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게 무슨 개고생이냐 ㅜ.ㅜ;;;


자, 우선 농업 관련 이영훈 교수의 주장을 아래에 인용합니다.

저는 어느 정도의 열변효과는 있었겠지만, 그것이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에 개량종자가 확대 보급되었다면, 증산의 효과는 부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if'의 연속인데 관련 논문을 쓴다고 했으니까 기다려보기로 하고 이영훈 교수의 열변효과와 같이 특정 농산물에 영향을 미치는지 양잠 농산물 통계를 인용하면서 간접증명해드리죠.


스삽으로 처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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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선택과 집중으로 농업부분의 정책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 개발 정책도 그랬죠. 그 결과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호남과의 경제력 격차가 났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논문의 맨 마지막에는 3.1운동의 원인 중 하나가 일본으로 공출되어 가는 양 때문에 농업이 붕괴된 이유라고 지적합니다. 



단, 이 포스팅에서의 논점은 아니기 때문에 이영훈 교수의 주장인 '열변효과'가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인지를 통계를 통해 보죠. 아래는 조선총독부 통계에 근거한 육지면 연간 재배면적 및 수확량입니다. 수확량만 따지면 크게 증가합니다. 그런데 경작인수(인)을 감안하여 일인당 생산량을 산출해보면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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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총수확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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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로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그런데 일인당 생산량은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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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통계에서는 1906년도 기준으로 일인당 생산량이 줄어들다가 1913년에 가서야 1906년도의 일인당 생산량 수준으로 회복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요?


위의 그래프에서 두번째 일인당 생산량은 소폭으로 줄어들었다가 3년차에서 대폭 줄어듭니다. 이런 추이, 익숙하죠? 예, 바로 사람들에게 전염병 등이 돌 때의 그래프입니다.(강기 그래프에서는 거꾸로 적용) 감염자가 조금씩 생기다가 그 감염자들에 의한 2차 감염 등으로 전염병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즉, 누에고치가 풍토에 안맞아서 2년차에는 그럭저럭 버텼지만 그 후손들은 면역력이 약해져서 집단적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이 설명은 생각할 수 있는 가설 중 하나입니다.



누에의 병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제 막 시작하는 변경된 농법에 의하여 생긴 감소량일 수도 있고 --> 이 경우 이영훈 교수의 제초효과는 아니라는 것이죠.



또는 규모의 경제를 누릴 시점이 아니라서 일인당 생산량이 떨어질수도 있습니다 --> 기업에서 보여주는 한계생산비용의 곡선과 유사하죠. 역시,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물론, 볍씨가 누에보다 더 풍토에 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검증이 되야죠. 'If'를 연발하면서 자기 주장을 합당화 시키는 드러운 짓은 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짓이죠.




물론, 제가 인용한 이영학 교수의 농업붕괴 및 3.1운동의 원인이라는 주장도 신빙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1913년을 기점으로 일인당 수확량이 기준연도보다 높아졌으니까요. 물론, 1914년에는 다시 소폭으로 줄어들었지만 이런 감소세가 1919년까지 계속 이어져왔는지는 이영학 교수의 논문에는 없습니다.



다른 농업생산물에서도 1919년까지의 통계는 없고 또한 농업의 붕괴 때문에 3.1운동의 단초가 되었다라는 주장만 있고 관련 농산물의 일인당 수확량과 일본 공출량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으니 '엄밀한 의미'에서 이영학 교수의 논문도 날림이죠.


어쨌든, 이영학 교수의 논문 내용이 시사하는 것은 열변효과가 미미하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터무니 없는 주장이며 최소한 검증이 된 후 주장이 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뭐라?



에이, 관두죠. 짜증나니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