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트라우마>에서 손석춘은 박헌영 사건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그의 아들 박병삼, 법명 원경 스님의 증언을 녹취하는 형식을 빌렸다. 


예컨대 김일성의 대표적 항일투쟁 업적으로 뽑히는 보천보 전투에 대한 증언이다. 원경은 김일성의 다른 독립운동
은 인정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만큼은 김일성의 업적이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압록강변의 인구 1천 300명 작은 마을에 보천보라는 둑이 있었는데, 주민의 생계가 걸린 이 물을 일본관헌이 자꾸 빼갔다. 그래서 동리 사람들이 김창희라는 인물이 이끄는 무장부대를 돈을 주고 사서 지서를 습격했다는 것이다. 김창희는 홍범도, 김좌진과 함께 무장투쟁을 했던 인물로, 당시 김일성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전투 자체는 순경 셋이 죽은 작은 사건이었는데 당시 신문에 김일성부대의 활약으로 보도되면서 항일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떠올랐고, 나중에 북한의 김일성이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도용했다는 것이다.

원경은 이 주장의 근거로 마을 사람들을 대표해 김창희 부대를 불렀다가 체포된 박금철과 박달이 해방 후 북한의 김일성이 보천보의 김일성과 다르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 했다는 것을 든다. 또한 자신이 <이정 박헌영 전집> 편찬을 위해 여러 학자들과 함께 모스크바에 갔을 때 해방 후 북한을 이끌었던 소련군정 고위층과 북한 출신들을 만나서 들은 여러 이야기들도 제시한다. 이현상이 북한에 올라갔다가 이 문제로 북로당 간부들과 크게 다투고 강등되어 빨치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현상이 ‘가짜 김일성론’ 폈다”

여기서 원경 스님은 부친의 호 ‘이정(而丁)’이 ‘써레와 망치’ 모양으로서 농민과 노동자를 뜻하는 동시에 스스로 ‘이 놈’이라고 호칭하던 것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내용은 일제강점기 말 경성콤그룹 시절 이래 부친의 동지이자 1968년까지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하다 홀연히 사라진 한산(寒山) 스님에게서 들은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한산 스님이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자료를 찾아 묶어 놓으라며 해 준 얘기들 중엔 아직도 실증하지 못한 것들이 많아요.”

원경 스님이 “아직 실증되지 않았으나 사실임이 분명하다”며 소개하는 얘기 몇 토막.

“이현상이 군사훈련을 위해 1947년 소련으로 떠나기 전 평양의 회식 자리에서 ‘가짜 김일성’론을 폈다는 거예요. 그의 항일무장투쟁 전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고 최소한 보천보사건(1937년)의 김일성만은 당시 북의 김일성이 아니라는 얘기였어요. 선친이 나서서 무마하고 함구령을 내린 뒤 이현상을 지리산으로 들여보냈다더군요.”

“꼭 찾아야 할 자료가 1945년과 47년 두 차례 선친이 스탈린에게 직접 보냈다는 ‘정책입안보고서’입니다. 패전국 일본을 미국 소련이 ‘독일 방식’으로 분할하지 않으면 결국 문제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지요. 동북아 정세를 보는 선친의 시각이 담긴 주요 문건입니다.”


---------------------------------------------------------------
다른 내용을 넣어도 되는데

김일성이 독립운동이라도 했으니 정통성이라도 있는양 알리고 싶어서 일까요??

우리가 모르는 독립운동사를 넣어도 될텐데



진짜 김일성인지  김일성 이름을 도용한 가짜인지 이런 논란은 엄청 많았던걸로 보이는데

역사문제연구소를 만든 박헌영 아들도 부정하는 내용인데

왜 이게 정설인양 교과서에 넣었는지 이해가 안간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