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바스티아님께서 언급하신 "전세계 역사에서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은 사례는 조선이 유일하다"라는 부분은 지금은 작고한 '미국인 한국역사학자이며 미국 한국학의 대부'라고 불리우던 제임스 버나드 팔레(James Bernard Palais, 1934년 ~ 2006년) 박사의 주장이죠.

이 양반이 한국 역사의 대부가 된 이유가 주한미군으로 근무(복무? 어느 쪽인지는 기록에 없음)하면라고 하더군요. 어쨌든 '같은 민족을 노예로 삼은 국가는 조선 밖에 없다'라는 주장은 이 양반에 의하여 처음 제기가 되었고 그가 작고하면서 그의 연구가 재평가되는 과정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의 이영훈 교수에 의하여 반박이 되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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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흥선대원군과 반계 유형원 등에 대한 인물연구에 심취했고 조선시대 분석과 함께 1970년대 한국의 인권탄압과 남북대립 등 정치현실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팔레 교수의 연구를 지원하고 싶다”며 100만 달러의 한국학 기금을 마련했지만 그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객관적 연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를 거절하기도 했다. 제임스 팔레 교수의 연구결과는 존 던컨 교수(미국 UCLA·동아시아학과)와 카터 에커트 교수(미국 하버드대·한국학연구소) 등 후학들이 한국학을 연구하는 토대가 됐고 여전히 국내외에서 한국학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제임스 팔레의 연구,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나?=논의의 중심은 제임스 팔레 교수의 연구였다. ‘제임스 팔레: 그의 동조자와 비판자’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선 마르티나 도이힐러 교수(영국 런던대·한국학연구센터)는 팔레 교수의 연구업적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평가했다. 제임스 팔레 교수는 『반계수록』과 중국의 문헌 등을 검토한 후, 유형원을 ‘새로운 학문의 선구자’가 아니라 중국에 매몰돼 도덕적 사회규범을 강조한 인물로 분석했다. 유형원을 양반체제와 엄격한 관료제로 돌아가자는 견해를 갖고 있는 인물로 파악한 것이다. 도이힐러 교수는 이에 동조하며 “유형원은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려 했다기보다는 완벽한 유교사회로의 회귀를 바랐던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토론자로 나선 정호훈 연구교수(연세대·국학연구원)는 “유형원의 관심사는 사회조직의 변화가 아니라 당대의 폐단인 토지제도의 개혁”이라며 “팔레 교수가 유형원의 문제의식 자체를 잘못 설정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정 교수는 “유형원이 중국의 이상적인 제도를 공부한 것은 맞지만 조선의 역사를 무시한 채 중국의 역사와 문화 자체에 심취한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노비의 인구비율이 30%가 넘었다는 점을 근거로 조선을 노예제 사회로 규정한 팔레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박도 나왔다. 이영훈 교수(경제학부)는 “그는 지주와 소작농 관계에서 소작료를 지불하는 계층을 노비로 봤고 그것이 당시 조선의 지배적인 생산양식이었기 때문에 조선을 노예제사회로 본 것”이라며 “당시의 소작농은 노예와 구분되는 농노의 개념이고 이는 서구의 노예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서구의 노예는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로 여겨지는 데 반해 조선의 노비는 차별을 받기는 했지만 상민 계층과 혼인하고 함께 노동하는 등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생활을 보장받았다”며 “조선에서 사회적으로 죽은 노예의 이미지를 찾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편 제임스 팔레 교수는 조선후기에 난전이나 보부상과 같은 ‘자본주의의 맹아’가 존재했다고 보는 한국 역사학계에 반발해 “한국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맹아적 요소가 자본주의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극히 작았다”며 “이는 자본주의자들이 역사를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한국 역사학계는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하며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