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스와라지 제2회

저자 : M. K. 간디

편집 : H. M. 브야스

역자 : 황  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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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2

 역사상, 이전에는 일류 통합에 대한 의견이 오늘날처럼 정치가와 학자와 문인, 그리고 평범한 사람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결코 끌지 못했다. 성 아우로빈도(역자 주: 인도 독립 운동가이며 요가 스승)의 말씀 중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오늘날 인류통합에 대한 발상은 우리의 의식 속에 어느 정도 그것이 나아갈 길을 만들고 있다. 시대의 정신과 물질적 환경이 그것을 준비하고 거의 강요하였는데, 특별히 과학적 발견들이 지구를 너무 작아지게 만들어서, 지상 위의 가장 넓은 왕국들도 한 나라의 주들처럼 작게 느껴지게 되었다.”

 아놀드 토인비가 다음과 같이 옳게 평가하였다.

 “시적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기술에서 서양의 능력은, ‘거리(距離)를 폐기’ 하였고, 동시에 역사상 최초로 인간이라는 종(種)을 폐기할 능력을 가진 무기를 인간의 손에 가지게 하였다. 인류통합이 그토록 긴급한 이유는 흥미롭기도 하고 또한 시들하기도 하다. 그것을 풍자시에서는 ‘하나의 세상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뚝 잘나서 표현하였다. 원자력의 시대에, 우리가 전쟁을 없애버리지 않는다면 전쟁이 우리를 없애버릴 것이라는 것이, 오늘날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정치의식이 있는 모든 남녀에게 명백한 일이다.”

 피티림 소로킨(역자 주: 러시아 출신의 재미 사회학자)은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표현으로 현대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전쟁의 상처로 피를 흘리고, 원자 무기라는 자신을 파멸시킬 괴물을 만들어 그 파괴력에 놀란 채로, 인류는 그 죽음의 함정 밖으로 빠져나올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다. 인류는 개죽음보다 삶을 갈망하고 있다. 우리는 전쟁보다 평화를 원한다. 미움이 아니라 사랑에 굶주렸다. 무질서를 대체할 질서를 바란다. 더 좋은 인류, 더 훌륭한 지혜, 그리고 현대의 기계 문명이 만들어낸 피가 묻은 누더기 옷보다는 더 현명한 문명이 만든 훌륭한 겉옷을 꿈꾼다. 인류는 어리석게도 스스로 만든 함정에 빠졌고, 극복할 수 없는 벅찬 문제에 봉착하여, ‘죽느냐, 사느냐’, 생존과 불멸을 위한 영원한 질문을, 이전보다 필사적으로 탐구해야하는 어려움에 빠졌다.”

 살상 무기들에 의해서 지금 도전받고 있는 인류가 앞으로 바른 길을 찾아서 행동하기에 실패한다면, 결말은 완전한 파멸뿐이다. 인간의 구원이 세계정부 설립에 달려 있다. 순수한 세계정부의 설립은 필수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나라들의 권력을 폐기시켜야 한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 쉽게 성취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세계정부를 세울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그런데도 간디 선생처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정치가가 없지는 않겠지만 매우 드물 것이다.

 “나는 전 세계의 독립성보다는 상호의존성을 우리가 존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도 않고 또 대단하지도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기희생 위에서 이어지는 논리적 결론은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하고, 지역을 위해서 공동체가 희생하고, 주를 위해서 지역이 희생하며, 국가를 위해서 주가 희생하고,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국가가 희생하는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이 핵무기 시대에, 정치가들에게 필요한 정신은 아쇼카(역자 주: Ashoka, 인도의 마가다국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왕)의 정신(곧 비폭력 정신)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인류통합이 없는 잘해 나갈 수 없다. 그러나 강압적인 수단으로 이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오늘날에는 강요가 아닌 대화가 인류의 통합을 위하여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 핵무기 시대에 군사력의 사용은 인류에게 통합이 아니라 자기파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시대에, 공포심이 (세계인에게 인류통합 정책을 따를 것을 명하고), 오직 양심이, 아쇼카 왕이 그의 시대에 단지 양심에 따를 것을 고무하였던 정책과 같은 정책을 (이 시대의 인류에게) 따르라고 명령한다.”

