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당시 열린우리당,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며, 2년 고용한 비정규직은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2년이 된 비정규직은 그저 해고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김영삼 정권때는 불법파견이라며 강하게 단속했던 파견이나 용역, 비정규직이 IMF 이후로는 합법이 된 것도 모자라,

이 비정규직들을 2년 써먹고 해고하라는 법을 대놓고 만든 것이었죠.

노동계의 반발이 극심했으나, 열우당 정권은 밀어부쳤고, 2006년 11월 30일 국회에서 통과됩니다.

Oh, what a business friendly!

 

편, 프랑스 자본인 유통회사 까르푸가 한국에서 철수하고, 이를 이랜드가 인수하게 됩니다.

이랜드는 기독교 계열 회사로 유명하죠.

이랜드 박성수 회장은 "성경에는 노조도 없고 파업도 없다"는 '개독기독교식 경영'으로 꽤 유명한 분입니다.

까르푸 시절에는 직원 휴게실이 있어서 여기서 잠시 누워서 쉬기도 하고 눈도 붙일 수 있었습니다만,

이랜드가 인수한 후 휴게실은 "기도실"로 바뀌었고, 기도실에서 눕거나 졸았다고 호통을 듣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관련기사 링크).

까르푸 시절에는 월급이 적을 지언정 적어도 사람을 자르거나 하진 않았으나, 이랜드는 비정규직 보호법을 들먹이며 2년 동안 고용한 비정규직은 모조리 해고할 방침을 세웁니다.

이런 저런 일들을 참다못한 이랜드 일반노조는 투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국 홈에버 노조는 상암동 홈에버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게 됩니다.

회장이라는 양반부터가, "성경에는 노조도 없고 파업도 없다"며 대한민국 헌법과 현행법을 무시하는데도(대한민국은 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비지니스-프렌들리한 우리의 노무현 정권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지요.

당연히 노사협상은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노조는 최후의 수단인 점거농성을 벌이게 됩니다.

참고로 이랜드 그룹은 직원들에게 개신교로 개종을 강요하고(대한민국 헌법에 보면 한국은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나오죠 아마?) 십일조를 강조(? 강요는 아니었다는대...)하며, 업장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내용의 기도문을 거는 둥(예수님 왈, "부자가 천국을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다") 아주 아주 독실독실합니다.

그리고 이랜드 그룹은 공격적인 M&A로 여러 브랜드를 인수해서 성공적으로 부활 시키는 걸로도 유명한데(뉴발란스 같은 거 말이죠), 재미있는 것이 이렇게 인수를 거듭할 수 있었던 자금이 다 빚이라는거죠.

이랜드가 진 빚은 2011년 기준 4조 6804억원(부채비율 408%), 그 이자비용은 당해만 2108억원이었습니다.

뭐, 그렇다고요.

 

 

7월 20일 새벽,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건물에 있는 홈에버 점거농성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력이 투입된다는 정보가 들어옵니다. 부랴부랴 새벽에 뛰어갔습니다.

 

2년 고용 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보호법" 덕분에, 계약직이 근무 2년 째 되는 해에는 계약연장이 안되거나, 1년 364일 근무 후 해고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아유 독실독실해라...

 

 

경찰병력이 속속 새벽을 틈타 집결하기 시작하고, 취재를 위해 기자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경찰 간부로 추정되는 양반은 아예 벤치 위에서 대자로 뻗어 자는군요.

 

농성장(홈에버 월드컵경기장점)은 경찰병력으로 이미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조원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이렇게 응원의 메시지를.

 

 

노무현 때도 용역과 경찰은 아주 죽이 잘 맞았습니다. 간혹 노무현 정권 때는 무슨 용역도 없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시는 분들도 있더군요.

 

다함께를 비롯한 운동권 대학생들도 연대를 위해 농성을 같이 했습니다.

 

날이 밝자 구호를 외치는 대학생들. 이들도 지금쯤은 다들 사회인이 되었을테죠. 이 때의 마음을 잘 간직하고들 있어야 할텐데.

