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빠' 정치가 남긴 폐해, '나의 대통령'만 있고, '우리의 대통령'은 없다.
 
이진우ㅣ   기사입력 2015/11/06 [16:19]

[신문고 뉴스] 이진우/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 소장 =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기 위한 1단계 과정은 가정에서 처음 시작됩니다. 맏이의 경우 처음에는 부모가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다가 동생이 태어난 것을 계기로 부모가 나만의 부모가 아닌 동생의 부모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막내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형제자매들과 부모를 공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고 느끼기에 이와 같은 깨달음을 조금 더 일찍 얻게 되지요.

    

상당기간 부모를 독점하다가 누군가와 공유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아이와, 처음부터 부모를 공유하는 경험을 하면서 자란 아이 중 누가 더 사회성이 있을까요? 그래서 맏이 중에 외골수가 많고 막내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지요. 셋째 딸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며느리도 데려오라는 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2단계 과정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겪게 됩니다. 학교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와 부모 이외에 친구와 선생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친구에게도 부모가 있고 선생님에게도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나의 부모에게도 직업과 사회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있고, 가족과 별개로 모든 사람에게 또 다른 사회적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을 스스로 조정하고, 나 또한 어떻게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고 스스로 형성해나갈 것이냐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이것이 3단계 과정이죠. 이를 모두 거친 사람을 우리는 '철든 사람'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나의 부모에서 우리의 부모로, 그리고 내 부모의 아들에서 우리의 아들로 사고와 감정의 폭과 깊이를 넓혀 가는 것이 우리가 겪는 사회화 과정의 요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나이 40이 되어서도 여전히 나의 부모, 내 부모의 아들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이 사회는 거의 모든 곳에서 시끄러운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이며, 5천 만 명이 5천 가지 주장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겠지요.

    

토마스 홉스가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표현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홉스는 '사회적 계약'을 그 해법으로 제시했죠. '100% 나만을 위한 것'에서 '51% 나만을 위한 것'으로 물러나고 기다림으로써 나의 안전과 미래가 담보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혹시 홉스가 표현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과 오버랩되지 않으십니까? 여야가 싸우고, 호남과 영남이 싸우고, 60대 이상과 40대 이하가 싸우고, 같은 당에서도 주류와 비주류가 싸우고, 같은 노동자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싸우고,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역사학자들도 좌우로 나뉘어서 싸우고...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고야 말았을까요?

    

개개인은 사회화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지만 개개인이 모여 하나가 된 집단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두루뭉수리하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당의 친박그룹과 야당의 친노그룹이 바로 그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회화 과정을 거쳤는지 아닌지는 그들의 언어와 행동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좋아...싫어...예뻐...내꺼...나빠...못됐어...착해...화나...혼내줘..." 등입니다. 왜냐하면 사회화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이러한 표현들이 갖는 위험성과 책임감을 잘 알기에 함부로 쓰기 어렵지요.

 

▲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그런데 친박그룹의 수장 박근혜 대통령과 친노그룹의 수장 고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 의외로 이와 같은 말들을 너무 쉽게 사용합니다. "참 나쁜 대통령...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좌시하지 않겠다...지배를 받을 수 있다..." (이상 박근혜 대통령), "막가자는 거죠?...똥별들...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 (이상 고 노무현 대통령) 최정점의 정치인으로서 결코 쓰기 어려운 표현이지요. 왜 그럴까요?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선악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피아개념에서도 벗어나지 못했고, '우리 모두'가 아닌 '나와 너희들'의 개념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열광적인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이유도 어쩌면 간단명료하고 감정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지지층의 카타르시스를 풀어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미국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인기 비결이 바로 이와 같은 간단명료하고 감정적인 언어에 있다는 미국 정치평론가들 분석이 과연 우연일까요?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는 어쩌면 이와 같은 행보가 득표에 큰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치 불신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중도층은 투표장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얼마나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느냐의 싸움이 권력을 얻기 위한 진검승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이와 똑같은 행보를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식만 잘 보살피면 되었고 내 부모를 내가 독점하는 것에 집착해도 괜찮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면 내 부모는 나 아닌 다른 동생들까지 챙겨야 하는 우리들의 부모가 되어야 하고, 부모 역시 다른 형제들도 챙겨야 하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정치 리더십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대표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친노그룹의 수장으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르지만, 당대표가 되고나서의 행보는 분명 이와 달라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는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지요.