 모든 시대에 인류에게 매우 가까웠던 폭력이라는 수단이 이 시대에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 이렇게 명백하다. 마하마트 간디는 성 바라탄 쿠마라파가 쓴 마을이념(Villigism)이라는 책에 써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우리 세대에서 지난 두 전쟁들은 이와 같은 경제 질서들이 결렬하게 파탄이 나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전쟁들은 전쟁의 파산을 보여주는 것인 듯이 보였다.”

 우리가 그것을 지금부터 비폭력 시대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세상은 세속의 모든 현명한 정치가들로부터 지금까지 무시를 당한 듯이 보이는 비폭력이라는 이 무한한 보고를 활용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가지고 있지 않다. 간디 선생은, ‘인도는 성취해야 하는 명확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인도는 깨어나고 있고, (인도의) 자유는 신음하고 있는 세상에 평화와 친선의 말을 전달할 것이다.”

 다른 때, 또 그는 말했다.
 “나는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세계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병을 앓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인류는 굶주림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고 있고, 나는 자부하기를, 오랜 문명을 가지고 있는 땅 인도가 인류에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보여 줄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아놀드 토인비도 말한다.
 “(인류의 통합에 기여하는) 인도의 특별한 공헌은 그 나라의 크고 넓은 마음일 것이고… 이것을 미래의 세대가 인정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통합된 인류는 인도가 그들에게 특유한 선물을 하였다고 회상할 것이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을 군사력에 의존하는 한, 세계정부를 통하여 세계평화를 지키는 일은 공허한 꿈이 될 것이다. 항구적인 평화를 원한다면 군대를 사용하는 일을 완전히 배제하여야 한다. 단지 세계정부만이 도덕적 억지력을 후원하여 그것으로 지속적인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 모든 구성 집단들이 크거나 작거나 평등과 형제애를 토대로 하여 구성된 세계 연방정부는 안전한 세계 평화를 향하여 오랜 길을 함께 갈 것이다.

 그러나 세계정부가 손쉽게 평화를 보장할 수는 없다. 전쟁의 뿌리가 국가들 사이에 분쟁을 일으키는 사회경제의 틀 밑에서 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뿌리부터 변화되지 않으면 세계 평화에 대한 희망은 망상일 뿐이다. 그래서 세계 기구는 참다운 민주정치가 작동되도록 보장해 주어야 하고, 모든 형태의 착취를 제거해야 한다.

 참다운 민주정치가 작동되도록 돕는 것은 단지 작은 공동체들이고, 그것들이 개인들이 완전한 성장을 돕는 훈련장를 제공한다. 공동체의 크기가 더 커질수록 그만큼 개인들의 참정권과 자유의 범위는 좁아진다. 더 큰 조직체들일수록 개인들을 억압하는 경향이 있고, 더 적은 집단들일수록 화합하고 조직이 잘될 것이기 때문이다. 큰 조직체는 결국 침체하고 부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속적인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서 현재의 정치 경제적 구조를 작게 분산시킨 단체들로 나누어서 새롭게 거듭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평화라는 바로 그 목표를 성취하는 일은 좌절될 것이고, 세계정부는 통치과정에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서 위기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은 정치와 경제 조직체를 분권화시키는 것이다.

 인류의 경험은, 작고 소박한 구성체 안에서 함께 노력할수록, 집단의 삶이 더욱 쾌적하고, 다양하고, 소출도 많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단지 작은 공동체, 이것이 그 구성원이 가장 열심히 살아가는 삶을 이끈다.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큰 공동체의 삶은 아마 그 안에서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필요한 생산물도 부족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인도의 마을 자치 국가(Village Republic)들은 도처에서 풍요롭고 국방이 튼튼한 삶의 본보기들을 제공한다.

  판딧 자와하랄 네루(역자 주: 독립한 인도의 초대 수상)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마을자치 제도는 아리안 국가의 기초였다. 그 제도에 힘을 부여하는 원천은 바로 이것이었다. 국왕의 허가가 없이는 어떠한 군대도 마을에 들어갈 수 없도록 정해져 있었고, 그래서 그들(마을 통치자들)의 자유에 대하여 시기하는 것은 마을의회들이었다."

 니티사라(고대인도 금언 모음집)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민들이 관리들에 대해서 불평을 할 때 국왕은 ‘관리들의 편이 아니라 신민들의 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신민들이 관리를 파면해야 한다고 건의하면,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무능한 관리가 술을 마시고 취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오늘날 이 나라 안에 있는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잘못 다스리는 공무원 집단에게 특별히 들려주고 싶은 금언이다!

