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3. 독자들에게

 

1. (간디 선생이) 독자들에게

 

나는 내가 쓴 글들을 열심히 읽는 독자들과, 내가 일치시키는 것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쓴 글들(전에 쓴 글과 나중에 쓴 글)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흥미를 느끼는 다른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려 한다.

 

진리를 찾는 길에서 나는 많은 견해들을 버리고 또 많은 새로운 것들을 배웠다. 나이는 많지만, 나는 내가 아직도 내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나의 성장이 몸은 늙어가도 정지되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진리이신 나의 신의 부름에 그때그때 순종할 준비가 된 마음의 자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나의 두 글들 이에서 불일치를 발견했을 때, 그가 아직도 내가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는 같은 주제 안에서 두 견해 중 나중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M.K. 간디

Harijan(역자 주: 간디가 편집한 주간지), 1933429, p2에서 인용

 

2. 번역자(황인채)의 서문

 

나는 지난 2년 반 동안 영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되도록 모든 정보와 지식을 영어를 통해서 얻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현재 영어 실력으로 그렇게 하는 일은 매우 힘이 드는 일이었지만 인터넷어서 영문 사이트와 영어 사전을 이용하여 힘겨운 일을 계속하였다.

 

내가 읽는 문서나 시청하는 동영상 중 가장 많은 것은 요가와 관련이 되는 것들이었다. 요가 수드라, 우파니 사드, 바가바드기타 등의 힌두교 경전과 라마나 마하르쉬에 관한 책을 읽었다. 유튜브에서 만트라(mantra)를 찾아서 따라서 반복하여 영창하기도 하였다.

 

나는 영어 공부만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서 해탈을 해보겠다고 제법 열심히 수행도 하고 있었는데 주요한 수단은 인도의 힌두교 성자 마하르쉬 님이 가르쳤던 자기 탐구법이었다. 자기 탐구법은 우리나라 스님들이 사용하는 화두선과 매우 비슷한 것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부처님처럼 깨닫는 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힘겨워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도 영어 실력도 또한 별로 늘지 않았다. 2년 반이 지났지만 내 영어 실력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60대 중반인 내 나이에 언제 제대로 된 영어 실력을 갖추어서 써먹을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본 다른 수행 방법이 행위요가(Karma yoga)라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화두만 붙들고 매달릴 것이 아니라 사회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람을 찾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어공부랍시고 무턱대고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읽고 있거나 이미 읽은 문서를 번역해서 인터넷에 올려 보자는 생각도 하였다. 비록 서툴고 오역투성이 번역이 될 것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내가 번역한 글을 읽고 도움을 받는다면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았다.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에서는 행위요가에 대하여 꽤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바가바드기타 첫 시작부터 전쟁터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으며, 주인공 아르주나는 사촌형제들과 목숨을 건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이다. 바가바드기타 3장에 행위 요가(Karma yoga)라는 별도의 장이 있기도 하다.

 

행위요가란 행동을 하는 것으로 깨달음과 해탈을 얻으려는 수행방법이다. 행동을 하는 것은 업을 쌓은 일로 행동을 하는 자는 업보를 받게 마련이다. 그래서 스님들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행위는 하지 않고 선정(禪定)을 하는 것으로 새로운 업을 쌓지 않고, 업장을 소멸하려 하지 않던가? 그런데 행위를 수행의 수단으로 삼다니?

 

그런데 바가바드기타에서 창조주의 화신인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전쟁터에서 싸우는 행위를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크리슈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서, 최고의 자아(自我)를 생각하면서, 바라는 것도 없고, 내 것이라는 생각도 없이, 탐심을 버리고 싸워라.” -바가바트기타 330절에서 인용

 

반면에 마하르쉬와 같은 시대의 성자였던 인도의 독립 운동가 마하마트 간디는 국가를 위하여 비폭력주의를 지키며 사심이 없는 봉사를 하는 것으로 행위요가를 실천하라고 가르쳤다.

 

나는 여기에서 행위요가에 대한 어려운 논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하여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단지 내가 간디의 마을 스와라지라는 책을 번역하게 된 동기가 나의 행위요가 수행과 관련이 있다는 것만 밝히는 것으로 끝내겠다.

 

마을 스와라지를 번역하면서 되도록 자연스럽고 쉬운 문체로 번역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영어 원문을 찾아가면서 영어공부를 겸해서 읽으려는 자들을 위해서 다소 부자연스러운 문체가 되더라도 원문과 대조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하였다.

 

내가 요가관련 글을 읽으면서 마주친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산스크리트어나 인도어를 영어 철자로 기록한 상당히 많은 단어들이었다. 영어 단어에 나오지 않는 이 단어들을 구글(google) 검색엔진에서 쳐보면 그 단어를 설명한 문서나 사용한 문서들을 찾을 수 있어서 대개는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마을 스와라지를 번역하면서 기록한 번역자 주는 이런 식으로 찾아서 단 것이었다.

 

마을 스와라지라는 책은 간디가 쓴 책이 아니다. 브야스가 주로 간디가 발간하였던 영인디아(Young India)라는 주간신문과 하리잔(Harijan)이라는 주간신문 이곳저곳에서 인용하여 편집한 책이다. 마을 스와라지는 구글에서 village swaraj라는 검색어로 찾아보면 pdf 문서로 얻을 수 있으며, 영인디아도 같은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다.

 

아무쪼록 이 연습 삼아 시도한 서툰 번역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