 

동이 터 오면서 긴장감이 더해집니다.

 

한국 경찰들의 차벽은 언제봐도 참 놀랍단 말이죠. 어쩜 저렇게 잘 대놓는지.

 

차벽으로 차단된 홈에버 농성장과, 속속 모여드는 경찰 병력.

 

 

 

 

 

 

 

 

 

 

경찰의 돌입이 코 앞이라는 소식이 농성장에도 전해졌습니다. 한 노조원이 봉쇄된 홈에버 마트 안에서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습니다.

 

 

경찰의 차벽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노조원들.

 

당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몇몇이 홈에버 마트 안으로 진입해서 투쟁에 연대했습니다. 심상정, 권영길, 노회찬 등이 밝게 손을 흔드는 모습.

 

 

노무현 참 때가 좋았죠. 이 때는 통진당도 댓글 공작도 없었고 말이죠?

 

 

 

 

찰이 애초 새벽에 들이닥칠 것이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왜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9시 경부터 진입이 시작됐습니다.

폴리스 라인을 긋고, 무장한 병력이 바리케이트를 뚫어 길을 내고, 그 뒤를 이어 여경들이 대부분 아줌마들인 노조원들의 팔 다리를 들고 강제로 끌어냈습니다.

이랜드 측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교섭에 응하지 않았고, 경찰이 노조원들을 모두 끌고 나가자 곧바로 영업을 재개하는 민첩함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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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라인이 그어집니다. 곧 경찰들이 진입을 시도한다는 소리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경찰병력이 참으로 많이도 준비되었습니다.

 

 

경찰에 의해 갇혀버리고 만 홈에버 마트안의 노조원들은 대부분 중년여성들이었습니다. 아줌마들이 힘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이런 대병력을 모아왔을까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느라고 입구를 꼭꼭 막았습니다.

 

사지가 들려 끌려나온 노조원들은 닭장차에 태워져 경찰서로 실려갔습니다. 끌려가는 노조원들을 안타깝게 불러보는 사람들.

 

취재를 위해 몰린 기자들과 경찰들의 실갱이도 있었습니다.

 

 

남자 경찰들이 아줌마들을 끌고 나왔다는 비난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여경들이 내부에 투입되어 노조원들을 끌어냈습니다.

 

 

 

 

 

 

 

트릭스 1편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The Matrix is a system, Neo. That system is our enemy. But when you're inside, you look around, what do you see? Businessmen, teachers, lawyers, carpenters. The very minds of the people we are trying to save. But until we do, these people are still a part of that system and that makes them our enemy. You have to understand, most of these people are not ready to be unplugged.

 

매트릭스는 체제다, 네오. 그 체제는 우리의 적이지. 하지만 우리가 매트릭스에 들어서면, 둘러보게. 뭐가 보이나? 장사꾼, 교사, 변호사, 목수... 우리가 구하려는 바로 그 사람들이야. 하지만 우리가 구하기 전 까지는, 이들은 그 체제의 일부이며 우리의 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준비가 안됐다는 걸 알아두게.

 

 

당신은 준비가 됐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체제의 일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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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음악으로 넣은 음악 때문에 강제로 광고가 뜨는군요... ㅜㅠ

 

 

 

경찰의 강제 해산이 끝나고, 농성에 쓰이던 집기들이 밖으로 실려나오는 모습입니다.

 

이랜드 사측은 민사소송을 남발하여 노조원들에게 배상금을 물어내라며 압박했기 때문에, 노조원들은 홈에버 마트 안에 있는 음식들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직접 밥을 지어 먹었습니다.

 

노조원들과 같이 농성을 하던 당시 민노당 의원들이 즉석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땀에 범벅이 된 모습으로 열변을 토하는 노회찬.

 

"더이상 죽이지 마라!" MB 때나 요즘 이야기가 아닙니다. 노무현 시절입니다.

 

학술인들도 긴급 기자회견을 가지며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노무현 때는 산삼도 많이 났다는대 산삼들이나 캐시지 여기는 왜 오셨나 모르겠어요.

