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것은 운동장 아닌 실력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운동장이 기울어진 게 아니고, 실력이 딸리는 겁니다. 호남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호남에 기반한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게 호남 인구가 영남보다 적기 때문인가요? 그건 표면만을 본 분석입니다. 영남도 전체 인구의 35% 수준입니다. 중요한 것은 영남도 호남도 아닌 다른 지역의 유권자들에게 영남이 내세우는 명분과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총칼을 앞세운 공포 분위기가 그들의 선택을 좌우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제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호남과 진보개혁 진영은 이제 변해야 합니다. 그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게 친노패권입니다. 그래서 대안정당은 무엇보다 먼저 친노패권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너 새누리당 지지자냐?” 이렇게 물어보는 분들 계십니다. 저는 호남이 친노세력의 숙주 노릇을 하기보다 선택지를 다양화한다는 측면에서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봅니다만 새누리당 지지자는 아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새누리당이 영남패권의 포로가 되어있는 한 저는 새누리당을 지지할 수 없습니다.

 

박정희정권 이래 영남은 경제개발과 산업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현재 영남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영향력은 그 반대급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이 분명히 있습니다. 영남지방에 자원을 특혜 투입해서 발전하다 보니 지역불균형과 함께 영남이 이너서클화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남이 특권을 내려놓고 다른 지역과 함께 가는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해마다 새해 예산안을 확정할 때가 되면 영남지역 특혜 시비가 일어납니다. 이런 일이 1~2년도 아니고 박정희 집권 이래 반세기 이상 지속됐습니다. 이런 특혜의 누적이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요? 저는 현재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의 80~90% 가량이 영남에 편중돼있다고 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대한민국은 영남의, 영남에 의한, 영남을 위한 나라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영남이 패권을 유지하는 방식입니다. 그것은 바로 왕따 작전입니다. 영남패권의 저항 기지 역할을 해온 호남을 악마화하고 소외시키는 혐오 조장 전략을 동원한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지역감정이 있고 특정 민족과 지역을 폄하하는 문화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호남에 대한 혐오감은 그렇게 쉽게 규정할 수 없습니다. 권력의 요구가 개입돼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될 수 없고 시간이 갈수록 혐오 메시지가 악랄해지고 잔인해지고 있습니다.

 

이 전략은 악마의 유혹입니다. 매우 달콤하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그 후유증은 어마어마합니다.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족과 국가의 미래를 팔아넘기는 행위입니다. 영남이 자랑해온 경제개발과 산업화의 업적이란 것도 이 거대한 후폭풍 앞에서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입니다.

 

영남의 논리와 명분이 호남보다 우월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고 앞에서 얘기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한국 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 먹고사는 문제, 부국강병의 길이라는 점에서 영남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바뀌고 있습니다. 영남패권은 이제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주력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부패는 영남패권의 결과

 

아시아권 국가 중에서도 한국의 부정부패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부정부패는 감시와 견제 기능이 사라질 때 기승을 부립니다. 그런데 한국이 근대화의 세례를 받지 못한 후진국이어서 감시와 견제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것일까요? 그래서 한국의 부정부패가 심각한 것입니까? 그게 아니라는 것은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알고 하늘도 알고 땅도 압니다.

 

아무리 첨단 감시시스템을 만들고 견제 관리 감독기관을 만들어도 결국 일은 사람이 합니다. 감시하고 견제할 사람이 감시와 견제의 대상과 결탁한다면 천하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도 무용지물입니다. 한국의 국가시스템은 심각한 연고주의에 의해 오염된 상태입니다. 서로 봐주고 눈감아주고 밀어주고 끌어주고 당겨주고 빨아주고 핥아줍니다. 누가? 영남세력이. 누구를? 영남세력을.

 

우리나라에서 연고를 따질 때 학연 혈연 지연 세 가지를 얘기합니다만, 이 세 가지는 하나입니다. 같은 고장에 친척들이 어울려 살고 학교 동창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연고주의는 지연이라는 형태로 완성됩니다. 영남패권이 한국을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영남이라는 지연을 통해 광범위한 대중을 하나의 이익공동체로 묶어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패권은 한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혁신과 진화를 모색하는 분들이 다양한 대안을 제기하지만 그 대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영남패권이라는 거대한 기득권 카르텔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어떤 개혁이나 변화도 도로아미타불, 원점 회귀가 됩니다.

 

현 정권이 말하는 규제개혁은 한국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절실한 요구입니다. 하지만 현 정권이 추진하는 규제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규제개혁은 결국 공무원 권한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공무원 시스템은 영남세력에 의해 장악돼 있습니다. 저들이 자신의 손발을 스스로 자를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현 정권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인 영남의 기득권에 손을 댈 수 없습니다.