 1830년 말에 인도 총통 찰스 멧칼페는 마을 공동체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마을 공동체는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생산하여 해결하고, 외국과 관계에서는 독립한 작은 공화국들이다. 그 공동체들은 어떤 것도 견디지 못하는 곳에서도 견뎌내는 듯하다. 이 마을 공동체의 연방체는 그것 안에 각기 하나씩 작게 나누어진 국가들을 형성하여, 주민들의 행복에 높은 차원의 기여를 하고 있고, 또 주민들이 독립과 자유를 크게 누리며 즐기는 사는 것도 그 덕분이다.”

 이 글은 오래된 마을 제도에 대해서 대단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우리의 관심사인 마을에 대하여 거의 목가적인 풍경으로 미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마을들이 가지고 있는 큰 장점은 대단히 큰 몫의 자주와 독립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형태의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마을 공화국을 새롭게 하고 다시 세우는 일은 아직 우리가 완성하여야 하는 일로 남아있다.

 간디 선생이 착상한 마을 스와라지의 그림은 옛날의 마을 판차야트(마을 자치조직)들이 부활한 것이 아니고 현대 세계의 형편에 맞게 독립된 마을 단위들의 자치를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었다. 마을 스와라지는 정치학, 경제학 그리고 사회학 분야 안에서 비폭력주의를 현실에 맞게 형상화한 것이다.

 간디 선생에 따르자면, 이상적 사회는 국가가 없는 민주정치이고, 사회적 삶이 너무 완벽해서 스스로 조절되는 계몽된 무정부주의 국가이다.

 “그 이상적 국가에서는, 국가가 없기 때문에 정치권력도 없다. 그러나 이상적 국가는 넓이가 없어서 아직까지도 결코 종이에 그릴 수 없는 유크리드의 선(역자 주: 평행선 제5공준?)과도 같다. 그것이 단지 우리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선일뿐이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는 기하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이상국가 이념도 온전히 그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간디 선생은 이상화된 공동체를 완벽하게 실현할 수는 없다고 믿었다. 정치의 분야에서, 그는 우리에게 국가가 없는 민주 정치의 이상과 가까운 마을 스와라지를 제시하였다. 그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라고 생각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에 따르자면 최종 단계에서 국가는 쇠퇴하여 없어진다. 그러나 전체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국가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 어느 세월에 국가가 쇠퇴하여 없어질 것인지 믿기가 어렵다.

 마하마트 간디는 실용주의적 이상주의자였기 때문에 국가가 없는 민주정치가 현실에서 쓸모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국가가 쇠퇴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분산시키는 마을 스와라지를 제안하였다. 이렇게, 마을 스와라지는 국가가 사라지는 멀고 먼 목표가 아니라 지금 실현될 수 있는 차원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현대 민주정치는 선거가 중심이 되고, 정당이 주도하며, 권력획득을 목표로 하고,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었으며, 복잡한 짜임새로 되었다. 권력 집중의 결과로 현재의 정치체제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체제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두가 다루기 어렵고, 위쪽이 무거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개인들은 더 이상 투표자하는 자들로서 주권자로 인정을 받고, 주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투표를 하는 것으로 자신을 나타낼 뿐, 그 후부터 다음 투표 때까지 죽어지내야 한다. 이것이, 개인들이 정해진 기간에 단지 한번 행사하는 정치행위일 뿐이다.

 그들은 권력 체제를 집중화하는 방향으로 이끌려가고 있고, 경제 권력을 집중시키는 일에 주요한 도구로 사용되는 일간 신문들이 안내하는 대로 끌려가고 있다. 개인은 정부 정책을 형성하는 일에 거의 목소리를 낼 수 없거나 전혀 낼 수 없다. 복지 국가 안에서 거나 혹은 전체 국가 안에서거나, 그는 영양이 충분하지만 벙어리요, 인간 형상을 한 동물이 된 위치로 떨어진다.

  간디 선생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인도에서 작동을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중앙에 앉아있는 20명에 의해서 작동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아래로부터 작동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마을 스와라지에서, 마을은 가장 온전한 권력을 부여받은 분권화된 작은 정치적 단위이기 때문에, 모든 개인들은 정부 안에서 직접 발언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 개인들은 자신의 정부를 고안하는 자들이다.
  마을 정부는 최소한으로 규정된 자격조건들은 가진 성인인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매년 선출된 다섯 명으로 구성된 판차야트(Panchayat)에 의해서 행사될 것이다. 그것은 모든 행정권과 사법권을 가질 것이다.
 판차야트는 하나로 행사되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역할을 할 것이지만 그 안에서 형벌을 주는 기구는 없을 것이다.

