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이강철 등의 이름은 없었군요.
  
  “이강철은 여러 이유로 대통령이 깊이 신뢰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근데 세 번째 모임을 하던 날, 문재인이 떡하니 나타난 겁니다. 당선자가 문재인을 데려와서 ‘부산에서 활동한 문재인 변호사를 올라오라 해서 이 모임에 정규 멤버로 참석토록 했다’고 말하더군요. 나는 문재인 실물을 그날 처음 봤어요. 몇 년 전부터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선거기간에도 본 적이 없고 사진으로만 얼굴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겠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대통령이 그렇게 몇 번이나 도와달라고 할 때 모른 척하고, 심지어 대통령이 되더라도 절대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겠다던 사람이 당선되고 나니까 딱 나타난 겁니다. 이중적 태도라는 생각이 안 들겠어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대통령한테 ‘이 모임 더 하면 언론에 노출될 것 같다, 비선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 이 모임은 그만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버렸습니다. 그 후 모임은 없었습니다. 명분은 그랬지만 솔직히 내 사심(私心)이 있었던 거죠. 그런 사람과 함께 앉아서 국사를 논의하기 싫었던 겁니다.



노무현, 문재인을 부산시장 후보로 영입하려 해


—그때 노 후보는 문재인을 생각했던 걸까요.
  
  “사실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때 노무현의 생각은 YS(김영삼) 측근인 박종웅 의원을 데려오는 거였습니다. 노무현은 종종 ‘DJ가 못한 일을 내가 할 수 있다’고 얘기하곤 했어요. YS 밑에서 자라서 DJ의 품으로 온 사람이기 때문에 영호남을 아우를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YS를 찾아가서 박종웅 의원을 부산시장 후보로 내 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근데 결국 실패했지요. 다른 후보를 찾아보려니 그나마 경쟁력 있는 사람이 이기택, 신상우 정도인데 노무현이 이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문 대표는 인지도가 없었죠.
  
  “4월에 노무현이 대선후보가 되면서 인터뷰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묻는 질문에 부산에서 같이 일해 온 문재인 변호사라고 답했고, 그때부터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의 일거수일투족을 언론이 주목하던 시기니까요. 사실 나는 그때도 별로 인식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같이 변호사 사무실을 했던 친한 사이고 경선에서 좀 도와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 계속 거절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노 후보가 문재인을 내보내자고 하더군요. 어차피 안 될 거라면 이기택, 신상우보다는 새로운 인물을 내보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이) 거절했군요.
  
  “단순히 거절했으면 그렇게 기분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람 설득하러 갔던 캠프 후배가 이렇게 전하더군요. ‘제발 나한테 그런 소리 좀 하지 마라, 난 정치에 관심 없다, 변호사 하게 좀 놔 둬라, 노무현이 대통령 돼도 그 근처에 얼씬도 안할 것이다’라고 했다고 말입니다. 노무현이 대통령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때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던 노무현의 흔들림과 아픔은 옆에서 본 사람으로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돼도 근처에 얼씬도 안 한다더니…

 —그 두 분은 정권 초기 요직에 임명됐죠.(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민정1비서관)
  
  “노 대통령이 그렇게 캠프에서 고생해 놓고도 비캠프 출신들을 중요 자리에 앉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그때 여당 후보였던 만큼 예선(경선)이 본선(대선)만큼 중요했고 그렇게 경선 좀 도와달라고 해도 꿈쩍도 않던 사람들인데 말이죠. 이강철은 지금도 문재인 얘기만 하면 육두문자를 날리곤 합니다. 캠프 출신들이 문재인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다른 사람들은 상상 못할 겁니다.





문재인 출마해 달라고 하는데도 나가지 않아

 
—어려울 때 외면했다면 그럴 만도 하겠군요.
  
