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http://theacro.com/zbxe/?mid=free&page=2&document_srl=5207582)에 대한 후속 및 보완글 입니다. (조금 깁니다.)

이전 글에 대한 여러분들의 반응을 보면 조선의 패망원인에 대한 의도적 외면이 느껴집니다.(물론 제 느낌이고 사실이 아닐수도 있죠.) 한영우 교수가 쓴 "다시찾는 우리역사" 일부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댓글에 일부 썼던 내용입니다.)

<<조선은 선량한 주인이고 일제는 강포한 도둑이다. 조선왕조의 문화와 도덕은 아름다운 보석이고 조선의 문민정치는 서유럽의 근대 민주주의와 다를바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한 조선왕조가 망한 것을 조선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강포한 도적'은 놔두고 '선량한 주인' 만을 탓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이다. 도둑이 들어왔으니 싸움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武를 중시하는 야만인들이나 하는 일이다. 조선은 너무 선량하여 강포한 외적을 막을 수 없었다.>>

어떻게 느끼시나요? 혹시 여러분들도 저렇게 느끼지 않으십니까? 제가 이전글에서 "일본이 아니었으면 러시아였을 것이다."라고 쓴 것을 제국주의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해석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개인적 해석에 따라서 그런 오해의 소지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체 글의 맥락은 "우리의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발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우리 생각이 강포한 도적에 대해 욕하기만 하는 수준에만 머물러 있다면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떤 답을 찾을 수 있나요? 우리는 선량하므로 강포한 도적을 만난 잘못 밖에는 없다.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쩌죠? 이런 사고방식에서 어떤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도대체 조선은 왜 멸망했을까요? 왕과 양반의 무능, 세도정치, 쇄국정책 등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했겠죠. 여기서 우리가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1. 왕과 양반의 무능은 우리가 지도자를 잘 뽑고 청렴하고 능력있는 관리를 잘 육성해야하겠죠. 그런데 이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요?
2. 세도정치도 결국 왕과 양반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죠.
3. 쇄국정책은 어떤 가요? 이것도 역시 지도층이 무능하면 안된다는 것이죠. 아 FTA를 더욱 열심히 체결해서 개혁개방을 확대해야 하나요?
4. 탐관오리 및 양반의 비리와 착취? 이건 조선 500년간 늘상 있었던 사실이죠.

너무 평면적인 분석 이죠.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들어보셨거나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저는 이런 이유만으로 조선의 멸망을 분석하는 것은 성에차지 않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죠. 어떤 나라가 멸망한다는 것은 손쉽게 그냥 발생하는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특히 조선은 고려부터 1,000년 이상 하나의 국가로 운영되었으니까요.

일제 병합 당시 조선의 면적은 일본 국토의 2/3, 인구는 일본의 1/2수준의 대국이었습니다. 이런 나라가 총싸움 한번 없이 국권을 넘겨야 했던 원인이 저렇게 단순할까요? 심층적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가지 문헌들을 찾아보았지만 양계초의 우리민족을 비하(?)하는 저술 외에 우리나라 학자들의 저술을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 였습니다. 일부는 부정부패를 강조하거나, 허약한 방위체제와 위기대응 능력의 부재 등을 원인으로 들고 있는것들이고(이것도 너무 일반적, 단편적 분석이라 생각합니다.) 조선 멸망의 원인을 심층적(물론 저의 주관적 의미로 그렇다는 것입니다.)으로 분석한 내용은 거의 접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조선민족의 우수성이나 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상찬은 차고 넘치죠.

이전 글을 게시판에 올리면서 왜 이런 저술이 적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비록 약간이지만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조선의 멸망 원인을 내부적인 것으로 돌린다면 <강포한 도적인 일제를 옹호>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는 친일파로 몰릴 것이고 엄청난 비판을 감수해야 하겠죠. 그러니, 어떤 역사학자가 우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을 활자화 하는 용기를 낼까요?

게다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묘한책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민중사관에서는 조선의 멸망원인은 중요치 않습니다. "식민지기에 민족해방이 지상과제이듯이 해방 후 분단시대에는 민족통일이 지상과제" 이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타도되어야 할 남한의 친일파들과 매판자본에 대해 비판"할 시간도 부족한데 조선이 왜 멸망했는지 성찰할 여유가 있겠습니까?