 이런 통치 체제 안에서 행정부에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주관리를 하는 주민들이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을 정부에 맡기는 대신에 높은 정치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선도하는 주민 말이다. 그래서 참다운 민주정치 즉 스와라지가 완전한 자유를 위해서 작동되고, 궁극적으로 권력의 주인이 되는 개인의 성장을 촉진시킨다.

 간디 선생이 착상한 마을 스와라지는 이렇게 진실하고 활발한 민주제도로서, 현재의 정치 제도에서 나타나고 있는 많은 병폐를 치유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분권화된 순수한 민주정치의 형태는 전 인류에게 교훈을 줄 것이다.

 간디 선생에게 권력은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삶의 모든 분야에서 그들의 형편을 더 좋게 하는 수단의 하나였다. 그래서 그는 그의 유명한 유언장에서 말하기를, “인도가 정치적인 독립을 얻을지라도, 규모에서 도시나 시군과 구별되는 70만 마을이 아직도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성취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마을 스와라지의 그림과 프로그램으로 형상화되었는데, 그것을 다른 용어로 말하자면, 완전한 정치권력을 가진, 비폭력적이고, 자족적이며, 경제적인 공동체 단위인 판차야 라지이다. 간디 선생이 착상한 마을 스와라지는 자본이 중심이 되는 서양의 경제체제와는 다르게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경제체제이다. 전자는 살리는 경제체제이고, 후자는 죽이는 경제체제이다.

 간디 선생이 고안한 마을 스와라지 계획에서는, 중요한 업무에 당연히 종사하게 되는 마을 근로자들의 의무를 정해야 했기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을 근로자는 농업과 수공업을 통하여 그들 자신을 부양하고 스스로를 규율하기 위해서 마을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마을 주민에게 위생학과 공중위생에 대하여 교육해야 할 것이다. 질병과 건강장애를 예방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이 타림(Nai Talim 역자 주: 앎과 행위를 일치시키기 위한 간디의 교육 원칙) 방침을 따라 마을 주민에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교육을 개최해야 할 것이다.

 세계평화를 열망하는 세상의 정치가들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지시하는 방식을 시도한다면 반대로 간디 선생은 아래에서 위쪽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독립은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이렇게 모든 마을은 완전한 권력을 가진 하나의 공화국 곧 판차야트가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마을은 스스로 자신을 지탱하고, 온 세계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밖으로부터의 어떤 공격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응전에서 희생할 준비와 훈련이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바로 개인이 최종적인 구성단위이다.”

 간디 선생에게 자주적 통치는, 그것이 외국의 정부거나 국내의 정부거나 정부의 간섭에서 독립하기 위한 끈임없는 노력을 의미한다. 스와라지 정부가, 주민들에게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규제하려는 정부에 대해 신경을 쓰게 한다면, 그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마을 스와라지에서는 최종적인 권력은 개인에게 귀속되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가 참으로 마을 스와라지에 대한 충분한 내용을 알기를 원한다면, 그는 스와라지 정신을 얻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다."

 사람이 곧 한울(the universe)이다. 스와라지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매일 매일의 삶에서 스와라지 정신을 실현해 내듯이, 그렇게 마을 스와라지는 스와라지 정신이 비추어진 거울일 것이다. 그래서 마을 일꾼은 참교육에 우선 그의 주의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교육은 세 기관들-머리, 마음 그리고 손-을 조화롭게 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이 타림(Nai Talim)은 간디 선생의 영적훈련(tapasya)의 결실이다. 간디 선생은 세 기관이 조화로운 통일체의 전형이었다.
비폭력 정신은 지행합일 교육(Nai Talim)의 완전한 계획을 보급시키고, 그 지행합일 교육은 수공예를 통하여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전체적으로 발달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행합일 원칙의 참교육을 위한 훌륭한 장비를 이미 갖추었기 때문에, 이제 주민은 마을 스와라지 건설을 위한 훌륭한 자산인 것이다.

 마을 스와라지는 인간중심이고, 착취가 없으며, 분산화 되고, 소박한 경제공동체인데, 그곳에서 자발적인 협동하는 주민들 각자에게 완전한 고용을 제공하고, 주민들은 그들의 기본적인 요구인 음식물, 옷 그리고 다른 생활필수품들을 자신들에게 충분한 양을 생산하기 위해서 일한다.