  “아닙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나라종금 사건으로 구치소에 100일간 있다가 2003년 4월에 나왔어요. 나와 보니 당이 깨져 열린우리당이 생기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는 배신자라며 인기가 바닥인 상황이었죠. 2004년 4월이 17대 총선이니까 당이 총선준비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이 상태로는 지지를 얻기 어려운 상황인 겁니다. 청와대에 들어가서 대통령한테 얘길 했어요. 청와대나 정부에서 인지도와 인기 있는 사람들을 총선에 내보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1년 가까이 벼슬살이 했으면 은혜도 입었고 이제 보은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 이창동 문광부장관, 강금실 법무부장관 모두 노무현의 출마 요구 거절(이권만 탐하고 어려움은 나누지 않으려는 친노의 드러움이 나타나는 대목-옮긴이 주)
  
  —그 대상에 문재인 민정수석이 있었나요.
  
  “문재인 민정수석, 정찬용 인사수석, 이창동 문광부장관, 강금실 법무부장관 네 명은 꼭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이 살아야 대통령도 살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때 내가 당에서 맡았던 직책이 ‘정무조정위원장’이었어요. 관료들 등 떠밀어서 출마하게 하는 역할이라 관료들은 내 전화 피하면서 ‘저승사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걸 다들 아니까 그런 자리에 앉힌 거죠. 근데 4명 출마를 요청하고 며칠 후에 대통령 전화가 온 겁니다. 내가 말했던 넷 다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요. 대통령이 임명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부탁하는데 모른 척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내가 기자들 앞에서 ‘가빈사양처 국난사명상(家貧思良妻 國亂思名相·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아내가 생각나고 나라가 혼란하면 훌륭한 재상을 그리게 된다)’이라며 네 명을 사정없이 비난한 겁니다.”



친노들에 대한 염동연의 인물평

  
 그는 어느 범위까지를 ‘원조 친노’로 볼 것이냐는 질문에 “스스로 양심적으로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희정이, 광재(안희정·이광재)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돌입할 때만 해도 30대 초반의 실무진이었고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는데, 이제 광역단체장도 되고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될 만큼 성장한 것을 보니 역시 의리 있는 정치인이며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이강철 전 정무특보에 대해서는 “좌충우돌하는 성격 탓에 대통령에게 신뢰를 얻지 못했다”며 “정권창출 공신으로서 국정원에서 일하고 싶다고 그렇게 어필했는데도 대통령은 대구에 출마해라, 싫으면 삼계탕집이나 하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유종필 전 대변인(현 관악구청장)의 경우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모두들 대통령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는데 후보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8월 재·보선에 나가려고 해 대통령에게 실망을 안겼고, 그 후 사이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조경태 의원에 대해서는 “부산대 학생 시절부터 노무현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은 사람으로 진정한 부산 친노는 조경태뿐”이라며 “야당 내부에서 조경태에 대해 탈당할 것이라는 등 음해가 많은데,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다만 현 지도부가 저렇게 엉망인 상태가 계속되면 탈당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문재인 사표내고 네팔 트래킹 떠나

—당시 기자들 앞에서 문재인 수석을 특히 심하게 비판했던데요.
  
  “대통령 어려울 때 대통령 뜻에 좀 따르라고 강조했습니다. 근데 어떤 결과가 나왔습니까. 그때 문재인 수석이 사표를 내길래 대통령은 그래 이제 결심했나 보다, 나를 위해 출마하나 보다 하고 사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건강상 사유 운운하더니 네팔로 트레킹을 간 겁니다. 대통령이 피눈물을 흘리는 시점에 측근이라는 사람이 해외로 트레킹이라니요. 정말 기가 막혀서 입이 안 다물어지더군요. 그런 사람이 친노라고요. 정말 그때 생각만 하면….”




문재인의 노무현 시체팔이

—문재인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입니다.
  
  “《운명》(문재인 대표 자서전)이라는 책 봤죠. 운명이 뭡니까. 노무현 서거가 자기 성공할 운명입니까. 노무현 동정론 업고 정치에 나선 인물이잖아요. 성공할 수 있었던 노무현 정권에 기여는커녕 역행한 인물입니다. 그럼 그대로 조용히 있든가. 당 대표라고 당을 저렇게 사분오열 만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입니다.”



글쎄? 논란이 되겠지만 이 정도면 문재인에게 또 투표를 할, 정치의 사상을 떠나서 인간의 기본도 안되는 문재인에게 몰표주는 호남, 그 호남에서 자기반성을 해야하지 않을까?

호남은 다음 대선에서 문재인이 또 출마한다면, 단체기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호남에게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내미는 것일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