 

그를 지지하는 친노성향 지지층도 여전히 그를 "우리 모두의 당대표"가 될 수 있도록 놓아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국정화 고시 강행"으로 국민여론이 들끓고 있음에도 그 반사이익을 야당이 전혀 얻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변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야당인 것 같기는 한데 친박그룹과 차별화가 안되는 거죠.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교과서 국정화는 결코 선악의 문제도 아니고, 동지와 적군의 문제도 아닙니다. 국가가 사회의 방향성을 정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국가사회주의 신봉자와 국가가 가급적 사회의 메커니즘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유주의 신봉자 간의 가치관 싸움입니다. 세계적 관점에서 보자면 국가사회주의가 좌파이고, 자유주의가 우파인데, 대한민국에서는 우파가 국가사회주의적 역사관을 피력하고 좌파가 자유주의 역사관을 피력하는 대단히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박정희가 좌파이고 노무현이 우파이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지요.

    

친일과 독재미화가 문제의 본질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로 대한민국 헌법이 뚜렷하게 못을 박아놓았는데, 역사교육은 국가사회주의 가치관에 따라 시켜야 한다는 정체성의 혼란과 이념의 혼돈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오죽하면 극단적 형태의 국가사회주의인 북한과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이 동일한 역사관과 역사교육 방식을 시키는 상황이 벌어졌겠습니까? 한쪽은 무조건 박정희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무조건 노무현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본질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나'와 '나의 대통령'만 보이고, '우리'와 '우리의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 사회는 미성숙한 사회입니다. 토마스 홉스가 활동하던 400여년 전 사회로부터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국가보안법'과 '사학법'이 현행대로 그대로 유지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과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하고 '사학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간의 차이는 선과 악도 아니고 적과 동지도 아닙니다. 그저 세계관과 가치관이 다른 것이지요. 그런데 이에 대해 어떠한 여론수렴이나 설명도 없이 마치 군사작전을 감행하듯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서 강제 처리하려는 것은 집단의 사회화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국정화 반대"와 "친일 청산"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종북 빨갱이 혹은 좌파가 아닌 그저 세계관과 가치관이 나와 다른 사람들인 거지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여당과 야당 모두 그 주류 집단이 상대방을 악당으로 간주하고 있고, 자신만이 옳고 당당하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도 양보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요.

 

그러니 "국정화 반대"여론은 20% 가까이 찬성에서 반대로 뒤바뀌었지만 정당 지지율과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5%도 변동이 없는 놀라운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죠. 여당과 야당이 각각 메시아 형 '영도자'를 뽑아놓고 타협과 조정의 정치를 하라고 하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요?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바뀌겠습니까?

    

그렇다면 해답은 우리들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국가이고 사회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지요. 마치 국가와 사회가 나와는 전혀 별개의 마치 주어진 영구불변의 것인 양 행동하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국회의원이건 경찰서장이건 세무서장이건 사단장이건 학교 이사장이건 모두 자신의 자리를 망각한 채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모든 영역의 권위와 신뢰를 무너뜨렸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영원히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오직 '내'가 어떻게 이익을 챙길 것이냐에 모두가 함몰되는 것을 이제라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우리 아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향해 총칼을 겨누며 소수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모두가 죽거나 추락하는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은 세상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스스로가 국가와 사회의 중요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여 시민정신과 도덕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에게 건전한 공동체를 위한 사회 구성원 간 협력과 신뢰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보수주의의 핵심은 스스로에 대한 혁신과 화합을 위한 관용입니다. 마찬가지로 진보주의의 핵심은 기회균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수주의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과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찍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진보주의 또한 패거리 문화와 기득권 안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가 정치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는 결국 양심과 열정을 가진 시민세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정체성과 방향을 분명히 할 때에 비로소 정치권도 바뀔 겁니다.

    

이제 우리 시민들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본연의 자리를 잃어버린 채 정치권을 탓하고 언론을 탓하고 기득권층을 아무리 탓해봐야 그들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와는 정반대로 어쩌면 지금 정치권이 스스로 모순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할 만큼 우리가 그들을 잘못 길들여 그렇게 거대한 괴물로 만들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의 안전, 행복, 미래는 우리 스스로가 열어나가야 합니다. 시민으로서의 투철한 비판의식, 격조 높은 참여의식, 우리 사회를 향한 희망과 열정이 있을 때에 비로소 대한민국은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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仲尼再生 " 夜 의  走筆  " 취임사

 

저를 아크로 주필로 추천하시는 회원여러분의 글을 읽고, 오늘 본인은 본인의 향후 거취를 놓고 깊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끝없이 되뇌며, 다수 회원의 요청대로 아크로 "밤의 주필" 직을 기꺼이 수락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내 일신의 안녕 만을 위한다면 봉급 한 푼 못 받는 이 명예직을 수락할 수 없었겠지만, 이미 공인 아닌 공인이 된 몸으로서 이 위기의 시대에 역사가 제 어깨에 지운 이 짐을 떠맡기로, 본인은 이 아름다운 밤 위대한 결단을 내렸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