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부산에 회의가 있어서 다녀오고 어제 정신없이 바빴는데 조선의 병합 대해서 많은 논의들이 오갔네요. 그 내용을 다시 재론하는 것보다는 원래 쓰려고 계획했던 내용들을 정리해서 올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씁니다. 깁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http://theacro.com/zbxe/?mid=free&search_target=user_id&search_keyword=yw017&document_srl=5207582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2) http://theacro.com/zbxe/?mid=free&search_target=user_id&search_keyword=yw017&document_srl=5209927

이 글의 제목으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이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원래 역사관련된 첫글을 쓰면서부터 결국 이 논의를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기존 두글과의 연관성도 고려해서 제목을 유지합니다.

우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2)에서 제가 하고자 했던 주장을 다시 요약합니다.

<18~20세기 조선의 쇠락과 일제 병합, 6.25, 산업화, 민주화 등의 전과정은 중국의 변방 국가로서 유교/대륙/농경 문화권에서 이탈하여 기독교적, 해양, 상업문명으로의 대전환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시기를 억압받은 민족의 역사로, 핍박받은 민중의 혁명사로, 분단된 조국의 통일과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文明史의 관점에서 보면 지엽적일 수 있다는 거죠. 따라서 현재 역사학계의 주류인 민중사관의 안경을 쓰고 우리의 역사를 평가/서술하는 것은 우리 역사중의 일부에 대한 설명은 가능하나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명사적 관점으로 우리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핍박 받고 분단에 처해있는 질곡의 역사로 인식하기에는(물론 어두운 역사가 분명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과가 너무 큽니다. 2차 대전후 140여개의 신생 독립국들이 생겼습니다. 이 나라들 중에서 대한민국만큼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공한 나라가 있나요? 인구 5천만 이상의 대국이 성공한 사례는 대한민국을 제외하고는 없습니다. 이를 민중사관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1.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패배주의적 인식의 기원

우리들은 마음속에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성공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한켠에 원죄의식 같은 것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직후 2003년 삼일절 기념사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는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인식이 노무현 전 대통령만의 인식은 아닙니다. 교수들의 강의에도 TV 토론에도, 일반인들이 술자리에서 펼치는 정치/역사 토론에도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인식이죠.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는 인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왠지 우리의 현대사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고 부정한 것이 있고 떳떳하지 못한 점이 있다는 인식이 마음속에 내재해 있습니다.

저도 학교다닐때 해방전후사의인식을 읽었고 직장을 다니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역사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우리나라에 대한 자기 비하적인 역사인식>으로 10여년을 지낸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이런 방식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바로 민중사관이며 이는 결국 북한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서술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 4권 "해방 8년사의 총체적 인식"의 내용을 인용 합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해방정국의 혁명과 반혁명의 갈등이 한국전쟁으로 점차 귀결되는 과정을 파악하는 것이 해방 8년사 이해의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민중들의 요구와 행동의 의미를 포착하는 것이 이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 된다.>

첨부 사진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4권 총론에 있는 해방8년사에 대한 인식 체계 입니다. 북한에서의 혁명의 성공과 남한에서의 반혁명 성공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남한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의 좌절을 아쉬워하는 저자의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죠. 정해구에게 역사란 민중들의 (그것도 사회주의 혁명을 원하는)요구와 행동의 의미를 포착하는 것이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일이되는 것이죠.

이책을 대학에서 읽고 이 이론으로 무장한 세대가 현재 대한민국 제1야당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486 그룹 입니다. 정청래 의원이 문재인 대표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죠. "독일이 유대인 학살을 사과했다고 유대인들이 히틀러 묘소에 가서 참배할 수 있겠느냐?"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정청래에게는 이승만, 박정희는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와 동격입니다. 분단을 고착화시키고 민족통일을 방해하는 미제의 앞잡이라고 생각하겠죠. 제 생각일 뿐이지만 거의 사실일 겁니다. 아마 다른 486의원들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을겁니다. 공산주의가 패망하고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발전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유력 정치인들의 역사인식이 해방전후사의 인식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일반인들의 인식이 그렇다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이런 패배주의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역사 인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2. 대한민국의 역사를 문명사의 관점에 바라보게 될때 (비록 모순적이기는 하지만)보이는 사실들

가. 일본의 범죄행위에 대한 인식

흔히 사람들은 일제가 조선으로부터 토지와 식량을 수탈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를 하면 "그렇다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자는 거냐?"고 불쾌해 합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 토지의 40%를 수탈했다거나 일제가 식량의 절반을 실어 날랐다(유신시대 교과서)는 등의 남폭한 서술은 사실이 아닙니다. 일부 학자들의 잘못된 인용이나 의도적인 왜곡 등이 국민들에게 잘못된 사실을 인식시켰죠. 정신대도 위안부와는 분명히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대중에게는 '정신대=위안부'라는 인식이 박혀 있습니다.

