하기는 이제 그 돈 봉투가 필요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대신 그보다도 막강한 권력이 있으니......



어떻든 YS가 권력을 잡은 지 2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그의 뛰어난 용병 능력을 자랑하는 듯한 ‘머리 빌리기’는 별로 성공적인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이 말이 마치 무슨 명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국민들 사이에 퍼져 나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놀랍다. 그만큼 우리의 정치가 비정상적인 상태임을 뜻하고 있는 것일ᄁᆞ?

사실 지난 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YS 진영에서 이 말을 지어낸 것은 단지 YS의 머리 부족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뿐만이 아니라, DJ의 다리가 불편한 것을 은근히 공격하는 천박한 전략도 숨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참으로 치사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머리는 빌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머리는 빌릴 수 있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적어도 ‘머리’라고 하면 세계관과 철학 그리고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 중에서도 지식은 언제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철학은 그렇지 않다. 철학은 남에게 빌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특히 남보다 앞서 생각하고 남을 다스려야할 입장에 있는 지도자라면, 상당히 ‘체계화된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정도의 철학을 갖추려면 이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고학 등 다방면에 걸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철학이 없는 정치인은 두목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도 지도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그리고 정치, 경제에 관해서 지식을 빌리는 경우에도 지도자는 무엇을 빌려야 하는 것인지, 또 누구에게 빌려야 할지, 그런 것을 판단할 줄 아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농부가 밭을 갈러 가는데 호미를 빌려야 하는지, 괭이를 빌려야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3대 요건으로 ‘권력 장악 능력’, ‘살림살이 솜씨’, 그리고 ‘역사의식’을 꼽는다. 그러면 이 기준으로 볼 때, YS는 어느 정도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먼저 YS는 권력 장악 능력이라는 측면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과시했다. 그것도 3당 합당이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신무기를 개발하여 집권에 성공했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대통령 처럼 총을 들고 나온 것도 아니고, 또 자기 스스로 주장해 왔듯이 국민의 지지로 정권을 잡은 것도 아니었다.물론 선거를 거치긴 했지만, 그건 3당 합당에 비하면 오히려 결정적인 과정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히 독창적이라 할 수 있는, 권력 장악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는 많은 무리도 있었고 또 적지 않은 억지도 있었다. 한마디로 숱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YS는 숨막히는 권력 ᄊᆞ움에서 승리했고 대권 장악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지도자로 부르는데 아직 동의를 할 수 없다. 그로 말미암아 청산해야 할 이 땅의 기회주의가 다시 때를 만났기 때문이다. 역자슬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즉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지도자로 부르는데 아직 동의를 할 수 없다. 그로 말미암아 청산해야 할 이 땅의 기회주의가 다시 때를 만났기 때문이다. 역사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즉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YS가 3당 합당으로 권력을 잡기 전만 해도 이 땅에서는 기회주의자들이 차지할 수 있는 장물의 수준은 한정되어 있었다. 고작해야 권력에 빌붙어 먹고사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YS의 대권 장악과 함께 기회주의자들의 입지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기회주의자들의 성공에는 최고 권력의 차원으로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YS의 대권 장악은 기회주의자들에게는 하나의 신선한 모델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스러기나 먹는 기회주의가 아니라 통째로 먹는 기회주의, 즉 기회주의의 극치가 실현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옳은 것이라고 가르쳐야 할 것인가. 정의니 가치니 하는 말들은 이제 국민의 냉소 거리에 지나지 않고, 소신과 지조를 얘기하던 사람들에게는 무력한 허탈감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제대로 되어 가는 역사라면, 어떻게 JP가 집권당의 대표로 계속 TV에 나올 수 있고, 12·12 쿠테타의 주범들이 계속 국회의사당에 버티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차세대 전투기 사건, 상무대 비리 사건, YS의 아들 현철씨가 관련된 한약업자 로비 사건 등 이 모든 권력형 비리가 밝혀지지 않고 있겠는가?

아무튼 지금의 역사와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다.

그나마 YS의 살림살이 솜씨라도 좋아야 할 텐데...



노무현, 「여보 나 좀 도와줘」, 새터, 1994


http://file2.knowhow.or.kr/?id=404126 

1994 노무현,여보나좀도와줘 무료배포


김영삼, 노무현 서거당시 한마디...


노무현의 장례식을 국민장으로 치른것은 이명박이 실수한것이다. 국민장이아니라 가족장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발탁해서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나에게 빚이 있는데 이렇게 되어버려서 실망했다. 나도 전직대통령으로서 참석했지만 헌화할 꽃을 던져버리고 왔다" 라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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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