그럼 도대체 조선은 왜 멸망했을까요? 경제, 사회, 문화, 사상 등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은 망한 것입니다.

1. 우선 환경파괴와 경제위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의 문화는 우수합니다. 특히 개인, 촌락, 사유재산 등의 현대 문명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장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피폐해진 조선이 영정조 시대에 인구가 늘고 국가의 재정이 확대됩니다.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왜란, 병자호란(1636년)을 거치면서 조선의 전국토가 피폐해졌는데 영정조 시대에는 조선이 부강했다고 알고 있죠.(어쨌든 이전 보다는 좋아졌다고 배웠습니다.) 영조가 1694년에 즉위했으니 불과 60여년만에 조선에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겠습니까? 탕평책과 균역법의 시행으로 정치가 안정되고 민생이 편해졌을테지만 이것만으로 60년 만에 국가가 극적으로 회생했다는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도 아니구요.

그 해답은 중국의 백사와 일본의 은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이 번성했기 때문입니다.(자세한 원인을 쓰기에는 너무 장황하므로 생략합니다.) 중계무역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이에 따라 동전의 주조가 가능해지고 동전이 주조되면서 비로소 5일장의 형태로 시장이라는 것이 활성화 됩니다.

여기에 이앙법이 발달하면서 좁은 면적에 노동력을 투입해서 생산성을 극대화기키는 소농적 집약농법이 널리 퍼집니다. 즉, 가구단위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지고 잉여자원을 다른 물품과 교환하는 시장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거죠. 이런 국제적 경제환경과 농업기술 혁신에 따라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영정조에서 조선은 다시 번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역사는 항상 예측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것이 아이러니인데... 이렇게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서 인구가 증가합니다. 생산성이 증가됐다고는 하나 집약농법으로 생산량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인구가 증가하자 더이상 먹여살리기가 어려워 집니다. 그래서 산을 개간하여 밭을 일굽니다. 또 땔감이 부족하니 산의 나무를 베어서 난방과 취사를 위해 쓰게되죠. 강원도 깊은 산속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산이 헐벗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무슨일이 생길지는 자명합니다. 산에 나무가 없으니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발생하고 산사태가 나서 논을 덮어버립니다. 이영훈 교수 논문에 따르면 18세기 중엽에 비해 19세기 말에는 농업 생산량이 1/3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러니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확산되고 전국 곳곳에서 민란이 발생합니다. 동학난이 발생한 배경에는 이런 원인이 있습니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폭정이 도화선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심층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이때는 이미 국가의 관리 능력이 결여된 상황이었습니다. 구한말 자주 발생했던 홍수가 우연은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어떤 문명이 어느 발전단계에서 자연자원의 고갈로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죠. 조선왕조도 이길을 따라 갔다고 봐도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2. 성리학의 정치원리

어느 문명이 해체되는 것은 극히 예외적으로 홀로 고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미 쇠약해진 단계에서 다른 거대한 문명의 충격에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적으로 문명의 충격에 대응하는 것은 소수 지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도전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올바른 대응을 강구하는 것은 다수의 대중이 아니라 창조적인 소수의 지도적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대중은 창조적인 소수를 믿고 따라줄 필요가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이 성공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죠. 유감스럽게도 조선은 잘못 대응한거죠. 아니 잘못대응했다기 보다는 대응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실학 사상가들이 있었고 그들을 계승한 김옥균 등의 개화파가 있었으나, 그들의 힘은 미약하고 대중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그렇다면 조선의 지도자들은 왜 세계사의 급변하는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걸까요?

우선 체제의 혼란이 이미 장기간 지속되었고, 인간, 사회, 국가, 세계를 바라보는 그들의 세계관이 낡은 문명의 원리에 너무 깊숙이 고착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의 성리학에 따르면 왕은 하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자로서 신성불가침의 권리를 누리고 하늘을 대신해서 삼강오륜이라는 도덕을 대변하고 수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백성은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자식이 효도를 다하고, 아내가 남편을 정성으로 섬기면 하늘도 부응하여 세상만사가 평화롭고 풍요로워 진다는 거죠. 성리학의 정치원리에서 백성은 어린애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격변하는 세계 정세에 대응하기에 적합한 원리가 아니었습니다.

