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양들의 침묵'의 국내 영화평을 보면 '일관되게' 공포 스릴러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이 영화는 '프로파일링'의 개념을 일반인에게 최초로 소개한 영화로서 의미가 있죠.



최근에야 주목하기 시작한 한국과는 다르게 미국에서의 프로파일링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194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이 되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이 프로파일링의 기초를 닦은 아주 유명한, FBI 소속의 두 사람이 있고 그 중 한사람은 연쇄살인범을 의미하는 serial killer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죠.



한국의 과학수사를 담당하는 국과수는 세계적으로도 공신력을 인정받지만 한국에서 유능한 프로파일러들이 탄생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이유는 한국에서는 살인사건 건수 자체가 상당히 낮으니까요. 물론, 프로파일링의 적용범위가 '연쇄 강간 등'에도 적용이 된다면, 성범죄가 유독 많은 한국이니까, 좀 다른 이야기겠지만요.



프로파일링 역사 다큐를 시청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일, 무인도에 나를 포함 두사람이 표류하여 아사 직전에 직면했을 때 나는 상대방을 죽여서 인육을 먹으면서 생명을 연장할까? 제가 스스로에게 내린 답은 명쾌했습니다.



"Absolutely No"


굶어 죽었으면 굶어 죽었지 인육을 먹으면서 생명을 연장한다니......



그러다가 '그럼 상대방이 나를 인육대상으로 생각 나를 죽이려 든다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명쾌하더군요.



저는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죽일겁니다. 그리고 '곱게' 화장을 해줄겁니다.




물론, 예외는 있겠죠. 만일 무인도에 나와 애왼동물이 표류한다면, 그 애완동물의 생명연장을 위해 내 시신 쯤은 보시해줄 수 있다. 그리고, 법정 판결에서도 사례가 있지만, 내가 만일, 인육으로 생명연장을 했던 사람을 재판하는 재판장이라면 나는 단호하게 '무죄'를 선고할거고요.




무인도에 표류했을 때 인육으로 생명연장을 하는 여부는 사람의 도덕의 수준의 잣대는 되지 못하겠죠. 인육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사람의 도덕이 그냥 굶어죽는 사람의 도덕보다 더 '낮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인육으로 생명연장을 하는 사람의 도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의 그 것보다 더 높을 수도 있죠. 



내 주장은, 우리가 어떤 평가기준을 너무 절대적으로 두고 상대방을 재단하거나 평가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것을 우리는 그리고 나도 너무 쉽게 하고 이떤 경우는 폭력적이기까지 한다는 것이죠. 뭐, 그렇다고요.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