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2층 대회의실에서 '대안정당 건설과 친노패권의 극복'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습니다.

 

윤석규 개혁적국민정당 기획위원이 '천정배 신당의 추진 원칙과 현황' 제가 '대안정당 건설과 친노패권의 극복'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40여명이 오셔서 많은 질문을 해주셨고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날 행사를 열 수 있도록 서울시의회 이행자 의원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

 

당일 제가 발제한 내용부터 소개하겠습니다.

 

대안정당 건설과 친노패권의 극복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대안정당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의 문제점 때문입니다. 새정치연합의 문제점으로 계파갈등이 주로 거론됩니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나 운영 방향을 둘러싼 이견은 존재합니다. 정당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노선을 실천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노선 차이는 반드시 발생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기도 합니다. 노선 차이가 없는 정당은 죽은 정당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이 조직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갈등이 조직의 문제점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드러내지 못할 경우 그 갈등은 밥그릇 싸움으로 추락합니다. 현재 새정치연합의 친노-비노 갈등이 전형적인 밥그릇 싸움의 모습입니다. 친노패권이 문제라면서도 그 친노패권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들 눈에는 그저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보장받기 위한 집단 떼쓰기 정도로 비춰지는 것입니다.

 

새정치연합 계파갈등이 문제라고?

 

저는 새정치연합의 진짜 문제점은 정당에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가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신상필벌과 실사구시가 그것입니다. 친노패권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이 문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고, 그들이 새정치연합에 남아있는 한 그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신상필벌의 부재란 공을 세운 사람이 그만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반대로 능력도 공도 없는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재인입니다. 요즘 현대판 음서제 얘기가 많지만 대한민국 정계에서 문재인이야말로 전무후무한 음서제의 사례입니다.

 

정치적 경륜이 전혀 검증되지 않은데다 소속 정당에 대한 충성심조차 의심스러운 문재인이 전직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만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 후보가 된 데 이어 대통령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고 제1야당 대표 자리에 올랐습니다. 문재인의 무능과 특권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도 문재인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반면 70, 80년대부터 김대중 따라다니며 고생해온 고참 당원들은 자리에서 쫓겨나고 그 자리를 김영삼 추종했거나 심지어 한나라당 기웃거리던 친노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당료들이 무능한데다 공무원 수준으로 복지부동이어서 당 하부 조직이 뿌리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를 과거 민주당 관계자들로부터 들었습니다. 최근 새정치연합이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는 것은 이런 하부조직의 붕괴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신상필벌의 부재는 공직 선거의 공천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친노세력이 민주당을 장악한 이후 선거 때마다 친노 편향 공천이라는 비난이 들끓었습니다. 한명숙 대표 시절의 노이사 공천이 유명하지만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의 순천곡성, 올해 4.29 재보궐 선거 관악을 공천도 원칙을 깨트린 불공정 공천, 친노 꽂아넣기 공천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결국 이 지역구에서는 모두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이런 불공정 공천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모바일투표, 네트워크 투표입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SNS 등은 첨단 기술을 동원한 공천의 선진화처럼 보이지만 그 핵심은 정당의 주인인 당원의 권리를 빼앗아 정당 밖의 외부 세력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주식회사의 CEO를 주주가 아닌 시장조사나 여론조사로 선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회사는 주주들이 투자할 이유가 없고 결국 망합니다. 새정치연합의 현실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이 공천 등 중요한 결정에서 당의 주인인 당원을 배제한다는 것은 사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새정치연합 당원의 주력은 호남 또는 호남 출신 유권자들입니다. 새정치연합 친노들이 이런저런 명분을 대면서 당원의 권리를 축소하는 것은 사실 당의 의사결정에서 호남의 목소리를 최대한 배제하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닙니다.

 

신상필벌과 실사구시 부재가 진짜 문제

 

최근의 중요한 당내 투표에서 당원들의 의견과 외부 세력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는 것, 친노세력이 당원이 아닌 외부 세력의 지지에 힘입어 투표에서 승리해왔다는 것은 현재 당내 갈등이 근본적으로 친노와 호남의 대립에서 기인한다는 것, 그 갈등이 일시적인 미봉책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당에서 11, 다수결 등 최소한의 민주주의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는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또 모바일, 네트워크 투표, 오픈 프라이머리 주장 등은 정당의 성격에 대한 매우 중대한 왜곡을 담고 있습니다. 정당은 정치적 견해와 이해관계의 동질성에 따라 모인 집단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해서 다 같은 정당원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됩니다. 같은 국민 안에서도 정치적 색깔이 다른 사람들을 나뉘어서 그들이 서로 다른 정책과 노선으로 경쟁해서 결과적으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당의 존재이유입니다.