조정래의 아리랑도 한몫을 크게 담당하죠. 아리랑의 앞부분에 나오는 장면이 토지조사사업의 실무를 맡은 모리배들이 일본인 순사와 결탁하여 농민들의 토지를 수탈하는 것입니다. 농민이 항의하자 일본인 순사가 총으로 쏴서 죽입니다. 300만부가 팔린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일본에게 느꼈을 증오가 어땠을까요?

일본의 제국주의는 인간본성에 반하는 체제입니다. 수탈을 했기 때문에 일제가 나쁜것이 아니라 그자체로 비판의 대상인 것입니다. 한용운 선생의 "조선독립의 글" 입니다.

<자유는 만물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 그러므로 자유가 없는 사람은 죽은 시체와 같고 평화를 잃은 자는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자이다. 압박을 당하는 사람의 주위는 무덤으로 변하는 것이며 쟁탈을 일삼는 자의 주위는 지옥이 되는 것이니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행복의 바탕은 자유와 평화에 있는 것이다.>(패트릭 헨리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내용과 비슷하죠.)

맞습니다. 자유가 없는 사람은 시체와 같습니다. 인간 생명의 본질은 자유입니다. 한용운 선생이 일제를 비판하고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한 것은 바로 이 자유의 논리였습니다.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일제를 비판하는데 이것이면 되지 않나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일제의 지배체제는 모순에 가득찬 것이었죠. 어차피 이체제는 오래갈 수 있는 체제가 아니었습니다. 굳이 일제가 조선을 수탈했다 아니다라는 논쟁이 없더라도 일제는 조선 민족의 자유를 제약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범죄자인 것입니다.

나. 근대국가에 어울리는 제도의 이식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제가 조선을 지배한 목적에서부터 기존의 생각과 다릅니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화한 목적은 "영구병합"입니다. 일제의 통치자료에 영구병합이라는 말이 지겹도록 나온다고 하네요. 일본사람들은 조선에 30년만 있다가 가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영구히 살려고 왔습니다. 영구히 조선에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선의 사회제도 등 시스템을 그들의 것과 동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선 그들의 법과 제도를 조선으로 이식했습니다. 근대 민법의 핵심 원리인 사적 자유의 원칙에 기초한 조선민사령이라는 법을 1912년 제정합니다. 또 신분제를 철폐합니다. 갑오경장을 통해 신분제는 공식적으로 철폐되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실제 생활에서 신분제는 거의 변함이 없었습니다. 500년간을 이어온 양반과 상놈 노비라는 구분이 어떤 선언만으로 백지화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신분제가 실질적으로 폐지됩니다. 이른바 사민평등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물론 인습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일제는 양반과 상놈의 신분차별과 무관한 중립적 권력이었습니다. 일제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신분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마을에서 도로를 닦는데 노동력이 동원되었는데 전에는 양반가의 자제는 그런 부역에서 면제되었으나 일본 관리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가의 자제들도 삽을 들고 흙을 퍼 날랐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자연히 양반과 상놈이 말을 트는 평등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조선의 백정은 보통사람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아니기에 성도 없었고 호적에도 등록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제는 호적을 만들면서 백정에게도 등록을 강제했습니다. 그통에 백정들은 성도 갖고 본관도 갖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백정의 자녀가 학교에 다니게 되자 양반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특히 경상도 예천지방에서 양반들의 데모가 심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이 데모를 하면 왕도 어쩌지 못했습니다만 외래 권력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양반의 데모는 금방 진압되고 얼마되지 않아 백정의 신분은 다 사라지고 보통사람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다. 근대적 경제성장

또한 경제개발과 성장이 가시화 됩니다. 1910년~1940년 조선의 경제는 연평균 3.7% 성장했습니다. 이 성장률은 같은 기간 주요 자본주의 국가가 정체와 위기의 시대였으므로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경제성장에 따라 1차 산업의 비중이 줄고 공업의 비중이 증가하는 산업 구조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실제 조선의 경제가 성장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재산을 모아도 양반 또는 탐관오리에 의해 수탈당할 가능성이 있었는데 그런 가능성이 사라지자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조선의 백성들은 열심히 일했습니다. 물론 일본인의 재산의 증가속도와 조선인의 재산의 증가속도에 차이는 있었지만 조선인의 평균소득도 분명히 증가했습니다. 사유재산 제도가 확립되면서 이러한 성장이 가능해졌던거죠.