3. 중화제국의 국제질서

2번의 내용과 비슷하지만 조선은 500년간 중화제국의 국제질서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조선의 왕과 양반의 마음의 고향은 중국이었습니다. 조선은 중국의 99.9% 속국이었습니다.

(잠깐 갓길로 샙니다. 매년초에 조선의 임금이 하는 최초의 일과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문무백관을 대동하고 명나라 쪽을 향해서 세배를 하는 것이 매년 초에 조선의 임금이 신하들과 늘어서서 하던 일이었습니다. 그 절을 몇번해야 하는지로 당쟁을 벌인 나라가 조선이죠. 김남의 노컷 조선왕조실록) 

왕이 바뀌면 천자로부터 책봉을 받아서 정통성을 확보한 것도 그렇고 기자조선을 신봉한 것이나 소중화사상 등이 그러한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은 독립적인 자주국이라는 인식이 없었으며 중국의 속국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명나라가 망하고 세계문명의 중심이 조선으로 옮겨 왔다고 믿었던 소중화 사상의 세계관을 가진 조선의 지도자들의 시각에서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을 바라는 것이 불가능했던 거겠죠. 이런 국제 감각을 타파할 만한 지성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너무도 낡고 고루한 인식이었죠. 견갑으로 둘러싸인 전통 문명은 보기에 따라 무척 아릅답습니다. 보석과 같은 문명이죠. 그러나 이러한 문명에 현혹되어 짚어야 할 것을 못짚는 우를 범하면 안됩니다.

4. 대전환

18~20세기 격동의 한국사는 이러한 조선문명과 세계문명과의 충돌이라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사건의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는 강포한 도적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가 다시 찾은 역사만이 다가 아닙니다. 바로 그때 문명사의 일대전환이 있었던 겁니다. 중국문명권에서 이탈하여 서유럽 문명권으로 편입된 역사가 20세기 한국의 역사입니다. 유교문명권에서 기독교 문명권으로, 대륙농경문명에서 해양상업문명으로의 일대 전환입니다.

이렇게 바라볼때 비로소 조선이 왜 망했는지에 대한 성찰이 가능해지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이 다가 아닐겁니다. 이런 인식하에서 정말 어떤 것들이 잘못된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편견없는 토론이 가능해질거라 생각합니다.

(덧1) 이렇게 보면 해방이후 대한민국의 발전은 중국문명에서 분리되고 서구의 기독교 문명과 합쳐지고 적응하면서부터라고 설명할 수 있겠죠. 서구의 기독교 문명이라는 것은 결국 미국중심의 세계질서를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는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유치한 질문일 수 있지만 우리가 만약 두나라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 어떠해야 하는지 한번 각자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당연히 우리는 두나라와 모두 잘 지내는 것이 좋겠죠. 그러나, 국제질서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죠.)

중국으로 기우는 분들이 있는것 같은데 저는 그런분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선 500년간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 중국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일제 35년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를 갈면서 500년간 실질적으로 중국의 지배를 받은 부분에 대해서 중국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으신가요? 저는 별로 없습니다. 처녀와 내시까지 중국에 바치던 나라가 조선이었습니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사대한 것이고 우리가 원해서 처녀와 내시를 바쳤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은건가요?

(덧2) 역사를 전공하고 연구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비웃으실 겁니다. 문외한이 역사에 대한 글을 쓰려니 힘드네요.

(덧3)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대한민국 이야기, 대한민국 역사,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기타 논문 및 기타 도서 등을 참고하고 제 생각을 보태어 정리했습니다.

(덧4) 노파심에 다시한번 강조합니다. 저는 일제가 한 잘못을 이해하고 넘어가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제는 범죄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에 언급한 35년과 500년을 비교해서 일제의 잘못을 물타기하려고 한다는 얘기는 정중히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