 

하지만 친노세력은 깨어있는 시민, 네티즌 참여라는 거짓된 명분으로 정당정치의 근본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당원에게 결정권이 없으면 아무리 선거에서 실패해도 지도부에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친노세력이 수없이 선거에 패배해도 책임을 물어 갈아치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상필벌이 새정치연합 내부의 정의에 관한 문제라면 실사구시는 대외적인 경쟁력의 문제입니다. 이 나라의 먹고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대안을 제시해 광범위한 유권자 대중의 지지를 얻는 능력입니다. 친노세력은 본질적으로 관념적이고, 생산력 증대에 적대적입니다. 이것은 이들이 우리나라 좌파 진영의 제도권 대리인(Agent)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새정치연합이 입법 및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반기업/반시장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일은 너무 흔합니다.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새정치연합의 입장은 흔히 노동귀족이라고 불리는 상위 10% 대기업 공공 분야 노동자들의 이익만 옹호하는 것입니다. 새정치연합의 정책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반대하고 큰정부를 지향하는 좌파적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새정치연합의 정책은 공무원의 숫자를 늘리고 권한을 키우고 민간 부문의 활력을 죽여서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아서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일자리를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결국 비정규직의 비참한 처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호남, 친노세력에 사망선고를 내리다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민심이 박근혜정권에서 이반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돌아선 민심이 새정치연합을 지지하는 일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0.28 재보궐선거의 결과가 그 점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호남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이 잘못해도 그들을 비판할지언정 그 반대급부로 새정치연합을 지지하지는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선언에 담긴 메시지를 신당 추진세력들은 심각하게,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메시지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유권자들은 새정치연합에 대해서 사망선고를 내렸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새정치연합을 주도해온 친노세력에 대한 사망선고입니다. 앞으로 잘하라는 채찍질이 아닙니다. 눈앞에서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새정치연합이 정치적 생명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문재인과 친노세력이 현재처럼 당을 틀어쥐고 있는 한 그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고 봅니다.

 

둘째, 어설픈 도덕주의자 시늉은 역겹다,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시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이 내건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이 이 어설픈 도덕주의를 잘 보여줍니다. 얼핏 보면 인간적이고 따뜻해 보이는 저 슬로건은 친노세력 특유의 비합리성, 감성팔이, 관념적인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치가 도덕적 지향을 갖는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식은 현실 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어야 합니다. 친노세력 등 우리나라 진보좌파 진영에는 종교인 철학자 흉내를 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현실에서 도덕적인 삶을 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잖습니까? 노무현이 자살한 이유가 뭡니까? 가족과 측근들 비리를 덮어주려는 것 아니었습니까? 한명숙이 스스로 결백하다고 우기고 친노세력은 그걸 옹호하지만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수작입니다.

 

새정치연합이 선거에 패하고 진보의 위기가 거론될 때마다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 론이 등장합니다.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언론의 구조가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에 유리하게 돼있기 때문에 즉 선수들이 뛰는 운동장이 애초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의 다른 버전으로 국민 개새끼론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멍청하고 쓰레기들이어서 고상한 진보를 지지하지 않고 타락한 보수세력을 지지한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오히려 이 기울어진 운동장 론이야말로 진보진영이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는 원흉이라고 봅니다. 87년 이전이라면 기울어진 운동장 론이 유효할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진보 언론도 다수 등장하고 대한민국 건국 이래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이념에 가장 우호적이었던 486세대가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모바일, SNS로 얼마든지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메시지들이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운동장이 기울어진 게 아니라 운동장에서 뛰는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후져빠진 것입니다. 허접한 실력을 변명하느라 운동장이 기울어졌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겁니다. 보수진영의 인프라 장악력이 더 강했던 시대에도 진보의 메시지는 호응을 얻었고 집권과 나아가 집권 연장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왜 그게 불가능할까요? 오히려 인터넷과 모바일, SNS로 대중들이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의 메시지와 실체를 잘 이해하게 된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낳은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