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섣부른 예상일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친노가 문재인의 사퇴를 준비하고 있다고 봅니다.

문재인이 "혁신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사퇴하겠다"고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저 발언에서 '혁신안'에 방점을 찍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발언의 진짜 포인트는 '사퇴'에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쟁점은 혁신안이 아닙니다. 김상곤과 그 아해들이 몇 달 동안 나름 머리를 싸매고 뭔가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혁신안의 내용을 갖고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있나요? 거의 없습니다. 그냥 혁신안은 안되고, 문재인의 사퇴가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어야 하는지를 놓고 삿대질을 하고 있습니다.

혁신안이 중앙위원회에서 통과된다 치죠. 새정련이 안정될 수 있을까요? 어림도 없는 얘깁니다. 아마 비노들은 문재인을 비토할 더욱 확실한 명분이 생겼다고 여길 겁니다. 비노의 목소리만 커지는 겁니다. 아마 문재인 본인이나 친노들도 혁신안 통과로 새정련 내홍이 가라앉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혁신안이 통과되고 새정련 비노들의 목소리까지 잠잠해진다고 칩시다. 내년 총선은 어떻게 될까요? 전국적으로 문재인에 대한 부정 평가가 70%에 육박하더군요. 이건 영남 호남 가리지 않는 현상입니다. 심지어 호남에서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보다 무려 13%포인트 낮은 지지율을 보이는 어마어마한 실적을 내놓았습니다.

http://www.ajunews.com/view/20150909145645456

이렇게 가면 새정련은 내년 총선에서 괴멸합니다. 이미 호남의 문제가 아니에요. 수도권 전멸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새정련 의원들이 개헌선 방어를 고민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아마 내심은 그 정도가 아닐 겁니다.

친노가 무리수를 거듭하면서 문재인을 대표로 올려세운 것은 결국 내년 총선 공천을 노린 것입니다. 친노 입장에선 사실 총선 패배 따위는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설혹 20석쯤 잃더라도 친노가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할 수 있으면 (새정련이 아닌 친노 입장에서는) 손해가 아니라고 본 거죠.

130석 제1야당에서 50개 의석 갖는 것보다는 100석 제1야당에서 80석 챙기는 게 계파 입장에서는 훨씬 남는 장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일단 새정련에서 친노에 저항하는 집단을 뿌리뽑으면 앞으로 이 정당은 친노가 대대로 가만히 앉아서 호남 유권자 등골에 빨대를 꽂고 피를 빠는 문전옥답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구상이 현실화할 수 있는 임계점이 있다는 점입니다. 가령 50석 내외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하면 문전옥답이고 빨대고 나발이고 다 소용없는 겁니다. 새정련은 무너집니다. 남는 것은 선거 참패와 제1야당 붕괴의 책임뿐입니다. 친노로서는 2007년 대선패배 이후 10여년 동안 잘 넘겨왔던 폐족의 위험이 코앞에 닥치게 됩니다.

박지원이 '문재인의 당을 위한 충정' 어쩌구 하다가 하룻사이에 말을 바꾸고 친노의 최대 주주 정세균이 느닷없이 문재인에게 포문을 돌리고, 부산의 최인호라는 친노가 이해찬에게까지 백의종군을 요구하는 일이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혁신안이라는 마취제로 친노에 대한 거부를 잠재우려고 했는데 혁신안은 오히려 시한폭탄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문재인은 2선 후퇴시키고(당권-대권후보 분리론으로 문재인을 설득했거나 하겠지요), 당권은 박지원에게 넘겨 신탁통치의 역할을 맡길 겁니다. 그 미끼는 결국 공천권 사이좋게 나눠먹기일 겁니다. 호남을 박지원에게 넘기는 대신 수도권에서 중진 물갈이로 명분을 세우고 친노 뉴페이스의 자리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되면 새정련 내부의 분란 요소는 확실히 줄어듭니다. 친노의 이런 선택이 노리는 타겟은 첫째 안철수, 둘째 천정배입니다. 안철수와 천정배를 소외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죠. 선거 패배의 위험도 줄이고 설혹 선거에서 진다 해도 책임 논란의 부담은 대폭 줄일 수 있습니다.

친노로서야 편한 길 대신 좀더 힘들게 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다지 나쁜 결과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된다 해도 친노로서는 결국 자신들이 더 먹으려 했던 것을 못 먹게 된 것일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것을 뺏기는 건 아니거든요. 게다가 혁신과통합이라는, 전세계 정치 역사상 가장 뻔뻔하고 파렴치한 블러핑으로 손학규를 물먹이기 전에 친노들이 가진 정치적 자산이나 위상이 제로에 수렴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죠.

이래서 신당 추진세력들에게 제가 "모든 역량을 친노 공격에 집중하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얘기한 겁니다. 내용이나 표현 모두 애매하게 새정련으로는 안된다는 얘기나 되풀이하면 이런 결과가 됩니다. 문재인이나 새정련이 문제가 아니라, 친노 그리고 노무현을 직접 타격하지 않으면 이렇게 됩니다. 친노는 언제든지 말을 갈아타고, 언제든지 다른 카드를 내놓을 수 있거든요.

암튼 좀더 지켜봅시다. 앞으로 대충 어떤 그림이 나올지, 슬픈 심정으로 예상이 됩니다. 하지만 제가 무슨 점장이나 도사도 아니고 퇴근 앞두고 괜히 심심해서 끄적끄적 해놓은 객적은 농담 정도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저의 이 예상은 객관적인 정치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일 수 있다는 점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