 

경찰의 강제해산이 끝나자마자, 용역들이 투입되어 정리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참 이런 건 일처리 잘 한단 말이죠.

 

어르신 한 분이 경찰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며 항의하고 계십니다.

 

화가 나신 어르신은 한동안 저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저 허탈 할 뿐입니다.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가, 당시에는 한겨레 신문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만, 현장에 직접 취재를 왔습니다.

 

홍간지.

 

노무현 시절의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며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후에 진보신당의 당대표로 나서게 되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찰의 성공적인 강제해산이 이뤄지고 난 이후, 상암 월드컵 경기장은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경찰과 노조원들, 대학생들이 모두 물러간 후,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FC 서울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친선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아름다운 자본주의, 눈물나도록 놀랍지 않나요?

 

 

 

스포츠는 그야말로 인류를 대동단결 시켜주죠.

 

뭐 비정규직 아줌마들이 중요하겠습니까. 맨유가 한국에 온다는대.

렇습니다. 이 모든 일은, 노무현 정권 시절 일입니다.

사람사는 세상.

저는 그 세상 제발 안 왔으면 하네요.

노동자 비정규직은 사람으로 취급 안하는 것 같아서 말이죠.


http://www.frosteye.net/1243




대형마트 비정규직 다룬 영화 <카트>

영화 ‘카트’에서 순례(김영애 분)는 대형마트에서 20년간 빗자루를 잡아온 청소원으로 회사의 일방적 계약해지에 분노하지만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직원들을 다독인다. 영화 속에서 갑작스레 해고통지를 받은 대형마트 비정규직들은 하나로 뭉쳐 파업에 들어간다. 배우 김영애는 지난달 30일 ‘카트’ 제작보고회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의무감을 갖고 촬영했다”며 “영화를 통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여러 언론이 이날 주연 배우 염정아와 김영애의 말을 인용해 온라인에 보도했지만 다음날 어느 중앙일간지도 지면에 싣지 않았다.

영화 속 ‘순례’를 가장 많이 닮은 실존 인물은 2007~2008년 510일간 파업으로 비정규직 투쟁의 큰 획을 그은 ‘이랜드.홈에버 투쟁’ 때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이었던 이경옥(56)이다. 그녀는 지금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으로 여전히 비정규직과 함께 싸운다. 그녀는 지독한 가난을 엎고 자수성가한 아버지와 함께 꾸었던 외교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결코 부끄럽지 않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다룬 영화 <카트>

영화 속 ‘순례’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

이경옥 처장은 베이비 붐 세대의 전형인 ‘58년 개띠’다. 그녀는 큰딸이 전화로 어느 대학에 대입 원서를 넣어야 할지 물어볼 때도 집회장을 침탈하는 경찰과 싸우면서 집회를 지켜야 했다. 시어머니 빈소를 지키던 큰며느리였던 그녀는 영안실을 몰래 빠져나와 노조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시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곧바로 2008년 11월 늦은 밤 서울역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에 참석했던 그녀. 시아버지도 동일방직에서 보일러공으로 일하며 노조를 알았던지 이랜드 투쟁 끝에 연행됐다가 출소한 며느리를 보고 야단도 치지 않았다.

결혼해서 조용히 살림만 하던 그녀가 거리의 투사가 되는 과정은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다.

그녀는 대학 체육교육학과를 나와 기간제 교사로 잠시 일하다 맘씨 고운 29살 노총각과 맞선 보고 25살에 곧바로 결혼했다. 남편은 거제도에 있는 큰 조선소 사무직이었다. 결혼 3년만에 남편은 월급쟁이가 싫다며 사표를 던졌다. 3살 큰딸과 뱃속에 작은 아이가 들었을 때다.

조선소를 나온 남편은 8년쯤 친적이 운영하는 재봉틀 회사에 공장장으로 일하다 그 마저 접고, 1995년 겨울 서울에서 갈비집을 열었다. 한 2년 반짝하던 장사는 1997년 IMF와 함께 거덜났다. 바로 그 때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져 석 달 중환자실 신세를 지다가 숨졌다. 큰딸이 고등학교 들어가고 둘째는 중학교 들어가던 1999년 초 그녀는 빈손으로 식당을 접었다.

