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을 읽어보면 들을만한 이야기가 꽤 있습니다.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78820


과학·정치·경제가 교회의 역할 대신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원인과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한국교회가 위기가 아니라, 문명에 위기가 온 것이지요.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와서, 생명을 물질적으로, 과학으로, 인공적으로 만들고, 교회의 역할을 과학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면 듣지 않지만, 과학적이라고 하면 다 들어요. ‘이거 먹으면 암 걸린다’고 하면 시장에서 그 물건이 싹 없어집니다(웃음).

하지만 이게 얼마나 틀린 것입니까? 먹으면 암 걸린다고 해서 사카린이 자취를 감췄는데, 이제 괜찮다고 하질 않습니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도 먹는 인간들이, 과학자들이 먹지 말라면 안 먹습니다. 이렇게 과학이 세졌어요.

다음은 정치와 경제입니다. 의(義)를 말하는 정치, 풍요를 말하는 경제가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마저 정치적 의로움과 이념에 말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사랑 없는 정의’가 기독교의 이름으로 판을 칩니다. 사랑을 잃고 소금 맛을 잃은 크리스천들이 이 세상에서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으로 행할 때, 그건 거짓이고 반(反)크리스천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굉장한 세력을 갖고 있고, 대중들도 그들을 따릅니다.

‘사랑 없는 정의’는 ‘정의 없는 사랑’보다 더 나쁩니다. 그 뜻을 아시겠지요? ‘아이고 내 새끼’ 하면서 감싸는 것도 잘못이지만, 애를 바로잡는다며 매질로 죽이는 부모도 곤란합니다. ‘정의 없는 사랑’도 ‘사랑 없는 정의’도 기독교가 아닙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큰 위험은 이 두 가지입니다. 서로 끌어안고 내 편만을 위한 사랑은 있으되 정의는 없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내 편은 정의이므로 다른 편에게는 모질게 비판만 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사랑과 정의가 합쳐져야 합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지금 십자가 없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정의와 사랑이 함께 있어야지, 바리새인처럼 율법만 지키고 사람들의 편을 가르는 이것이, 저는 교회의 큰 위기라고 봅니다. 과학과 정치·경제가 신의 입장을 찬탈해 버린 이 시대는 기독교가 기독교로 살아남기가 참 힘든데, 기독교가 과학이 되고 정치가 되고 경제가 되려 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자멸이지요.

기독교가 복지사회를 만들어 가난한 사람, 고아와 과부를 끌어안는 것은 분명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 없이 사회정의로만 저들을 끌어안는 쪽으로 간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불의한 자들을 만들어 가차 없이 인정사정없이 내몰게 됩니다. 그 자체가 사랑이 없기 때문에 덮어줄 줄 모르는 것입니다.

노아가 술에 취했을 때 막 까발린 자식과 보지 않고 덮어준 자식이 있었지요. 지금 사회정의라는 건 모두 까발리는 정의입니다. 원죄를 지은 인간들, 죄 짓고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며 죽어가는 이들에게, 보지 않고 이불을 덮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죄는 덮으려 하지만, 남의 죄는 덮어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게 정의인 줄 알면 큰일이지요. 사랑 없는 그런 정의라면, 벌써 저 로마 시대와 사회주의 등에서부터 많이 겪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비로소 정의와 사랑이 함께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있는 모습이 실현됐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종교는 어머니적인 것만 강조하거나, 율법처럼 아버지적인 것만 강조하려 합니다. 헤겔은 유대교의 가장 부족한 점으로 사랑과 관용을 지적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 오신 분이시지요. 그것을 빼면 그냥 유대교일 뿐이고, 구약만 읽는 종교가 되고 맙니다. 가톨릭이든 개혁주의이든, 적어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 이전의 종교와는 달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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