 현대 경제구조들은 욕망의 충족, 욕망의 다양화 그리고 경제로부터 윤리를 분리를 하는 것을 그 뿌리로 삶고 있는데, 거대한 규모로 기계화하고, 중심에 집중하며, 복잡하게 조직화하고 있다.
 그것들은 실업, 불완전 고용, 빈곤, 착취, 시장을 점유하기 위한 미친 질주, 그리고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정복 등에 의해서 추악한 모습을 나타내었다. 경쟁, 갈등 그리고 계급투쟁들이 사회조직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것들은 개인을 노예로 삶고, 사람을 단지 기계를 먹여 살리는 손으로 취급하며, 사람을 단지 기계의 부속품으로 여긴다. 개인은 영혼을 죽이는 반복적인 작업 때문에 좋은 감수성을 잃었다. 그 결과로서 공장의 혹독한 작업에서 벗어나면 오락을 찾아, 타락을 부추기는 영화관과, 술집, 그리고 창녀촌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사회는 특권을 가진 자와 기본권조차 보장 받지 못하는 자,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누어졌다. 백만장자가 안락한 환경에서 빈둥빈둥 살고 있는 곳에서, 힘든 일을 하는 임금 노동자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함께 살고 있는, 오늘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은 전에는 결코 없었다.
 영국이나 미국처럼 높게 기술적으로 발전한 나라들에서도 실업문제는 여전히 풀지 않으면 아니 되는 문제로 남아있는데, 인도에서 태고 때부터 주로 농사를 하며 살아온 70만 마을들 안에서 흩어져 사는 수많은 민중들 편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면, 고(nth)차원의 풀기 어려운 문제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인도의 굶주리는 민중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간디 선생이 일생동안 찾아서 얻은 성과물인 마을 스와라지는 인도, 아니 온 세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효과적인 부적으로 제시되었다. 역사에서 소농은 어느 곳에서나 항상 착취되어 오고 있었는데, 기아선상에 있는 수준이었다. 1945년 10월 5일에 네루에게 보낸 편지에 간디 선생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만약 인도가 참된 자유를 얻게 되고, 인도를 통하여 온 세계도 그렇게 되면, 조만간 사람들이 도시가 아닌 촌락, 궁전이 아닌 오두막에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은 도회와 궁전에서 결코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을 의지하지 못하고 폭력이나 속임수를 의존할 것이다.

 나는 진리와 비폭력이 없이는 인류의 파멸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촌락에서 소박하게 사는 삶 안에서만 진리와 비폭력을 깨달을 수 있고, 이러한 소박함은 물레와 물레가 암시하는 것 모두에서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어쩌면, 불꽃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 점점 더 격렬하게 춤을 추며 나아가다가 불타죽은 속담 속의 나방처럼, 인도도 역시 그 길로 갈 것이다. 그러나 그런 파멸로부터 인도를 방어하고, 인도를 통해서 전 세계를 방어하려고 노력하는 것, 바로 그것이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내가 꼭 해야 하는 의무이다.
 내가 말한 것의 정수는 사람이 참으로 필요한 것만으로 만족하는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고, (무엇을 소유하거나 무엇 때문이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 스스로 만족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자제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그는 구원될 수 없다. 결국, 세상은 개인들로 만들어졌다, 마치 바다가 물방울들로 구성되어 지듯이. 이것은 잘 알려진 진리이다.

 간디 선생은 이렇게 소박한 생활과 자발적인 가난을 지지하였다. 그것은 사람이 생명체를 편안하게 해주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모든 사람이 균형이 잡힌 식사를 하고 필요한 옷과 거처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생명체가 먹을 권리를 가졌다고 믿었다. 그는 말했다.

 “내 견해로는 인도의 경제 제도와 세계의 제도도 마찬가지로, 그 제도 아래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없어서 고통을 당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모든 사람이 일을 하여 두 가지 필수품을 적당히 마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충분한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상은, 생활의 기초적인 필수품을 생산하는 수단이 대중들의 통제 아래에 놓여 있기만 하면, 어디서나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소유물인 공기와 물이 공짜이고 또 공짜여야만 하듯이,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기 위한 운반용 차량을 만들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어떤 지방이나 국가 또는 어떤 단체가 생필품을 독점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이 단순한 원리의 무시가 우리가 오늘날 이 불행한 땅만이 아니라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역시 목격하는 빈곤의 원인이다.”

