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상에 대하여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알려진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도 식민 사학의 영향이나 드라마를 통하여, 그리고 특정 시기만을 떼어내서 기술하거나 이야기하는 내용들의 이미지 탓일 것입니다.


한영우 교수가 쓴  과거, 출세의 사다리라는 책을 보면 조선시대가 생각보다 괜찮은 나라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오랜기간동안 조선시대 전체의 문과 급제자를 기록한 방목에 등재된 급제자를 일일이 추적하고 각 가문의 족보 통합보와 대조를 하여 급제자의 신분및 출신을 추적하고 정리하였습니다.


엄청나게 방대한 작업을 개인이 해 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대단하고 급제자 개인의 가문과 벼슬등을 다 기록하였습니다.

이책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1. 조선시대 과거 응시는 서얼 노비를 빼고는 모두가 응시자격이 있었으며 실제로 응시했다는 것입니다.

2. 모든사람에게 문호를 개방해도 지금처럼 사교육이나 경제력이 좌우를 한다면 신분상승이 어렵겠지만 문과 급제자의 50%에서 20%사이를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차지하였습니다.


3.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승진이나 벼슬은 정1품은 좀 힘들었어도 정2품이나 당상관은 상당수 배출을 하고 지방수령으로도 진출하고 청요직인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임용되었습니다.


4. 과거응시 할때는 내외 4대조를 기록하게 되어 있는데 즉 친가 3대와 외조부를 기록하는데 본관이 없거나 4대조를 기록안하는 사람 심지어 아버지 이름도 없는 사람도 급제를 하고 벼슬을 받았습니다.


5 어떤 시기는 서얼도 급제를 하고 벼슬을 받기도 하였고 노비나 천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신분을 속이고 급제한 사람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6. 태종과 세종때 신분이 한미한 사람의 급제나 출세가 가장 왕성하였고 중종때 사림이 등장한 후부터 효종때까지 20%대이고 정조부터 50%로 올라가서 고종때는 58%로 높아집니다.


7. 조선의 신분질서가 양반, 중인, 평민, 천인,노비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법적 권리나 의무에 있어서는 양반과 노비를 빼고는 모두 동일하였습니다.


8. 양반 역시 현직 벼슬자를 칭하는 용어였지만 나중에는 조상중에 벼슬을 한 사람들은 다 양반후손이라는 의식이 있었고 사회적 평판이나 대우는 경제력이나 3-4대조가 벼슬을 한 경우 집안인척중에서 고위직이나 벼슬을 한 사람이 많은 벌열과 몰락한 양반에 따라 달랐습니다.


9.  68년의 나날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무관 노상추는 평생일기를 썼는데 그 일기를 통하여 양반의 일생을 통해서 보면 재산이 적은 양반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면서 재산의 대부분을  팔아야 하는 경우가 상당하였고 이 경우 급제를 못하면 또는 했다해도 탐관오리가 되지 않으면 사실상 몰락 양반이 됩니다.


10. 중인 양반 평민 칠반천역등의 신분이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지방 아전이나 향리의 자녀 중인의 자녀중에서 급제하여 양반 벼슬을 얻은 사람들이 많이 있고 농민이나 상업 종사자 심지어 천역에 종사하는 사람 자녀중에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은 급제를 하였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여러 여건상 양반이나 좋은 가문의 자녀들이 진출할 기회가 훨씬ㅁ 많았다고 보지만 수가 많은 평민이나 중인들의 급제자도 무시할 수 없었고 그들의 집안은 양반으로 승격이 되었습니다.


11. 생각보다 당상관이나 참상관 청요직등에 임용되는데 출신 신분이 크게 제약을 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조정에서 부친과 같이 근무한 사람들이나 유명가문의 경우 후광덕을 많이 보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12. 우리나라 명문 가문은 약 7십개정도인데 본관이 주로 영남 호남 충청에 몰려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인구가 천명도 안되는 희귀성씨 집안출신들의 급제자도 상당수 있으며 소위 명문이 아닌 성씨 출신들이 더 많았습니다.

    


위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조선이 서양의 귀족사회나 일본처럼 신분이동이 고정된 사회가 아니라 신분이동이 상당히 자유로운 사회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은 노예제도만 빼고 중국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신분상으로 내외 4대조가 벼슬을 한 경우만 양반으로 호적이 정리되었지만 지방에서 그런 윈칙이 지켜지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또한 유학을 양반으로 취급한 통계도 있는데 유학은 누구나 국가 교육기관인 향교등에 적을 두면 유학이 되는 것이고 군역을 면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교수관이 파견된 향교등에서 학비를 무료로 배우고 부친은 농사나 장사등을 통해서 경제력을 지원하는 경우 과거 급제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증광시의 경우 지역별 초시 급제자 인원을 할당을 하여 지방인재도 배려를 해서 평민들의 벼슬진입이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조선은 기본적으로 능력본위 사회였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