착한 딸, 현모양처에서 거리의 투사로

그녀는 2000년 1월 오픈한 집 근처 까르푸 중계점에 정규직으로 들어갔다. 조리사 자격증과 식당 경험 덕분에 푸드코트의 샐러드와 샌드위치 담당 조장이 됐다. 정규직이라지만 주 50시간 중노동에 연봉은 고작 1,200만원이었다. 과장은 조리기구를 던지며 행패 부리기 일쑤였다.

노조가 있었지만 전국의 여러 매장에 노조원이 흩어져 사실상 힘을 못 쓰는 휴면노조였다. 그녀는 노조 지부간부를 제안받고 난생 처음 민주노총에 찾아갔다. 이렇게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었다.

2002년 12월 12일 까르푸 본사 앞 집회에서 경찰과 싸우는데 큰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대입 원서 어느 대학에 넣을까?”하고 묻는 딸에게 그녀는 “알아서 해”하고 끊었다. 그녀의 까르푸 노조는 300일 파업 끝에 2003년 4월 회사의 항복을 받아내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300일 파업 뒤 복귀 한 달만에 다시 집단해고에 맞서 서울 중동점 노조원 60명이 다시 파업에 들어갔다.

반전임 한 명만 달랑 있던 까르푸노조의 파업은 늘 기회였다. 그녀는 전국의 매장을 돌면서 노조원을 모집했다. 순천에선 찜질방에서 자고, 부산에선 일반노조 농성천막에서 잤다. 서울 상계동 집에서 부천에 있는 노조 사무실까지 다니면서 그녀는 수많은 날을 내부순환도로의 갓길에서 비상등을 켜고 쪽잠을 자면서 노조원을 모았다. 그녀는 힘겨운 미국의 노조 설립 과정을 담은 영화 ‘노마 레이(Norma Rae, 1979년)’의 샐리 필드처럼 고군분투했다. 이렇게 2003년 100명이던 까르푸 노조원은 2005년 1,000명으로 늘었다.

  70년대 미국의 노조 설립 과정을 다룬 영화 <노마 레이>


순환도로 갓길에서 위험한 쪽잠

결국 노조에 두 손 든 프랑스 자본 까르푸는 이랜드에 매장을 넘기고 철수한다. 2001년 파업 경험을 가진 이랜드노조와 이랜드 산하 뉴코아노조까지 합쳐 세 노조는 2007년 1월 이랜드일반노조로 통합했다. 그녀는 통합노조 부위원장으로 그해 7월 첫 시행된 노무현 정권 최대 악법인 비정규직법(기간제법) 때문에 무더기 해고에 직면한 비정규직 계산원들의 투쟁에 뛰어든다. 이름하여 ‘이랜드·홈에버 투쟁’이다.

오갈 곳 없는 비정규직 캐셔들이 자신이 일하던 대형마트 계산대를 껴안고 버텼다. 그러나 싸움을 길어져 1년을 훌쩍 넘겼다. 모두들 가망 없으니 포기하라고 했고, 노조원도 다시 100명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의 두 아이들은 엄마를 지지했다. 2008년 늦가을 ‘500일 투쟁문화제’ 직후 시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녀는 큰며느리로 시아버지 장례식을 마친 2008년 11월의 어느 늦은 밤에도 서울역 노동자대회 전야제에 참석했다. 이렇게 이랜트 투쟁은 510일 파업 끝에 마무리됐다. 회사는 다시 홈플러스에 팔려 지금은 홈플러스테스코 노조란 이름을 바꿔 달았다.

이경옥 처장은 “죽기 전에 노조를 알아 천만다행”이라며 “나의 자존감을 지켜 준 노조를 지키기 위한 나의 투쟁은 앞으로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영화 ‘카트’는 오는 7일과 8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8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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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