 

한국의 자본은 영남패권과 이해공동체였지만 이제 그 관계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규제개혁부터 남북평화의 정착에 이르기까지 영남패권의 기득권은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가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영남패권과의 결별이 필수적입니다. 이 점에서 호남과 진보개혁 진영의 과제도 변해야 합니다. 영남패권과 한국 자본주의를 분리해내고, 한국의 새로운 발전 전략과 방법론, 로드맵을 제시해야 합니다.

 

호남의 명분 도둑질하는 친노패권

 

이런 과제를 해내기 위해서는 호남의 정당성과 명분 흔히 소프트파워라고 말하는 부분이 필요합니다. 친노패권을 척결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친노세력은 호남의 정치적 자산을 도둑질하고 김대중과 호남 정치를 폄하하지 않으면 독자적인 생존이 불가능한 정치집단입니다.

 

보통 권위주의 타파가 노무현의 업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치의 권위주의는 87년 체제로 무너졌습니다. 노태우 김영삼 정권도 권위주의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노무현은 권위주의 대신 권위를 무너뜨렸습니다. 권위주의와 권위는 다릅니다. 친노세력은 이 점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권위주의란 어떤 일을 권위에 맹목적으로 의지하여 해결하려는 행동양식이나 사상을 말합니다. 미신의 일종입니다. 반면 권위란 어느 개인조직(또는 제도)관념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지닐 경우, 그 영향력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 권위는 우리 사회에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가치 또는 자산입니다.

 

보수세력이 반세기 넘게 대한민국의 운영을 주도했기 때문에 민주개혁 진영은 거기에 대항하는 권위를 만들기 어려웠습니다. 민주진보 진영에서 국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권위라면 김대중과 호남의 민주화 투쟁이 대표적입니다. 노벨평화상과 5.18투쟁이 그 상징입니다. 하지만 노무현과 친노세력은 민주진보 진영의 자산인 김대중과 호남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폄하하고 모함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호남 거물 정치인을 구태, 무능, 토호로 몰아 공천 배제하거나, 당선 불가능한 지역에 출마를 강요했습니다. 원조 친노인 천정배와 정동영조차 당을 떠났다는 것은 친노가 주장하는 정치개혁의 목표가 사실은 호남세력 말살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친노세력이 부패 구태세력이라고 비난하는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등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지금 기준으로 보면 투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사회상이나 정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와 똑같은 기준으로 비난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70년대에는 김대중을 지지한다는 사실만 알려져도 패가망신한 기업인들, 당원들이 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지금과 같은 기준으로 투명하게 정치를 하고 정치 헌금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군부독재 정권에서 탄압당하고 고생하고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따지자면 친노 정치인들과 문재인, 노무현까지 모두 쓸어모아도 저 동교동계 정치인 어느 한 사람만도 못하다고 봅니다. 노무현 본인도 저 동교동계 정치인들 앞에 가면 공손히 두 손 모으고 예의를 지키는 게 맞습니다. 저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온갖 고생하며 민주화 투쟁할 때 노무현은 부산에서 돈 잘버는 세무 전문 변호사였습니다. 감히 누가 누구한테 부패 구태 정치인이라고 비난하는 겁니까?

 

다당제는 영남패권 극복 이후에 가능

 

정치인은 유권자의 심부름꾼입니다. 당연히 정당과 정치인, 정치세력은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들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친노세력은 호남 유권자들을 위협하고 호남 유권자들은 친노세력의 눈치를 봅니다. 우리 속담에 올챙이한테 뭐 물린다고 합니다만 호남이야말로 한 줌도 안 되는 친노세력 올챙이한테 뭐를 물려서 질질 끌려다니는 꼬락서니입니다.

 

친노세력의 호남 죽이기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바로 그 성공이 지금 야당을 죽이고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민주개혁 진영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정파의 이익 때문에 훼손한 당연한 귀결입니다. 호남정치를 복원하고, 정상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호남 한풀이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개혁 진영을 되살리고 대한민국 정치를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친노세력이 새정치연합을 장악하고 있는 한 이 당의 개선 가능성은 없습니다. 신상필벌과 실사구시가 불가능합니다. 최소한의 당내 민주주의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새누리당과 한국 자본주의의 동맹관계에 균열이 가고 한국의 발전이 영남패권 때문에 가로막혀 있는 이 때, 호남과 민주진보개혁 진영은 과거의 낡은 좌파적 윤리와 도그마를 버리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부국강병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안정당을 건설해야 할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것은 호남의 한풀이가 아니고, 대한민국 역사와 정치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형성하는 첫 출발이라고 봅니다.

 

아울러, 대안정당 논의와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이슈인 양당제와 다당제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당제가 보다 건강한 정치를 나타내는 바로미터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 다당제는 정치개혁의 수단이 아니라, 그 결과물이라고 봅니다. 영남패권이 대한민국의 권력을 장악하고, 호남이 거기에 저항하는 대립구도에서는 제3의 정치세력이 존재할 여지가 없습니다. 3정당이 존립해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다당제 환경은 영남패권이 극복된 이후에나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