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 업체들에 대해 생소한 분들 많겠지만, 그래도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라는 이름은 모르시는 분이 별로 없을 겁니다.
이 두 회사는 DRAM 업계에서 세계 1, 2위를 점유하는데 대충 대충 근소한 차이로 1, 2위가 아니고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1, 2위입니다. 시장 점유율이 무려 43%, 23%로 3위인 마이크론(12.1%)과 엘피다(12.0%)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확고한 1, 2위입니다.

최근 DRAM 가격은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낮은 상태인데, 즉 더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대략 하이닉스가 원가 정도를 뽑을 수 있을 정도의 비정상적 상황인데, 2위마저 이윤을 창출하지 못 하는 상황은 분명히 이상한 겁니다. 그렇다고 DRAM 수요가 대폭 감소한 것도 아니니까요.

결론은, 물론 제가 S사에 임원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있긴 합니다만, 1, 2위 기업이 3위 이하 기업 중 최소 하나를 죽이기 위해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상 치킨게임으로 불릴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잘 아시다시피 치킨게임은 서로 마주 보고 자동차를 달려 먼저 핸들을 꺾는 놈이 지는, 너 아니면 내가 죽는다는 식의 게임이어야 하는데 1, 2위는 아직 견딜만 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 상황이 지속되면 Technology에서 1, 2위를 따라가지 못 한 3위 이하의 회사만 죽게 되는 거죠.
DRAM 가격의 폭락과 폭등은 대략 수요/공급이 수%, 대략 2~3%의 차이를 보이면 일어납니다. 생산을 탄력적으로 하기 어려운 산업이라서 수요가 줄었다고 공급을 갑자기 줄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기사를 좀 보시죠. 재미있는 도표들도 들어 있습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21578841
제가 아는 한 마이크론은 아직도 버틸만 합니다. 그러나 키몬다나 대만의 난야는 거의 한계 상황에 와 있습니다.
더 진보된 공정을 위한 투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또 지금 당장 투자한다고 해도 금액이 상상을 초월하는, 장비 한 대에 100억이 넘는 것도 있는데 이게 한 두 대 필요한 게 아니라서리..., 데다가 그걸 가지고 즉각 생산이 가능한 게 아니고 공정을 개발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됩니다.
즉, 1, 2위를 기술적으로 따라잡을 탄력은 이미 사라진 거죠.
키몬다나 난야 둘 중 하나만 문을 닫아도 DRAM 가격은 다시 폭등할 것입니다.
그리고 1, 2위는 향후 상당 기간 그 효과를 누리게 될 겁니다.

도표 중에 재밌는 게 있는데, 글로벌 DRAM 시장 어떻게 변해왔나 하는 테이블입니다.
DRAM을 최초로 생산한 회사가 인텔이라는 걸 아는 사람 많지 않죠. 인텔의 전시관에 가보면 최초 DRAM 샘플과 웨이퍼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런 좋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이제 DRAM의 시대는 갔다는 겁니다.
DRAM 산업은 물리적 한계치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획기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DRAM은 이제 건설에서 못, 볼트/너트 같이 필수적인 '재료'로 사용될 것이고 향후 특별한 변화 없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산업으로 갈 것으로 봅니다.
이미 NAND Flash의 생산량이 DRAM을 넘어 섰고, 메모리에서는 DRAM이 가고 NAND Flash가 주력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이미 잡았나?)

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인데 기술적 혁신은 다 끝났습니다. 칩의 면적을 줄여 가격 혁신을 이룬 DRAM과는 달리 LCD 디스플레이는 면적을 줄일 수가 없습니다. 남들이 47인치를 만들면 나도 47인치를 만들어야지, 어떤 제품을 2cm2에 만드는 경쟁자를 1cm2로 같은 용량의 DRAM을 만들어 물리치는 게 디스플레이에선 불가능하죠.

삼성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DRAM은 1등을 했지만 포화상태, 디스플레이는 차별화가 더 이상 불가능한 한계 상황.
남은 두 가지가 모바일(휴대폰, 스마트폰, 패드 류)과 비메모리 반도체인데, 비메모리 반도체는 요즘 재미 좀 보지만 많이 뒤져 있고, 모바일 쪽은 기계 잘 팔아 먹긴 하는데 애플같은 선두 주자가 뛰어 주지 않으면 뭘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거죠.

인텔이 시작한 DRAM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옮아 오고 결국은 한국이 세계를 제패했습니다만, 여전히 뭔가 씁쓸한 것이 남습니다.
원래 우리나라 산업이 그렇습니다. 저는 그 주된 이유를 다양성의 부족으로 보고요.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에서 다양성은 불가능한 거죠.
중소기업의 지원까지 과도하다고 줄이고 있는 걸 보니 앞날이 별로 밝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정권이 바뀌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