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동아시아 통상관계) 전공자인 오마이뉴스의 김종성(qqqkim2000) 기자의 해석이 흥미롭네요. 제가 제기했던 의문인 '왜 일본은 굳이 조선을 강점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네요. 한마디로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우리 속담에 딱 맞는 셈인데 글쎄요? 


오마이뉴스의 김종성 기자와 같은 주장을 접한 적이 없어서 '고증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개연성은 있어보이네요.


1895년 청일전쟁 후 마관조약 체결... 전쟁배상금 3억 6천만엔


1895년에 일본과 청나라는 전쟁을 마무리하고자 마관조약(하관조약·시모노세키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을 통해 일본은 두 가지 수확물을 거두었다. 

마관조약 제2조는 청나라가 일본에 대만(타이완)을 할양할 것을 규정했다. 일본은 대만을 얻어냄으로써 조선-대마도-일본-오키나와-대만 라인을 확보하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도 이 라인에 설치한 핵우산 (핵무기 보유국의 핵전력(核戰力)에 의하여 국가의 안전보장을 도모하는 것)을 바탕으로 중국·북한을 견제하며 지역 패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얻어낸 또 다른 수확물은 2억 량의 전쟁배상금이었다. 마관조약 제4조에 따르면, 청나라는 조약 발효 시점으로부터 7년 이내에 총 8회에 걸쳐 배상금을 분납하고 기일을 지키지 못하면 5%의 연체이자를 지급해야 했다. '8회 할부, 5% 연체이자' 조건으로 2억 량의 배상금을 카드로 결제한 셈이다. 

일본이 배상금 등의 명목으로 받아낸 금액을 일본 돈으로 환산하면 3억 6천만 엔이다. 청나라의 3년 치 예산, 일본의 4년 반 치 예산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이 돈은 일본의 군비와 산업을 일으키는 밑천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이 아시아의 변방을 벗어나 세계 강국으로 뻗어 나가는 데 종잣돈이 된 셈이다. 

4년 반 동안 쓸 돈이 공짜로 생긴 데 힘입어, 일본은 조선 강탈에 필요한 준비 작업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그 후 일본이 한편으로는 조선 강탈을 위해 자금을 투입하고 한편으로는 경제개발을 위해 자금을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은 청일전쟁 덕분에 생긴 금전적 여유 때문이었다. 

'공돈'이 생기지 않았다면, 일본은 조선 강탈보다는 경제개발 쪽에 돈을 집중 투입했을 것이다. 또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신속히 조선·만주·중국본토를 공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두둑한 범행자금이 일본의 스피드와 파워를 높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청나라를 꺾고 배상금을 뜯어내는 순간부터 조선의 운명은 위태로워진 셈이다. 조선의 재물에 욕심을 품고 있는 나라가 거액의 범행자금까지 입수하게 되었으니, 조선을 상대로 한 일본의 강도 예비·음모는 그때부터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전에 관련 주장을 접한 적이 있는데 '조선의 멸망의 단초는 친일개혁파 김옥균 때문이었다'라는 내용으로 그 때는 그렇가?하고 한번 쑥 읽고 지나갔지만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 개입하게 된 동기가 김옥균이 중국에서 암살 당하면서부터이니 이 주장도 아주 틀린 주장은 아니군요.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