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평등시민연대 성명서>

디씨인사이드 야구 갤러리 회원들의 유쾌한 반란

디씨인사이드는 일베(일간베스트) 못지않게 홍어, 통구이 등 극한의 지역 혐오와 적대감을 담은 포스팅이 난무하는 것으로 유명한 커뮤니티 사이트입니다. 특히 지역 간 대결구도를 흥행 요소로 삼는 프로야구의 특성상 야구 관련 갤러리 이용자들의 상대 팀 근거 지역에 대한 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하는 수위 이상이었습니다.

삼성라이온즈 팬들은 기아타이거즈 팬들을 홍어라고 부르고, 그에 반발한 기아 타이거즈 팬들이 삼성 라이온즈 팬들을 통구이라고 부르는 것을 당연시하는 문화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전통처럼, 당연한 상식처럼 통용되었습니다. 광주항쟁의 희생자들과 호남 출신들을 악취로 유명한 생선 발효 음식인 홍어로, 대구 지하철 화재로 사망한 희생자들과 대구 시민을 통째로 불에 굽는 바비큐요리에 빗대어 통구이로 불렀던 것입니다. 이런 표현들은 같은 대한민국 국민을 극렬한 적대감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건전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악질적인 용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디씨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서 홍어와 통구이라는 비하어가 모두 사라지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것도 법적 처벌이나 협박, 강요가 아니라 어느 삼성라이온즈 팬의 용기 있는 제안과 설득에 삼성과 기아 팬들이 적극적으로 화답한 결과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상식으로는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고 상상조차 어려웠던 일이 현실화된 것입니다.

이제 디씨인사이드의 삼성 팬들과 기아 팬들은 서로를 수박(기아타이거즈 팬들을 무등산수박에 비유한 것)과 능금(삼성라이온즈 팬들을 대구 사과에 비유한 것)이라고 부릅니다. 능금과 수박에는 그 어떤 혐오나 적대감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의 다름과 장점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감히 반란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은 일대 쾌거입니다. 일베 사이트에서 호남인들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온갖 혐오와 적대감을 조장하는 표현과 비하어들이 난무해도 집권여당의 유력 정치인들은 순수 보수 네티즌들이 의견을 피력하는 공간이라며 변명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제1야당과 유명 지식인들은 그런 현상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현실을 외면하는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힘있는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포기했던 일을 해낸 쾌거를 두고 그 네티즌에게 노벨평화상을 줘야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이 나오고 있습니다. 농담이지만 그 농담에 담긴 뜻은 결코 우습지 않습니다. 노벨평화상을 걸어야 할 만큼 이 나라 지역차별과 인종주의적 혐오가 광범위하고 심각하다는 것을 평범한 네티즌들과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잘 알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거나 발언권이 있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기적 앞에서 참담한 마음으로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홍어와 통구이를 수박과 능금으로 바꿔 부른다 해서, 우리나라의 지역차별 구조와 불평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인들이 재일동포들을 조센징이 아니라 한국인으로 바꿔 부른다고 해서 재일동포가 겪는 차별과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디씨인사이드 야구갤러리의 조용하고도 유쾌한 반란은 우리 사회의 지역차별과 불평등이 결코 고질적인 것은 아니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구조를 바꾸는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평가합니다. 디씨인사이드에서 가능했던 일이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시 한번 디씨인사이드 야구갤리리 회원들의 지혜로운 제안과 용기 있는 실천에 경의와 박수를 보냅니다.

2015년 9월 8일

지역평등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