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한말 독립협회에서는 '영국, 미국 그리고 일본'의 조선의 이권침탈에 대하여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외국의 자본 도입의 개념으로 해석을 한거죠. 반면에 러시아의 이권침탈에는 반대를 했고 또한 러시아와 동맹을 맺었던 프랑스의 이권침탈 역시 반대를 했습니다. 그 반대의 이유는 러시아가 조선의 영토를 탐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스티아님의 '일본이 아니면 러시아 식민지'라는 '부언 설명은 맞되 부적당한 표현'은 의도적이던 의도적이지 않던 이런 역사적 사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지금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구한말 당시에 이런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되었다고 하죠.


"일본놈 믿지 말고, 미국놈 뭐뭐 하지 말고 되놈 뭐뭐 하지 말고 러시아놈 경계하라"


제 기억이 맞다면, 민중조차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독립협회라는 엘리트 집단이 미처 인지하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당시 엘리트 집단이 얼마나 한심한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겠죠. (제가 누누히 31운동에 대하여는 극딜하는 입장의 이유가 되는)



2. 그런데 '균점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에서 피지배국가의 GDP 성장률은 지배국가 GDP 성장률의 두배가 되어야 한다는 '수렴화 가설 이론'이라던가 '동일 피부색의 피지배국가와 지배국가에서의 식민지인들은 피부색이 다른 식민지들보다 더 가혹한 식민지 시대를 보냈다'라는 등의 식민지 시대를 해석하는데 필요한 키워드가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균점이론'입니다.(자세한건 묻지마셔요~ 10여년도 더된 시절에 '식민지 근대화론'을 논파해보겠다고 회사 갔다 오면 날밤까면서 이 주제로만 공부하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기억의 파편이니까요 ^^)


피노키오님과 一德齋님의 논쟁 과정에서 一德齋님께서 이런 주장을 하셨네요.

그리고 러시아가 아니었으면 영국이 먹었을 거라고도 하시는데, 세포이 항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 정책은 팽창주의에서 이권을 챙기는 실리주의로 변화합니다.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에 대한 태도에서도 그런 성향이 나타났고요.


一德齋님의 이 주장은 또 다른 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균점이론'으로 해석해보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식민지 시대는 미세하게 1850년대 전후로 열강들의 식민지 지배 방법이 바뀝니다. 1850년대 이전에는 주로 영토침략 및 정복이라는 방법으로 식민지를 통치했다면 그 이후에는 영토침략 및 정복 대신에 이권침탈이라는 방법으로 바뀌었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식민지가 된 나라들 중에 유독 조선만은 예외인 나라였습니다. 비록 식물화 되었지만 그래도 프랑스를 물리치고 미국을 물리쳤으니 정부의 기능이 온전히 살아있었던 유일한 나라라고 봐도 무방할겁니다. 을사오적이 없었다면 식민지 시대는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틀리지만은 않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태국의 경우은 유럽 빈회의의 결과 독립을 한 스위스와 같이 완충국가(buffered country) 성격이 강했죠. 인도차이나를 두고 영국과 프랑스가 격렬하게 싸우다가 휴전의 결과로 태어난 나라이니까요.


어쨌든, 조선은 영토정복 대신 이권침탈이라는 당시에 바뀐 식민지 통치 트렌드에서 유일하다시피한 예외 국가입니다. 물론, 필리핀도 조선과 같은 운명에 처합니다만 필리핀은 오랜 기간 동안 스페인의 실질적인 식민지였다는 점이 또 다르죠.



영토정복 대신 이권침탈이라는 바뀐 식민지 트렌드를 바로 균점이론이라고 하는데 이 균점이론은 미국에 의하여 제창이 됩니다. 식민지 경쟁에서 한발 뒤진 미국이 내논 제안은 '한 나라를 개방하여 맺은 조약은 그 후에 맺은 나라도 동등의 지위를 자동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넘어 뒤에 조약을 맺은 나라가 더 유리한 조약을 맺게되면 먼저 조약을 맺은 나라의 조약에도 소급적용된다'는 한미FTA에서 ISD의 랫치 조항보다 더 악랄한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열강들은 '평화롭게' 식민지 국가들을 뜯어먹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을 피노키오님의 주장인 '일본이 없었어도 영국이 조선을 식민지로 점령했을 것이다'에 대입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요?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맞다고 보여집니다. 뭐, 제 입장을 또 바꾸는 것이겠습니다만.


이 부분의 역사적 카테고리는 만주를 강제로 점령한 러시아로 발생한 만화단 사건, 러일전쟁을 미국과 영국이 부추켰다는 역사적 사실, 압록강 목재 채굴권을 독점하다시피한 러시아의 부동항 확보 노력 등을 조합해보면 그림이 그려집니다.


즉, 미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쟁탈전에 뒤늦게 뛰어든 러시아가 조선의 북쪽에서 부동항을 확보하고 남진을 하는 경우, 다른 나라들과의 조약을 맺는 행위는 영국과 미국 입장에서는 '숫가락을 얹는 행위'를 넘어 조약을 맺어 이권을 취하는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으니까요.


영국의 입장에서는 비록 당시 식민지 트렌드가 점령 대신 이권쟁취로 바뀌었지만 다른 국가들에서 확보한 이권쟁취에서 러시아가 숫가락 얹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 조선을 점령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즉, 해방 후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구한말 당시의 지정학적 위치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죠.


一德齋님의 '당시 영국은 일본보다 산업화가 훨씬 더 발달했기 때문에 조선을 강점해서 얻는 이익이 없는 반면 산업이 낙후된 일본은 조선을 강점해서 얻는 이익이 크다'는 주장은 맞는데 영국이 확보한 다른 나라들과의 조약에서 얻는 이익을 지키는 첨병을 조선이 지정학적으로 했고 그래서 일본이 없었다면 일본 대신 영국이 조선을 식민지로 강점을 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영국의 조선강점을 묵인했을 것이고요. 즉, 일본의 역할은 영국의 대용이라는 것이죠.



"영국의 국익을 지키는, 지정학적으로 첨병노릇을 하는 조선을 잘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일본"을 영국은 참 기특하게 여겼을지도 모르죠.


덧글) 제 예상이 맞다면 백년이 지나도 한국과 일본의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은 변한게 없네요.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나라, 일본은 강대국의 국익을 지키는 첨병노릇.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