여기에 일본과 조선은 현재의 표현대로 하면 FTA가 체결되었습니다. 1920년까지 사치품 몇개를 제외하고는 관세가 쳘폐됩니다. 이에 따라 일본과 조선의 무역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건너온 많은 자본은 조선의 농토를 개간하고 수많은 공장을 세웠습니다.

중국의 등소평이 일부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개혁개방을 하자 경제가 성장한 것과 동일한 그 효과가 바로 식민지 조선에서 나타나게 된거죠. 그런데 이러한 경제성장이 지속되면 어떠한 문제가 생길까요? 조선의 토지와 자원과 공업시설은 점점 투자했던 일본인의 소유가 됩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식민지적 수탈인 것이죠. 직접적으로 우리 재산을 약탈해가는 단순한 차원이아니라 투자를 하여 한반도의 자원과 공업시설을 일본인의 소유로 만든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동화정책에 따른 실질적인 수탈이 훨씬 위험하고 무섭지 않습니까?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일제의 조선 지배를 미화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만 이는 사실이 아니죠. 진정한 의미의 수탈과 차별이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보자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 입니다. 또한 제국주의적 지배가 법과 제도와 시장을 통한 것이니만큼 그것은 새로운 인간관과 사회원리 등의 새로운 문명이 이식되어 전통과 충돌하고 접합하면서 나름의 형태로 정착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보자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 입니다.

저 멀리 바다건너에서 온 자유의 사상과 사유재산의 원리 신분제의 해체 그리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조선은 중국 중심의 구질서에서 해양문명으로 급격히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의 백성들은 17~8세기 영정조 시대의 경험을 잘 활용하여 이렇게 바뀐 세상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쌓인 경험들이 해방이후 625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급격히 성장해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거죠.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는 안병직 교수 제자의 글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55038

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도저히 짐작할 수도 없었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시초는 1980년대 후반 일본 동경대학의 초청으로 2년간 일본에서 연구하고 돌아온 안병직 선생이 식민지 시대에도 조선인 노동자의 성장이 있었다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제가 처음 이글을 읽었을때는 여기에 조선의 경제가 3.7% 성장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내용은 삭제했네요.

이것이 학자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나요? 식민지 시대에도 조선인 노동자의 성장이 있었다는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문제입니까? 학자적 양심에 따라 또 사료에 따라 사실대로 기술하면 그뿐이지 그런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문제라뇨? 이런 류가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인식태도라고 보이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제대로된 토론이 가능할 수가 없죠. 만약 저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왜 틀린 주장인지를 연구하고 사료를 찾아서 입증해서 비판하면 될일 입니다. 학자가 이러이러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에서 저는 실소를 금치 못하겠습니다.

글의 마지막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영훈 교수의 책 머릿말의 내용으로 마치렵니다.

<<내가 머리에 그리고 있는 문명사에서 출발점은, 그리고 언제나 다시 돌아오게 되는 마음의 고향은 분별력 있는 이기심을 본성으로 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그 인간 개체이다.>>

덧1) 참고문헌: 대한민국 이야기, 해방전후사의 인식,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기타 논문 등 인용 및 재구성

덧2) 문명사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자는데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자는 거냐는 질문이 예상되네요. 당연히 국가의 역사를 신성시하는 국가주의적 발상은 위험하죠. 지금 일본의 자기의 잘못을 덮으려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지 않습니까? 국가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당연히 비판을 해야죠. 그러나, 그 비판이 "대한민국은 잘못태어난 나라이고 북한이 오히려 정의로워" 이런 단계로 가면 곤란하죠.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와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성찰의 수단, 미래에 그런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한 반성의 의미로서 중요한 겁니다.

덧3)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인식: 저는 한국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과서의 저자들이 민중사관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이건 아니건 통일과 사회주의 혁명을 염원하는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를 쓰게되는 거죠. 결국 그것이 북한 입장이구요. 이러한 역사교과서의 서술을 바꾸자는 논의는 이념의 논쟁이고 사관의 논쟁입니다. 단순히 박정희, 이승만을 미화하고자 이런 시도를 한다? 박근혜가 자기 아버지를 위해서 그런다? 이런 방식의 논의는 지엽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통령이 문명사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자는 부분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