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누님

제가 어찌 누님의 은공을 잊을 수 있겠어요?

제가 아무 인연도 없던 이 집에 들어와 원래 주인집 자식들 모조리 쫓아내고 집을 제 앞으로 등기한 게 다 누구 덕이겠어요? 

다 이대 나오신 우리 누님 그리고 비주얼은 좀 그래도 짱짱한 서울대 나오신 우리 성님 덕분 아니겄어요? 두 분이 돌아가신 우리 큰형님 모시고 아랫것들 잘 단속해서 우리 모두가 이렇게 큰 집 차지하고 허리띠 풀어놓고 잔치하는 것 아니냐구요.

이 집 원래 주인 자식들 가운데 시끄러운 것들은 모조리 쫓아내고 그나마 눈치 빠르고 말 잘듣는 것들만 남겨서 우리들 머슴 삼고 사는 맛이 정말 쏠쏠해요. 이것들이 우리한테 불만 가진다 싶으면 세대교체라는 타이틀로 좀더 참신하고 눈치 빠르고 말 잘듣는 것들로 갈아치우는 이 비법도 우리 누님과 성님이 코치해주신 것 아닌가요?

그러니 우리 누님 걱정 말고 잘 댕겨오셔요.

누님 덕분에 돌아가신 우리 큰형님 똘마니들끼리 힘을 합쳐서 여의도 큰 집 들어가 눈먼 돈 챙기는 재미, 참 제가 전에는 미처 상상을 못했어요.

아무튼 제가 내년 내후년까지는 잘 버텨줘야 우리 큰형님 똘마니들이 여의도 큰 집에도 가고 그래야 그 아래아래 똘마니들도 하다못해 매달 일이백씩이라도 받아 입에 풀칠할 거 아닌가요? 

전에 집주인 새끼들 중에 난닝구 걸치고 더러운 홍어 냄시 나는 것들이 우리더러 벼룩이 간을 빼먹고 문둥이 콧구녕에 마늘을 빼먹는다고 지랄지랄 하지만 원래 세상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민주주의고 다수결이고 필요없어요. 우리가 이 냄새나는 집구석에서는 좀 쪽수가 딸리지만 좀더 넓은 바깥 세상에서는 몇십년째 주인이자 대세 아니냐구요. 그러니 우리는 좁은 집구석 의견이 아니라 넓은 바깥 세상 얘기대로 집안 살림 운영하자고 해서 이렇게 잘 버티는 중이잖아요?

한 가지 더. 저것들한테는 벼룩의 간이고, 문둥이 콧구녕 마늘이지만 이것도 많이 모으면 꽤 큰 재산이 된다는 것. 이걸 요즘 천조국에서는 롱테일이라고 부른다면서요? 매우 참신한 21세기형 기법이라고 들었어요. 우린 원래 우리 고향에서야 어차피 찬밥이지만 이 냄새나는 동네에서도 잘만 처신하면 이런 노다지가 생긴다는 것, 이거야말로 정말 창조경제의 정신이라고 봐야죠. 앙그래요?

누님, 잘 댕겨오세요. 건강 챙시기고 옥체강녕 만수무강을 항상 기원할게요.

누님 걱정 붙들어매세요. 나오시면 다시 한번 여의도 큰 집에 들어가서 제2, 제3의 전성기를 누리실 수 있도록 다 준비했어요. 비싼 돈 들여서 순결의 상징을 누님 가시는 길에 듬뿍 뿌려드린 게 다 나름의 계산에서 나온 거랍니다.

절대 그곳에서 2년 다 채우시도록 하지 않을게요. 저 푸른집과 베팅할 것이 한두 갠가요?

저는 저를 잘 알아요. 저는 사실 욕심 없어요. 어차피 우리 목표는 푸른집이 아니에요. 솔까말 푸른집 들어가봐야 골치만 아파요. 숟가락 들고 달려드는 것들도 많고 지키기도 어렵고... 차라리 이 멍청한 것들 동네에 떡 자리잡고 대대손손 해먹는 게 훨씬 실속이 있죠. 이것들 “니들 홍어 냄시나니까 치아라” 한마디 하면 전부 깨갱이에요.

이런 위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실행하신 우리 누님 그리고 우리 성님

잘 댕겨오세요. 그 안에서도 별로 심심하지 않으실 거에요.

밤잠 없는 우리 아그들 데불고 시시때때로 찾아뵐게요. 저 믿으시죠?

우리 누님, 사랑한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