 모든 주민에게 완전한 고용을 제공하는 이러한 비폭력적 경제제도를 세우기 위해서, 그는 산업만능주의, 중앙에 집중하는 산업들, 그리고 필수적이지 않은 기계사용을 반대했다. 그는 도시들을, 촌락들을 수탈하는 기관으로 간주했다. 그는 그것들을 국가라는 사회의 몸 위에 난 종기라고 불렀다.

 그는 다음과 제안했다. “장래 세계 질서의 희망은 마을들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즉, 강요도 없고 강제도 없지만 모든 활동들이 자발적인 협력으로 계속되는 작고 평화로운 협동조합들.”

 마을 스와라지의 대 전당 안에 사랑이라는 지휘권이 작동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높은 자도 낮은 자도 없다. 모두가 평등하다. 거기에는 카스트(caste) 제도도 없고 사회적 계급이나 계층도 없다. 불가촉천민(역자 주: 카스트 중 노예계급 곧 sudra)도 없다. 흰두교도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싸움도 없다. 모든 개인들이 자연이 부여한 고귀한 신분을 회복할 것이다.

 풀스윙(full swing)으로 작동하는 마을 스와라지는, 세계에 모범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델을 제공할 것이다. 그것은 인도가 세계에 주는 선물이다.
 이후에 자주관리 마을 단위들은, 높은 교양을 갖추고, 지성이 있으며, 정력적인 남녀들이 활동하는 살아있는 인류애 공동체가 될 것이다. 이 공동체 안에 사는 것 자체가 교육이고 자기완성이 될 것이다.
 그 안에서의 생활은 자신의 재능 모든 것을 자신이 표현하는 삶이 될 것이요, 상호간에 존경심을 주고받을 것이며, 사랑은 서로 돕는 행동으로 드러날 것이다. 문화, 예술, 회화, 학문 등은 완벽한 자기실현을 발견하게 도울 것이다. 그것은 지상에 세워진 신의 왕국이 될 것이다.

 마을 스와라지는 이렇게 그것 안에 높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그것을 역동적이고 실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국가의 아버지의 꿈을 성취하는 것이 그에게서 부와 불멸의 유산을 물려받은 상속자들이 실행해야 하는 의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가, 큰 권력이 주어지는 그램 판차야트들(Gram Panchayats 역자 주: 마을 자치정부)을 창설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옳고 바람직하다.
 우리는, 그램 판차야트가 그들의 마음에 간디 선생이 구상한 마을 스와라지의 그림을 지니고, 선생이 정한 방향대로 운영되기를 희망한다.

 마을 스와라지는 간디 선생께서 구상하였던 의도대로 실행되어야 한다. 만약 카스트, 종교와 계층의 경계를 넘어서는 이기심 없는 봉사와 사랑의 정신이 그램 판차야트들을 작동시키는 책임을 짊어진 자들에게 부족하다면, 간디선생이 그것에서 거두리라고 기대하였던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함께, 마을제도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판딧 네루가 한 말을 기억해 보자.

 “만약 어떤 사람이나 어떤 그룹이 더 열심히 자신이나 그룹을 지키려하면할수록, 그만큼 더 그나 그룹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마음이 옹졸해질 위험이 있다.”
 우리의 마을들은 현재 카스트주의, 도량이 좁은 마음과 사회적 알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램 판차야트들을 만들어 가는 길에 장미꽃이 뿌려지지는 않고 있다.

 스와라지를 넓게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마을 리더들에게 참다운 선교정신이 있어야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땅 인도가 기회를 얻어서, 세계로 나아가 인도의 선교사명을 완수하고, 그로인하여 세계를 위해 이룬 일로 참다운 영광을 얻어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이 책은 마을 스와라지라는 주제와 관련을 가진 마하마트 간디의 출판물들에서 관련있는 구절들을 함께 모으는 방법으로 편집하였고, 그의 생각을 가능하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표현하였다.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몇몇 곳에서 간접 서술을 직접적인 발언으로 바꾸었다. 그 외에 사소한 수정과 생략을 제외하고는 원문을 충실히 지켰다.

 나는 이 편집물에 서문을 써준 성 쉬리만 나라얀에게 빚을 졌다.

1962년 11월 22일
                                H.M. 브야스